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통로 도예가 웨슬리 앤더레그(Wesley Anderegg)에 대한 이야기

글 | 박주혜 프리랜서 큐레이터

존 말코비치 되어보기(Being John Malkovitz)

뉴욕 맨하탄 중심가에 있는 한 빌딩의 7층과 8층 사이, 7 1/2층. 사무실 구석에 놓인 3단 서류함. 그 뒤에 숨겨진 작은 문과 비밀통로. 그 통로를 따라 가다 순간 빨려 들어 가는가 싶으면 그곳은 바로 존 말코비치의 몸 속. 세상 사에 지치고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이라면 한번쯤 내가 아닌 그 누군가로서 지금과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상상을 해보았을 줄 안다. 200불 투자로 단 10분일지언정 최고의 무비스타 존 말코비치의 삶을 살다 뉴저지 턴파이크 도로변에 떨어지는 경험. 순박한 유부녀 라리가 말코비치가 되고, 그의 몸을 통해 미녀 맥신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오묘한 체험. 도예가 웨슬리 앤더레그의 엽기적인 작품들을 그 통로로 삼아 평소라면 비웃음사기 알맞은 터무니없는 상상들이나, 때로는 도덕적 혹은 윤리적 이유로 현실에서는 시도해보지 못하는 가히 충격적인 행위들까지도 한번 스스럼없이 만끽해보자.

상상과 현실의 중계자

1958년 미국 아리조나(Arizona)주 피닉스(Phoenix)에서 태어난 웨슬리 앤더레그는 1982년 아리조나 주립대학(Arizona State University)을 졸업한 후 현재 캘리포니아 롬포크(Lompoc)에 자리한 22에이커의 대평원에서 세 마리의 말과 10마리의 닭, 당나귀 한 마리와 강아지를 키우며 미 도예계에서는 이제 꽤 알려진 중진 도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간혹 워크숍을 통하여 그 만의 독특한 작업관이나 제작기법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빡빡한 전시 스케줄에 시달리는 스트레스를 자인해야 할 인기작가로서의 삶이나, 작가로서의 경력을 위한 대학 강의 등의 사회적인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기 보다는 가족과 함께 화초와 동물들을 가꾸며 여가시간에 테니스와 기타 연주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선호하는 자칭 언더그라운드 작가이다.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작가로서의 야망보다는, 가정과 자신의 작업에 적절하게 시간을 안배할 줄 아는 소박함을 아는 이가 바로 도예가 웨슬리 앤더레그이다.

웨슬리의 작품들은 핸드빌딩 기법으로 제작한 후 화장토(slip)와 유약을 사용하여 채색하게 되는데, 이들은 대부분 정면을 바라보는 상반신 혹은 단순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전신상의 형태로 제작된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그와 쌍둥이처럼 꼭 닮아 있는데, 이들은 웨슬리가 털어놓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한 줄 한 줄 늘어놓는 중계자가 된다. 웨슬리 자신이, 결국 넓게 보면 우리 인간 모두가 현실세계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금기시되는 행위들을 대리 만족시켜 주는 이 쌍둥이 대변인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마치 무언극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이 섬세한 얼굴표정과 손짓 만으로 간략하지만 명쾌하게 요점만을 효과적으로 일러준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주위의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도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기 보다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것을 더 즐겼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이후로 줄곧 지금까지 사람들을 바라보아 왔고 그런 관찰하는 습관이 오늘 내 작업의 핵심이 된 듯 합니다.”

그는 남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 또 머리 속으로 어떤 상상을 하며, 진정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관찰한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다하며 살 수도 없고, 말하고 싶다고 곧이 곧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제약 아닌 제약을 안고 살아가기에 그의 작품이 속해있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는 보는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시선과 이성에 억눌려 있던 적나라한 동물적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게 하는 값진 비밀통로가 된다.

상상은 자유 라지만 그것도 횟수가 잦아지고 정도가 지나치면 통제하기 어려운 중독성을 띄게 되어 결국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 자폐증 환자가 될 수 있음을 웨슬리의 비밀통로를 이용하는 이에게 경고한다. 제 2의 웨슬리가 되어 원 없이 복수도 해보고 잃어버린 젊음도 즐겨보지만 라리와 맥신을 동시에 잃은 존 쿠삭(John Cusack)처럼 진정 사랑하는 것들을 잃지 않으려면, 내 삶의 현실을 지키고 싶다면, 그 경계를 넘지않도록 자제하는 힘을 먼저 키울 일이다.

