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예에서 자연은 인간형상과 더불어 주제면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도예가 린다 휴이(Linda Huey)는 어떻게 자연주의적 감수성이 흙과 결합하여 미학적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그녀는 자연세계의 충실한 재현자이며 무엇보다도 흙의 장점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도예가이다.

 

 

 

그녀는 저화도 테라코타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판성형(Slab Forming method)기법으로 형상을 만든 후 다시 흙을 덧붙여 마무리한다. 사실 그녀의 작업은 집요한 관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작품 Cruddy Versus Beautiful(1995)에서 작가는 마른 나뭇잎과 씨앗 더미들을 보이는 그대로 정밀하게 성형하여 볼(Bowl)의 형태를 유지 할 수 있도록 연결하였다. 그녀가 이 작품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인위성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인위성이라는 조미료가 첨가되면 첨가될수록 자연스러운 맛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연의 퇴적물-나뭇잎과 씨앗 더미들-을 통해 자연 속에 존재하는 생명력과 소멸의 순환법칙을 이해하였다.

 

 

Cruddy Versus Beautiful, Leaf Bowl, 10 x 26 x 23, 1995

 

 

그녀의 성형방법 중 와이어를 사용한 독창적인 방법이 있다. 미리 철사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형상에 밀어 놓은 흙판을 덮어 성형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철사가 지지하고 있는 부분은 변화가 없지만 철사가 없는 부분은 중력에 의해 처지기 마련이고 일부분은 자연스럽게 갈라지거나 찢어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약간의 옷감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미리 만들어 놓은 화장토나 흙물에 이 옷감을 적셔서 이미 성형된 기물을 감싸는 방법으로 이중성형의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방법은 소성 후에 섬유는 불에 타고 흙물은 얇은 막을 형성하게 되는데 깨지기도 하고 남아있기도 하면서 내부의 기물이 보이는 재미있는 기법이다. 이러한 기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은 Collapsed Pod(1993)이다.

 

 

Collapsed Pod, Clay, Wire, and Hay Clay, 22-1/2 x 30 x 28, 1993

 

 

이 작품은 말라비틀어진 씨앗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휴이는 이 작품에서 씨앗을 탄생과 죽음의 의미가 모두 담긴 자연의 결정체로 바라보고 있다. 씨앗의 껍질 안에는 앙상하고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뼈대는 달콤한 수분과 탱탱한 과육이 그 주변에 붙어 있었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씨앗 표면에서 발견되는 무수히 많은 크랙들은 결국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씨앗의 몸부림이다. 결국, 동물에 의해 먹히거나 파괴되고 마는 두려움과 새로운 삶을 잉태하고 발아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영속성이 이 보잘것없는 작은 씨앗 하나에 모두 결집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전시되었을 때 Collapsed Pod는 씨, 작은 나뭇가지, 관목들이 널려있는 숲 중앙에 버려진 것처럼 설치되었다.

사실 휴이는 1993년 이전까지는 도시환경에 대한 작업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자연물 재현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은 그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녀가 산책하다 주워온 마른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앙상한 껍질을 만지면서 그녀는 자연의 절대적 힘이 하찮은 작은 존재 하나 하나까지 고루 미쳐 있음을 깨달았다. 휴이의 작업을 문학에 비유하자면, 능숙한 은유법으로 자연을 노래하는 짧고 아름다운 시(詩)에 비견된다. 필자는 그녀의 작업을 볼 때마다 흙이라는 표현수단이 은유적 표현과 정확한 사물의 묘사를 위해 얼마나 적절하게 잘 사용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녀의 초기 작품 Industrial Landscape는 타일 위에 보스턴의 밀집된 공장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들, 깨진 유리창으로 더욱 삭막하기 만한 도시 빌딩들,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철구조물들로 가득 찬 풍경을 그려 넣은 것이다. 작가는 오염된 공기와 자동차의 시끄러운 경적소리들로 가득 찬 보스턴(Boston)에서 살면서 무분별한 개발이 인간의 삶을 천천히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자연과 더 가까운 도시 알프레드(Alfred Station)로 이주하면서 자연의 가치와 의미를 누구보다도 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Industrial Landscape, 1990, 31-1/2 x16x16

 

 

특히 휴이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을 주목한다. 작품을 거듭 진행시켜 나갈수록, 또한 아버지와 사별하면서 그녀는 죽음을 단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무상함과 연약함, 그리고 역경을 노래하던 자연물들-나무, 관목, 꽃, 씨앗-은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대상물 재현에 치중하기보다는 겨우내 마른 나뭇가지의 밑에 숨어있는 봄의 생명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성에 집중하였다.

휴이는 미국 내에서 지역공공미술프로젝트에 가장 많이 참가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주로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1980년 후반 그녀는 보스턴(Boston)의 포트 포인트(Port Point)의 공립양로원과 상업빌딩 미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후 그녀는 보스턴의 여러 공공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도시의 어두운 모습들을 너무도 많이 경험했고, 곧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껴 새로운 변화를 원했다.

그 해답으로 그녀는 1993년 알프레드 대학(Alfred University)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였다. 그곳에서 작가는 타일이나 용기(用器)와 같은 오브제 표면에 드로잉하던 기존의 작업 형식에서 벗어나 순수 입체 조형 작업에 주력하게 되었다. 또한 작품 주제는 시커먼 연기를 피워 올리던 굴뚝과 철조망에서 나뭇잎, 가지, 작은 씨앗들로 변화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변화는 그녀의 작업에서 실용이라는 개념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작업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업은 뉴욕에 위치한 알프레드 대학의 동창회관 라운지 미화를 위한 프로젝트 The Art Projects of the Alumni Lounge at Alfred University이다. 이 작업은 알프레드 대학의 새로운 캠퍼스 환경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 일환으로써 책임자인 아서(Arthur Powell)와 리 파웰(Lea Powell)의 의뢰를 받아 설치되었다.

 

 

알프레드 대학교 동문회관 라운지 환경미화를 위한 프로젝트, 1995

프로젝트의 설치과정

 

 

그녀의 작품들은 라운지 내부에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데 그 전체 길이가 30m에 이른다. 그녀는 이 작업에서 건축과 도예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띠 장식 형태의 설치 방법이며 이를 위해 총 115개의 도자 조형들이 제작되었다. 설치방법의 성격상 올려다보아야 하는 관람자들의 시선에 따른 거리와 높이를 고려하여 혹은 형태에 따라 달리 배열되었다. 설치시의 혼잡을 피하고 전체조화성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 휴이는 성형과정에서부터 이를 미리 계산하여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오브제들은 다양하지만, 절대 조화로움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작되었다. 이것을 기회로 그녀는 도예가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알프레드 대학교 동문회관 라운지 환경미화를 위한 프로젝트 중 일부1

알프레드 대학교 동문회관 라운지 환경미화를 위한 프로젝트 중 일부2

 

 

작가는 요즘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도자 조각들을 몇 개씩 결합하거나 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이한 느낌의 색과 텍스처를 결합시키는 일이다. 그녀의 작업에서 사회적인 이슈나 자극적인 도발을 느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대신 고요함과 편안함, 그리고 자연과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을 경험한다. 젊은 도예가 휴이가 앞으로 우리에게 보여 줄 많은 시각적 즐거움이 사뭇 기대된다.

 

 

Form Without Edge, Handbuilt terra cotta sculptural vessel. 25 x 14 x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