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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일상 Daily Life II - 금다혜 개인전
2021-10-26 (화) 21:31 조회 :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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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일상 II
Daily Life II

작가
금다혜
Keum Dahye


기간
2021.11.04 - 11.10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모리스 갤러리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6-21


관련 링크
작가 인스타 - @dahye_ceramic , ato3898


관련 클레이파크 아카이브

준비중


관련내용

 도예로 빚은 세상의 매개자

‘일상에도 아르카디아는 있다’

오정은(미술비평)


‘일상(Daily Life)’. 금다혜는 각각 2018년과 2021년 자신의 개인전에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의 단편을 연상시키는 단어로 모아진 그 전시에는 그러나 생활고에 찌든 현대인의 지친 모습 따위는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눈을 감고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양(羊)이 들어차 있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로 구현한 양의 얼굴과 모습이다. 그것은 백토에 유약을 입혀 재현한 양모의 풍성하고도 섬세한 결에서 그렇듯 비범할 만큼 사실적이면서도, 사뭇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인화된 동물의 모습으로 어딘지 키덜트(kidult)한 감성을 담고 있고, 수공예적이면서도 키치(kitsch)한 연작에 해당한다. 벌써 십년 가까이 작가의 손에서, 그녀의 시그니처로 자리잡은 양은 사랑스러운 자신의 존재감을 우리의 일상 속에 개입해 왔다. 조신하게 컵을 들고 서서 웃고 있거나(<커피 한잔>, 2018), 다리를 뻗고 입을 헤 벌려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 하고(<봄 구경>, 2018), 턱을 괴고 무언가 즐거운 생각에 빠진다거나(<행복한 상상>, 2018), 자유자재 포즈로 보드를 타거나(<스케이트 보드>, 2021), 클라이밍 스포츠를 즐기는(<클라이밍>, 2021)식의 일상 말이다. 2021년 가을, 모리스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세 번째 개인전에서도 금다혜는 ‘일상’을 키워드로 자신의 페르소나로 알려진 이들 양을 전시한다. 이전보다 면적을 크게 확대한 <클라이밍>을 비롯해, 파스텔톤 하트 모양 자기를 탑처럼 쌓고 있는 주술적 양을 빚은 <그와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기존 백토 대신 양털을 닮은 솜뭉치를 몸에 부착한 양을 포함해 작은 양들이 피아노줄에 매달려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Give Love> 신작이 우리의 일상에 새롭게 미소를 일으킬 작품들이다.


“내게 있어 양은 자연과 일상을 연결하는 소재이며, 내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자연과 일상을 동시에 만나는 설렘을 느끼며 흙으로 만들어가는 양의 모습에서 나의 작은 행복들도 점점 커져간다."

작가의 감정이 흙을 대하는 손의 압력과 방향에 그대로 투영되고, 물활론적(物活論的) 심상을 고조시키는 양의 얼굴 표정이 끌의 끝에서 예민하게 조각되는 만큼 금다혜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상태에 따라 작업에 임한다. 기분이 좋을 때 작업을 하는 것이 본 의도로부터 어그러지지 않는다. 또, 그녀는 양모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한 올 한 올 옷을 깁듯 반복적이며 수행적으로 작은 점토 한 점 한 점을 몸통에 이어 붙여 나간다. 유약을 부었다 부분적으로 닦아내며 공산품이 아닌 매체의 부분부분을 신경 쓴다. 고온의 가마에 들어가 마침내의 완성이자 생명으로 태어난 작품은 재료의 태생적 특성에 의해 여전히 연약하고 깨질 수 있는 어린 존재로 보아진다. 그래서일까. 금다혜의 양은 억지가 아닌 무결한 순수함으로, 자신의 즐겁고 희망적인 세계에 동화될 것을 감상자에게 몸소 유도하고 있다. 연작으로 모아진 양의 군상 모두가 한결같이 감고 있는 두 눈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라는 현전의 투사가 아닌, 다른 것을 꿈꾸게 하는 매개처럼 느껴지고 있다. 지상낙원이자 이상향, 아르카디아(Arcadia)에 대한 염원으로 고대부터 그려온 다른 삶에 대한 동경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작가가 양으로 대체한 자기 분신의 행위를 통해, 그리고 작품의 명제나 전시의 제목으로 유일하게 활자화해서 말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의 근저에 있는 ‘일상’이다. 커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턱을 괴고 상상하고, 여가나 취미를 즐기며, 사랑의 결실을 기도하는 것은 아르카디아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익숙하게 이미 하고 있거나 어렵지 않게 실천 가능한 일들에 해당한다.

17세기,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g)이 그린 <아르카디아의 목동들>은 어느 돌 무덤가에 모인 세 명의 목동과 한 명의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이들은 묘비에 쓰인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말을 두고 그 뜻을 해석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미술사학자들은 무릉도원에도 죽음과 같은 현실의 암이 있다는 경고로 이 회화의 의미를 풀이해왔다. 나는 금다혜가 도예로 빚은 일상과 그 안에서 두 눈을 감고 행복을 추구하는 양들을 통해, ‘일상에도 아르카디아는 있다’는 문장을 떠올려 이 글의 부제를 더한다. 우리의 삶에 이미 충만하게 깃들어있는 행복과 이상의 발견, 금다혜의 양은 그것의 성찰을 미소로 매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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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혜양

백조형토, 무광투명유, 방울솜, 20 x 65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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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다혜, 나는 다혜양2
백조형토, 무광투명유, 방울솜, 20 x 65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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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다혜, 그와 사랑하게 해주세요
백조형토, 무광유, 슬립캐스팅, 20 x 60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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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다혜, 사랑을 타고(Give Love Det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