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버브(Ray Bub)
 

‘예술과 창작의 고통‘  
 미술에서 천재를 요구하고 유일한 창조와 창작물을 원하던 모더니즘 이후 창작이란 말은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현시점에서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시대를 불문하고 작가의 아이디어 발상에 관한 창작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오랜 시간 하나의 가치관으로 작업을 해 온 작가가 새로운 작품변화를 이뤄 내는 것. 이는 끊임없는 작업에 대한 도전, 창작에 대한 욕구로서 더욱 값진 아이디어의 진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레이 버브는 이러한 생각의 진화, 발전 과정을 거쳐 자신의 작품 길을 찾은 작가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작업의 시작과 좌절
 미국 버몬트의 파우널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레이 버브(Ray Bub)는 34년간 실용성을 가진 생활자기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업을 해 왔었다.
1995년 봄. 레이 버브의 작업에 변화가 생긴 계기는 한 학생의 질문으로 시작된 제작 방법에 대한 고민부터였다. 이 학생은 아메리칸 민속 도자기 전시에서 본 18세기 링 플라스크(ring flask) 비슷한 링 형태의 화병을 만들고 싶어 했다. 버브는 학생에게 속이 텅 빈 링, 고리형태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고, 화병의 목과 기다란 타원 형태를 붙여줬었다. 이 시간 이후 레이 버브는 그 동안 티팟 형태에 흥미를 가져왔던 생각을 더하여 새로운 작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전통적인 동그란 고리(ring) 화병 형태에 티팟의 주구, 손잡이, 뚜껑에 대하여 고민한 결과 재미나고, 우아한 형태의 티팟이 제작되었다. 1995년부터 작가는 속이 텅 빈 링, 고리형태를 물레로 성형한 후 적당히 굳은 상태에서 활톱을 이용하여 임의로 부분을 자르거나 링을 똑바로 세워 몸체를 만들었다. 여기서 뚜껑부분은 장식으로 동물형상을 조각하여 붙이는 작업을 했다. 제작과정의 우연성에서 발견한 재조립된 다양한 링 형태의 몸체와 표범, 기린, 펭귄, 큰 부리를 가진 새 등으로 장식된 수많은 티팟을 3년간 작업했다. 기존에 작업해 왔던 인습적인, 어떤 틀에 박힌 판매를 위한 생활 자기에서 기능과 조형성을 갖춘 티팟으로 변화된 작업은 그에게 많은 노력과 시간투자를 요했다. 오랜 시간 작업방향의 변화에 힘썼으나 국제적인 공모전, 아트페어, 전시 등 흔히 알아주는 인정받는 곳에서 그의 작품은 받아지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기 위해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공모전은 그가 만드는 작품이 적어도 같은 계열에서 자신의 작품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찾아볼 수 있는 자극이 된 요소였다.

재조립된 링 형태의 티팟
 처음 티팟 작업에서 막연히 장식적으로 올려놓았던 세부조각 동물형상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동물을 묘사하여 티팟에 결합했던, 정형화된 직설적인 아이디어 표현의 실패로부터 벗어나 1998년 봄, 레이 버브은 동물형상을 제외한 추상적인 형태를 가진 표현으로 재조립된 링 티팟을 선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레이 버브의 티팟은 계획하지 않은 채 작업하는 순간, 작가의 의도와 우연성에 기대어 만들어 진다. 조각 난 링 형태들이 재결합되면서 긴장과 유동성으로 에너지를 담아 움직임을  발생시킨다. 티팟의 물대와 손잡이는 일정하게 마치 코끼리 코의 모양과 나무줄기를 연상시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티팟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난해함 속에 미소를 짓게 한다. 능숙한 물레 성형으로 만든 속이 텅 빈 동그란 링을 임의로 자르고 다시 새로운 형태가 나오기까지 이를 재조합한 추상적인 티팟의 탄생. 끊임없는 생각의 발전단계를 거쳐 자신이 가진 색깔을 과감히 변화 시킨 노력으로 성장을 거듭한 레이 버브. 한 학생의 질문부터 시작하여, 순수하게 방법적 측면에서 문제를 풀어보고자 했던 욕구에서 비롯된 티팟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레이 버브는 부단한 발상의 전개로 작품세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흙의 물성과 우연성을 활용한 기능과 조형미를 갖춘 티팟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수많은 착오와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통해 성장한 레이 버브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의미를 가지리라 생각된다. 작품과정을 모두 보여주며 무계획에서 이뤄지는 작업, 자신의 경험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을 찾으려는 쉬지 않는 노력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추구한다. 작가는 이제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작은 사건들 속에서 발생한 또 다른 아이디어로 새로운 작품이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준비한다.    

                                                          글/ 김지수 (도예연구소 연구원)

참고: 작가 홈페이지 www. raybub.com

        Ceramic monthly 2002.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