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버나드 리치의 생애(Bernard Howell Leach, 1887-1979)

영국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일반적으로 민예작가로서 알려져 있다.
리치와 함께 도예를 시작한 사람들은 도미모토 켄키치, 가와이 간지로, 하마다 쇼지등이 있다.
리치는 홍콩에서 1887년 태어났으며 홍콩, 싱카폴, 일본 등지에서 보냈고, 10세 때인 1897년 영국으로 돌아와 16세(1903)에 슬레이드 미술학교(Slade School Of Art)의 최연소 학생으로 입학하였다.
어려서부터의 드로잉에 관심을 보였던 리치는 런던미술학교 (London School Of Art)에서 에칭을 비롯한 본격적인 예술수업을 받았다.
그는 후에 도예에 입문하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던 유학생 다까무라 미쓰다로(高村光太郞)와 친교를 맺으면서 불교와 禪思想(-그가 접한 禪은 중국의 선 불교에 기초한 일본식의 불교로서 도교와 불교가 융합된 것이었다),
일본문화를 접하게 되었으며 라프카디오 호온(Hearn.(1850-1904)그리스 태생, 기자생활로 인한 여러 차례의 일본 방문으로 인해 일본문화에 심취, 동경제국대학교수로 일하면서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집필하였음)의
일본 생활과 문화에 대한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1909년 리치는 일본에 소개되지 않았던 에칭 판화를 가져가서 동경에 정착하게 되는 데,
그 때에 <시가카바>의 동인들인 켄키치, 간지로, 쇼지, 야나기 무네요시등을 만나 친교를 나누었다.
그는 이때 처음으로 '茶會'를 접하게 되는 데 이때 '라쿠(Raku)도자기'를 감상하면서 도자기에 대한 경외심을 키웠다.
그는 다음해에 일본의 유명한 도예가인 '六代 오가타 가와야마'에 입문하여 후에 도미모토 켄키치와 함께 '7代 가와야마'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우에노 사쿠라기마치에 첫 가마를 짓고 전시를 가지기도 하였다.
그의 본격적인 도예작업은 야나기의 집이 있는 아비코(我孫子)에 가마와 작업장을 세우면서부터이고, 이 때부터 도예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그 시기에 가와야마에게서 전수받은 라쿠기법을 서양과 동양을 바탕으로 혼합하여 전혀 다른 것을 창조해 내었는데 일본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 때 하마다 쇼지를 통해 야나기 무네요시를 알게되었는데, 리치는 야나기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1916년 베이징에서 야나기를 만나 중국 도자기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게 되고 야나기의 권유로 조선을 방문,
특히 조선 도자기에 대하여 많은 감명을 받고 이 때 부터 도자기를 비롯한 민예품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 시기부터 야나기의 심미안(審美眼)과 리치의 창조력이 결합하여 그들이 발견해낸 조선 민예 도자기의 미의 재발견은 더욱 발전해 나갔다.

리치는 일본 도예가들의 예술지상주의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일체의 기교적인 장식성을 배제한 실용적인 용기를 만드는데 주목하였다.
하지만 이후 리치는 야나기와 함께 벌린 민예운동이 결실을 보기도 전에 일본을 떠나버렸다.
그는 1920년 하마다 쇼지와 함께 귀국하여 세인트 아이버스(St, Ives) 에서 수공예 길드를 경영하고 있는 혼(Horn)부인의
후원으로 그곳에 정착하여 유럽 최초의 일본식 등요가마를 이용한 라쿠가마를 설립하였다.
그가 그 곳에 정착하고 나서 맨 처음 시작 한 것은 동양 도자기와 서양 도자기와의 접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동양의 기법을 바탕으로 그 지방의 천연 원료를 이용한 점토와 유약을 개발하였고 고온자기와
라쿠 도자기를 제작함으로써 동양 도자기에 대한 미적 개념과 기법을 영국의 도예계에 전달하였다.
그는 공방을 설립한지 1년 후 독립하여 'Leach Pottery'를 설립하고 그 해 가을 런던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그의 명성을 일본, 영국, 미국에까지 알렸다.
그는 이 시기부터 서적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자신의 비법을 서적을 통해 공개함으로서 많은 후학들을 키웠다.
그러나 일본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민예로서의 실용성보다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평가했다.
그러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리치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전파하고자 일본에서 배웠던 '茶會'를 통해 동양의 도자기 미학을 전파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그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동양의 도자기가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가르쳤다.
1934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각지를 순회하며 새로운 기술들을 습득하였다.
1940년 그의 유명한 도서 (주:당시 도예전문 서적이 없는 상황에서 도예가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예가에게 필요한 기술을 소개하였으며, 동양 도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서양의 도예가들에게 최초로 동양의 도자기와 미적 가치, 개념들을 소개하였다.

