전시장소 : 갤러리민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81길 20 )

전시기간 : 2015. 12. 29 ~ 2016. 1. 9

<전시서문>

젓갈,식해,김치,술,식초,장...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우수한 발효식품들을 발전시키고 애용해온 한반도 전역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검은 도기를 널리 만들어왔습니다.

최소한 기원 전후무렵 한반도와 산동, 만주지역에 널리 등장하는 회청색 경질도기부터, 백제사 연구의 지표가 되기도 하는 검은간토기, 철기와 함께 전해져 일본고대문명의 토대가 된 가야의 스에키, 신라, 고구려는 물론이고, 발해와 고려토기를 거쳐 근대의 떡시루를 만들던 꺼먹이 질그릇과 조선시대 임금님 쌀독으로 사용되어 신비한 기능성으로 유명한 푸레기까지...

한반도에서 검은 도기는 기와나 전돌과 함께, 오래전부터 그 종류와 소성온도, 성형기법도 다양하게 발전되왔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왔으나, 근대 이르러서는 그 실용적 가능성과 가치에 비해 관심과 연구, 발전과,응용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정치적인 의미의 역사연구나 원시적인 단계의 토기로만 여겨지던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만도 최소 이천년 이상이라는 오랜 세월을 사랑받고 다양하게 발전되어왔다면, 분명 그만큼 세월속에서 검증된 뛰어난 가치와 장점들이 있을텐데, 조선시대 경제적 상황과 취향, 공업의 홀대로 폄하되고 잃어버린 귀한 유산들 중 하나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는 쓰기에 좋고 보기에 좋은 그릇을 만들기 위해, 옹기를 익히고, 재료와 가마를 공부하고 실험하며, 통가마를 지어 장작을 때고, 다양한 꺼먹이(환원냉각-reduction cooling)작업을 시도하면서 애초에 짐작과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가능성에 또다시 놀라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환원냉각은 알려진 것보다 침착 뿐 아니라 조직에도 현저한 변화를 일으키는, 다양하고 복잡한 내용의 작용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온도는 공통적으로 옹기토계열의 소지가 류사이트상이 발달하여 견고하면서도 ‘숨을 잘 쉬는’ 상태가 되도록 1200도 근방에서 최소 한나절 이상 장시간 끌어줍니다.

그런데, 그 온도에서 일반적인 산화나 환원소성을 하면 안정적으로 적당한 광택을 가지는 장석계 투명재유를 장작으로 다시소성하여 환원냉각을 했더니 표면이 반투명한 무광의 상태가 되었고,

석간주를 약토로, 보완을 거쳐 만든 안정적인 반광택의 갈색 옹기잿물이, 마찬가지로 다시 통가마에서 소성후 환원냉각을 했더니 다시 불투명하고 짙은 무광의 검은색이 되기도 했습니다.

철분이 많은 점토에서 이미 알려진 바들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산화철의 변화와 침탄으로 볼 수 있는데, 미묘하게 녹색이나 분홍색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이철이나 수산화철이 일철로 변하던지, 아니면 삼철인 자철로 변하던지, 또는 탄소가 결합하는 침탄작용이 일어나든지,...

공통점은 색이 ‘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대이후 ‘오지그릇’ 이라는 말은 잿물을 발라 산화소성하여 적갈색을 내는 옹기를 일컫는 말로 널리 쓰여왔습니다.

조선말기 실학자인 서유구는 자신의 백과사전적 저서 ‘임원경제지’에서 큰 항아리인 옹(甕)을 설명하며, 전라도와 강원도지방에서 생산되는 석간주유약을 발라 구운‘오지’가 가장 좋다고 하였고 7월에 구운 것이 으뜸이라 하고 있습니다. 7월이면 일년중 가장 습도가 높아 소성중에나 냉각중에 수소환원이 이루어지기 쉽상일 때인데, 건조한 봄가을에 산화소성하여 구운 것을 상품으로 치며, 유기물이 많은 부엽토를 약토로 삼아 잿물을 만들고, 습기를 상극의 요인으로 여기며 가마가 지상으로 올라온 19세기 이후의 오지그릇과는 뭔가 많이 다릅니다.

물론 그것은 현존하는 유물들 중 산청지방에서 만들어진 일부 옹기처럼 모래질이 많은 고화도 백토에 검은 장석유를 발라 반투명의 황흑색을 내는 사기질 항아리를 말한 것 일지도 모릅니다.

오지의 ‘오(烏)’자는 진하고 어두운 것도 아울러 표현하는 ‘흑(黑)’자에 비해 색상자체가 까마귀의 먹색처럼 무채색에 가까운 것을 구별하여 표현할 때 많이 쓰입니다.

저는 제가 다양한 꺼먹이작업(환원냉각)을 통해 만들고 있는 일련의 그릇들을 ‘다만 검다’라는 뜻의 ‘烏只’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오지의 진가는 현대적 감성에도 응용하기 좋은 독특한 색감과 질감보다, 발효나 저장, 정화등에 신비로울 만큼의 뛰어난 기능성에 더 있겠지만, 기능성에 대한 것은 아직 제가 직접 검증하여 일반화 할 만한 기회가 부족하므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후 사용하며 경험하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아직 갈길이 멀고, 이제 방향이 조금 보이는 시점이지만, 그간의 수고의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됨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015년 12월 황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