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하이만(Sylvia Hyman)의 눈속임을 통한 감추기&드러내기

이진숙(한향림 갤러리 큐레이터)

 1) 환영과 실재의 경계를 넘어선 눈속임 (trompe-L'oeil )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회화, 즉 대상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리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은 구도나 물체의 명암, 양감, 질감을 실물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하는데 그 목적을 둠으로써 재현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을 유발시킨다.

이번 한향림 갤러리에서는 개관 3주년을 맞이하여 미국 현대도예의 거장 실비아 하이만(Sylvia Hyman)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이만은 1917년 미국 출생으로 89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모리스 뮤지엄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성 원로작가로 한국에서는 처음 개인전을 갖는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제작한 최근의 수작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눈속임(Trompe L'oeil)기법을 통해 일상 속에서 사용되는 오브제, 기물이면서도 장식적인 도자기 본래의 역할을 재해석한 도자조각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1960년대 중반 당시의 도예가들은 ‘흙(clay)’이라는 매체를 공유하면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탈 장르적 제작성향들을 보이는 가운데, 실용적이고 추상적인 도자에서 벗어나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일명 눈속임 기법(Trompe L'oeil)의 장르에 몰두하며 도예의 표현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하이만의 오브제들은 점토로 만든 종이를 둘둘 말아 은폐된 내용들을 감춤과 동시에 실크스크린 같은 고도의 테크닉을 드러내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시각효과를 선보였으며 이러한 전략은 환영과 실재 즉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미술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2) 점토로 만든 페이퍼(paper)

테네시 출신 작가 수잔 디메이(Susan Demay)는 하이만이 제작한  봉투, 노트, 카드, 종이들이 "친밀감… 개인적이고 사적인 정보, 인간성의 본질을 전달하는 일종의 구체적이고 유형적인 상징들을 대변한다"고 전한다. Susan Demay, "trompe L’oeil of Sylvia Hyman" Clay times7, no.4(2001):47

하이만의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점토로 만든 얇은 종이다. 흙으로 얇게 말린 종이의 재질을 표현한 표면 처리는 극단적이고 사실적 묘사에 의한 고도의 테크닉 눈속임기법의 한 경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일순간 정지시켜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강조해 표현하려는 조형의지는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미술의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에 전시한 작가의 조각은 Family Record와 Is It Real?과 같은 초기의 눈속임 기법(Trompe L'oeil) 시리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시리즈는 가족들의 개인적인 기록이 담긴 여러 개의 문서들을 보이지 않게 돌돌 말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 희미해졌던 기억의 발견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3) 용기 안에 담긴 오브제

하이만의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그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것들이다. 일상적 오브제, 그것이 낮선 것이든 친숙한 것이든 대상에 대한 시각을 확장하기 위해 흙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작품들은 뒤샹이후 미술에서 논란이 되었던 오브제의 개념, 즉 기능적인 오브제의 장식성과 조각적 특성 등의 논제들을 상기시키며, 수공예와 기성품의 경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의도적인 혼란을 자아낸다.

하이만의 오브제 중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나무, 판지, 낡은 상자, 나무껍질로 만든 바구니들은 값싸고 실용적인 용기들로서 전통적인 예술의 관점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재료들이지만 고도의 테크닉에 의해 실제와 똑같이 제작되어 현대적 용기로 전환된다. 예를 들면 마분지 박스나 농부의 장바구니는 일회성 용기의 의미를 전환시키면서 관람자들로 하여금 저장하고 보관한다는 역할을 재고하게 한다. 그 용기 안에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음악의 악보, 손으로 직접 쓴 우편이나 엽서, 서적, 여행지도 등이 도자기로 만든 판위에 실크스크린기법으로 복사된다. 이러한 기법의 시행은 점토의 소성에 의해 영구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며, 덧없이 사라지는 일시적인 가치의 관계 양상에 대해 인식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점토 위에 인쇄를 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아했지만, 실크스크린을 제작하는 과정은 좋아하지 않았다.”

하이만의 작업은 인간 삶의 조건에 관한 보다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감상자들이 작품을 관람하면서 자신의 테크닉을 통해 평범한 소재를 시각적 은유로 전환시키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하이만의 “눈속임(Tromp' Loeil)” 통해서 극사실주의 기법의 경지를 감상할 수 있음과 동시에 도자라는 매체의 확장된 개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이만의 작품은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The Smithsonia) 미국 도자박물관(The American Museum of Ceramic Art), 캘리포니아의 포모나(Pomona),한국의 WOCEF 등에 소장되었으며, 1982년 이래로 국제 도예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8년 동안 위원회에 있으면서 명예로운 회원(Honorary Member)이란 칭호를 얻었다. 현재  NCECA 및 IAC명예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