특히 같은 책은 4개국어로 번역되어 10만부 이상 팔려 나갔으며 현재까지 도예가들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이 출간되었으며 유럽과 미국의 도예가들에게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 도자의 개념과 가치를 소개하였다.
또한 야나기 무네요시등과 함께 미국 내에서의 많은 순회강연을 통해 미국 현대도예를 태동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의 아들 데이비드 리치가 그의 'Leach Pottery'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전후에는 교육, 강연, 여행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970년(83歲)에 시력을 상실하면서 일체의도자기 제작이 불가능해 진 후로는 저술활동에만 1879년까지 주력하게 되었다.


2. 리치의 조선도자(동양도자)에 관한 관심

그가 조선도자에 관해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1916년 베이징체제중에 야나기의 권유로 조선을 방문하면서 부터이다.
그러나 1914년 경부터 리치의 작품에서도 중국과 조선의 잡기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 대한 리치의 관심은 1912년 가을 우에노에서 열린 척식박람회에서 리치가 조선관에 감명을 받아 야나기에게 전해졌다는 설도 있고
야나기에 의해 리치에게 전해졌다는 설 또한 있으나 이들이 매우 친밀했으며 서로의 친분을 통해 조선의 민예품 특히
조선의 도자에 많은 교류를 가졌음은 분명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은 조선도자를 접하였으며
각자의 저서를 통해 동양도자- 특히 조선백자와 분청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설파하였다.
1928년에 발행한 그의 저서 를 살펴보면,


"스스로 디자인하고 작업을 하여 중국의 송자기(宋磁器)나 고려의 고려자기(高麗磁器),
조선 시대의 백자기(白磁器)와 분청자기와 같은 고온소성의 석기를 이 지방(세인트 아이버스)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드는 것이 나의 주되 노력이다. 왜 중국이나 한국의 것을 따르는가?
그것은 이 시대의 도자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경험에 의해 기술적으로 완전에 가깝고
숙련된 도공에 의한 정선된 그림과 색채, 소성법등은 근대 산업 제도하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의 동양도자에 대한 특히 중국과 조선의 도자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리치는 동양의 도자기가 아이디어나 기술면에서의 뛰어나다는 것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
심미적인 가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본인조차도 동양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를 제작하였다.
후에 이것을 발전시켜서 서양기술을 흡수하여, 동서양의 특성이 잘 보여지는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게 되었다.
리치가 가지고 있는 의의라면, 서구에 동양의 도자를 널리 알리는 교량적 역활을 하였다는 점이며,
대중에게 싼 가격으로 양질의 도자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야나기와 추구해 나갔던 민예운동을 본질적으로
실천해 나갔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에 대하여 과장되게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 한국, 영국의 웨지우드, 독일의 마이센과 프랑스의 세브르,
페르시아의 도자기에 이르기까지의 폭 넓은 식견을 통해 그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동양의 도자를 통해 도자기를 바라보는 안목과 아름다움, 가치를 발견했으며,
그러한 그의 노력은 그가 남긴 수많은 저서를 통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3. 조선의 <분청사기철화어문병(粉靑沙器鐵花魚紋甁)>과 버나드 리치의 1931년 [Vase]

