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 관 호 (홍익대 도예과 교수)

하세가와 나오토는 1958년 교토출신으로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현재 같은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젊은 작가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일본내에서만 다섯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올해 7월 서울의 토·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야기 가즈오(八木一夫) 현대도예전과 미노(美濃) 국제 도예전 및 Fletcher challenge ceramics award(뉴질랜드)등에 출품하였고 한·일청년작가 교류전 등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소개가 되었었다.
이상의 개인경력으로 보면 하세가와 나오토는 정규과정을 거친 일본의 도예가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작품에서의 인상은 일본의 여느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서울에서의 전람회에 출품한 작품들은 손 안에 들어올 정도의 작은 과일이나 나뭇잎 같은 형태에 금속선으로 줄기를 만든 후 벽면에 부착한 것들이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생각하면 소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전시공간을 적절하게 배분하여 하나하나의 무게감을 더하는 연출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면밀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세가와 나오토의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일본의 현지 비평가들이 읽고 있는 이른바 ‘물질성의 위엄’ 내지는 ‘존재감의 강도’와 같은 형이상학적 태도라 할 것이다. 하세가와의 작품들은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출품되지 않았지만 90년대 초반의 작품들은 대체로 평면적인 형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작품에 대한 스케치 없이 흙 덩어리에 손을 뻗어 두드려나가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흙판의 모양을 보고 다시 형태를 생각하는 것을 반복한 후 완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도예를 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을 수 있는 제작과정의 하나이지만 단순히 흙판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손으로 두드리거나 밀대로 미는 행위의 근본적인 목적은 원하는 크기와 두께의 흙판을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하세가와의 경우에는 흙판을 두드리는 과정에서 작품의 원형을 생각하고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까지 반복되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물론 이와 같은 행위 또는 결과가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해 버려도 좋을 만큼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작가자신은 그 과정 안에서 ‘자연 혹은 자연스러움’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흙을 빚고 자신의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이입되어 흙이 변형하고 흙이 원하는 것이 곧 자신이 구하는 것이며 자신과 흙과의 대화에 의해 자신이 원하는 모양 즉 흙에 있어서 무리가 없는 형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자연이라는 것은 자신의 욕구에 의한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양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언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자신의 욕구대로의 형태인 것이다.”

상당히 난해한 듯한 작가의 말이지만 흙판을 만드는 과정 안에서 자연스러운 조형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흙 외에 다른 재료가 감당할 수 없는 독특한 물질성 바로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적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판 만들기가 끝나면 흰색이나 갈색등의 화장토를 몇 번이고 두껍게 겹쳐서 칠하고 건조된 후에는 그 위에 물을 흘리거나 적셔서 표면처리를 한다. 물이 적셔지면 겹쳐진 화장토 층은 단시간에 침식되어 떨어져 나가며 그 결과 맨아래층의 태토와 겹쳐진 화장토의 각 층들이 복잡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마치 오랜 시간의 변화에 의해 부식되어 버린 듯한 느낌의 흙판이 완성되는 것이다.
결과물만을 놓고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질감에 지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하세가와가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무언가 미적 감동을 유발하는 요인이 있고 또 그것을 읽고 느끼는 일본 특유의 눈과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평론가 가네코 겐지는 하세가와가 만들어 낸 질감이 종래의 도예에서 얻어지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土→陶」라는 전환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른바 ‘물질성’의 결과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에 의해 뜯겨져 나간 공정들을 시간과 역사의 결과로 치부하고 그 질감은 보는 이를 해방시키는 감각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힘은 다시 소박한 색감과 강인한 정신성과의 공존으로 해석되어 하세가와 나오토가 구하는 ‘존재감의 강도’로 귀결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이면에는 하세가와라는 작가가 구하고자 하였던 조형어법에 대한 근원적인 배경이 존재하고 있다. 하세가와의 시작은 일본화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상징적이고 몽환적인 양식의 작품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암각화와 같은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물감의 텍스츄어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으며 그 속에 도예와 가까운 것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바로 접목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초기 작품은 평면도판에 회화적 공간을 묘사하게 되었고 그 중의 하나가 신문지의 주름이나 돌의 질감 등을 도판 위에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단순히 형태를 묘사하는 매우 얇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겹쳐진 화장토를 물로 침식시키는 기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침식시켜 어떤 질감을 나타내는 것 외에도 하세가와의 도판은 겹쳐진 화장토의 두께에 의해 새로운 3차원의 입체로 전환된다는 해석이 따라 다니게 되었다. 넓게 펼쳐진 도판은 일견 2차원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위에 화장초가 겹겹이 칠해짐으로 얇지만 양감이 있는 입체가 된다는 것이다.
평면적 도판의 과정을 지나 하세가와의 작품은 평면과 입체가 병용되거나 입체 단독으로 표현되면서 변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가 시도하게 되는 것은 타재료를 이용한 작품제시의 방법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작품에 어쩌면 흙을 능가하리만치 과감하게 금속선을 사용하여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도예에 타재료가 함께 사용되는 것이 보편적인 지금, 그의 작품에서의 금속선이 그다지 충격적인 것이라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타재료의 장점을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원래의 작품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보완하여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세가와의 작품은 쉽게 그리고 편하게 생각하여 쓱 훑어보고 고개를 한 두번 끄덕거리면서 일본적이다라고 하면 될 정도로 당장 눈에 띌 만한 크기나 현란한 기교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접한 몇 안되는 자료들을 통해 그의 작품에 대한 일본의 시각들이 대단히 우호적임을 알 수 있었다.
하세가와와 같은 연배의 출중한 작가들이 없는 것도 아닌 일본의 현실에서 그의 작품이 조용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일본 현대도예의 전통적 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형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초창기 일본 현대도예를 대표하는 소데이샤 멤버들의 방법론과 여러가지 유사점을 느끼는 것이 필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일본 내의 다른 곳의 작가들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지역적 정서’가 내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도예에 관한 한 전통적이든 현대적이든 집요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는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부각되고 있는 하세가와 나오토의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의 도예를 지탱하는 한 줄기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