색다른 별미 : 비밀통로 1

볼 일을 보기위해 모처럼 시내에 나갔다 들어오는 날이면 거의 예외 없이 ‘열 받는’ 일이 생긴다. 한민족은 원래 유순하기 이를 데 없는 인종이라던데 왜 이리도 서로 목청 높이고 눈 흘기는 일이 잦은지. 유사이래 수 천번이라고 하던가. 수많은 외래침략에 시달린 탓으로 그 거칠음과 무례함을 원망도 해보지만 상해버린 내 기분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도 미운 그 사람-때로는 퉁명스러운 동사무소 공무원아가씨, 때로는 난폭운전으로 정신적, 육체적 위기감을 조성한 택기기사 아저씨- 을 색다른 별미로 즐겨보자.장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속닥속닥 입으로만 험담을 즐기는 것보다 몇 백배 강렬하게 실제로 ‘씹어 볼’ 기회이다. 두툼한 샌드위치로 만들어보든지, 아니면 어두일미라니 살짝 익혀만 보든지. 이를 즐길 때에는 눈은 험상궂게, 입은 최대한 크게 벌리고 그 맛을 음미하시기를. 더 자세한 표정관리는 작품을 참고하시고.

부귀영화 : 비밀통로2

풍요함과 빈곤함, 아름다운 외모와 추한 모양새, 건강함과 질병의 시달림. 전자냐 후자냐 선택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전자를 원하겠지만 그 바람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후자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 평균치의 삶일 수 있겠다.하지만, 오늘은 한번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해보자. 몇 일 끼니를 거른 가난한 이의 고통도, 중병에 생을 자포자기한 극대의 두려움도, 곁에 스치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의 추한 겉 모습도 나의 자유의지로 택해 그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해보자.

배신에 대한 보복 : 비밀통로 3과 3-1

믿어왔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그 보복을 어떻게 해야 후련해질 수 있을 것인가. 현실에서의 극히 제한된 선택-사랑으로 용서하는 것. 하지만 내 가슴 속 본성은 말한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민망한 그 해결책-웨슬리의 비밀통로 3, 등에 칼 꽂기. 이보다 강도가 덜한 애교적인 방법을 원하시는 마음 약한 분을 위한 응용 버전, 비밀통로 3-1, Oh, Shit!

회춘을 위하여 : 비밀통로 4

탈없이 잘 먹고 편안하게 잘 자는 것, 소화한 것들을 시원하게 내보내는 일과 함께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바로 성에 대한 욕구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개발된 후 탁월한 효능을 토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아그라나 우리 고유의 토속적인 뱀탕이나 그 효과를 보려면 처방전이든 최적의 조리법이든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웨슬리의 상상의 세계에서라면 동산에 앉아 흐뭇한 미소지을 여유로움만 있으면 회춘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긋이 뜬 눈과 저 흐뭇한 미소를 보면 가히 그 만족감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웨슬리 앤더레그의 비밀통로에 대한 경고

상상은 자유 라지만 그것도 횟수가 잦아지고 정도가 지나치면 통제하기 어려운 중독성을 띄게 되어 결국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 자폐증 환자가 될 수 있음을 웨슬리의 비밀통로를 이용하는 이에게 경고한다. 제 2의 웨슬리가 되어 원 없이 복수도 해보고 잃어버린 젊음도 즐겨보지만 라리와 맥신을 동시에 잃은 존 쿠삭(John Cusack)처럼 진정 사랑하는 것들을 잃지 않으려면, 내 삶의 현실을 지키고 싶다면, 그 경계를 넘지않도록 자제하는 힘을 먼저 키울 일이다.

 

Wesley Anderegg | 1958년 미국 아리조나(Arizona)주 피닉스(Phoenix)에서 태어난 웨슬리 앤더레그는 1982년 아리조나 주립대학(Arizona State University)을 졸업한 후 현재 캘리포니아 롬포크(Lompoc)에 자리한 22에이커의 대평원에서 세 마리의 말과 10마리의 닭, 당나귀 한 마리와 강아지를 키우며 미 도예계에서는 이제 꽤 알려진 중진 도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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