두 도자의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문양과 분청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분청사기철화어문병>에 그려진 어문은 상당히 힘차고 율동적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민예연구가들은 우리의 정서를 '한에 기초한 정서'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보다시피 <분청사기철화어문병>에 그려진 어문은 마치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천마들을 보는 듯 매우 힘차고 역동적이다.
또한 어두(魚頭)부분은 힘찬 물결을 해쳐나가는데 전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아가미부분은 마치 여인네들의 바람에 휘날리는 치마처럼 넓게 펼쳐 있고 이러한 부분이 더욱 화병 자체를 힘 있게 보이게 한다.
또한 한 번에 힘있게 그어 내린 듯한 필력은 도공의 오랜 숙련됨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보여지는 적절한 철의 농담은 분청과 잘 어울려 15~16세기에 살았던 민초(民草)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 하다.
필자는 '어문병'을 보고 있노라면, 문양 중에서도 '해학'의 정신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어문'이 아닐까 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어문의 형태는 실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어형(魚形)은 아니다.
좀더 과장 된 듯 보이는 형태감은 해학 그 자체를 몸으로 보여준다. 그에 비해 버나드 리치의 어문(魚紋)은 날렵하다는 말이 무색하다.
아가미의 펼침과 유연한 어형(魚形)은 비슷하며 배치된 비례역시 비슷하긴 하지만 어쩐지 우리의 어문병에 비해 매우 살이 찐 모습이다.
이것은 약간의 말의 어폐(語弊)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형태적 차이점은 민족적인 정서에서 비롯된 것 일 수 있다.
원래 서양과 동양의 특징을 구분함에 있어 서양을 '양(兩)의 정서'에 동양을 '선(線)의 정서'에 각각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특성이 반영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버나드 리치의 어문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동양의 도자기,
즉 야나기로부터 소개를 받아 알게 된 조선의 도자기로부터 그가 영향을 받았다는 극명한 사실이 <분청사기철화어문병>을 통해 제시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실제 버나드 리치의 작품을 살펴보면 이러한 조선도자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꽤 많이 발견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영향은 문양이나 도자형태 모두에서 찿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영향은 절친한 친구이자 작업동료였던 하마다 쇼지로 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버나드 리치가 직접 조선의 도자를 직접 경험하고 모은 소장품들을 통해 작업에 반영시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버나드 리치는 어문(魚紋)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문은 일본의 도자에는 찿아 볼 수 없는 문양으로 그가 조선의 도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데 있어서 더욱 극명한 증거가 된다.
그는 어문이 가지고 있는 힘찬 역동성과 해학을 일찍이 알아보았다. 또한 분청이 가지고 있는 귀얄의 활발함과 자연스러움,
문양이 위치하고 있는 적절한 비례. 이 모두를 통해 동양도자, 즉 조선도자가 가지고 있는 우수성을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의 도자가 버나드 리치를 비롯한 많은 민예운동가들을 통해 민예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에 대해 지나치게 포장되어,
마치 동양의 도자가 일본의 도자인 양 왜곡되어왔다.
이것은 우리가 일본이 자신의 것을 동양도자의 대표로 포장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본채 우리의 자성적인 노력을 게을리 한 데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것을 감성주의에 기초하여 감싸지 말고 올바른 평가와 함께 우리의 우수성과 우리의 것이 가지고 있는 의의를 유추해 내는데 노력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우리의 전통도예 뿐 아니라 현대도예의 위상을 높이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행해져야 할 과제 인 것이다.


*참고 문헌
<버나드 리치의 생애와 작품세계>,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정완, 1984
<야나기 무네요시를 중심으로한 민예운동에 관한 연구>.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임미선, 1995.
<한국의 분청사기가 일본의 도예에 미친 영향> 한국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김대겸, 1996.
<조선과 그 예술>, 신구출판사, 야나기 무네요시.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