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7세의 도예가 판펭린을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지난 10월 17일 중국 광저우(廣州) 인근의 타일과 위생도기 산지인 포산(佛山)의 국제도예학술회의에 참가했다가 그 지역의 유명 도예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주로 인물이나 풍속 등을 묘사한 공장의 한편에는 유명장인들의 작품이 진열된 전시장이 있었고 그 가운데 눈을 끄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거의 실물크기의 불개미가 잔뜩 붙어있는 나무등걸이었는데 개미의 발 하나하나 역시 흙으로 묘사되어 있었으며 사마귀까지 한 마리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약 80cm의 크기나무는 물론이거니와 개미들의 표현이 다채롭고 실재감이 뚜렷하였다.
작품을 살피는 중에 한 사람이 다가와 자신의 것임을 밝혀 명함만 건네는 정도의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학술회의 마지막날 포산시내의 시완(石灣)에 있는 도자기전시장들을 다시 둘러보던 중 한 전시장에서 유사한 작품이 눈에 띄었고 마침 자리에 있던 판펭린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판펭린은 광저우(廣州)의 슌더(順德)출신으로 도예는 물론 중국화, 서예, 전각 등 다방면에 능력이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곤충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은 종래의 시완소형조각¹⁾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작들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결과 곤충대왕이라는 별호가 붙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판펭린은 전통적인 시완 소형조각의 많은 소재를 외면하고 곤충에 집착하였을까?
"나의 창작의 영감은 대자연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 새 한 마리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며 자연을 보호하고 평화를 간구하는 인류의 소망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 나는 대자연을 숭상하며 대자연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고 싶다. 대자연이 부여한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의 창작의 방향은 자연스러운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며 곤충의 외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미를 나타내는데 있다. 바로 이 점을 기저로 나 자신의 뜻과 마음을 융합시켜 전통적인 작품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펼치고자 한다.
전통적인 시완의 작품에서 사용되는 유약은 두껍고 무거우며 흙 역시 단조로워서 표현의 한계가 있다. 오랜 기간의 실험을 거친 후에 안료와 점토를 혼합하여 색과 질감을 나타내는 방법을 터득하였으며 제작기법 또한 종래의 것에 나 자신이 개발한 것을 포함하여 모두 18가지의 기법을 사용한다."

작품1 連生貴子(계속 태어나는 아들) 10*9*17

작품2 勝者爲王(승리자) 24*12*24

 

이와 같은 작가의 말은 곧 자신의 조형어법은 물론 기법과 기술에서 나름대로의 방향을 확정한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고 섬세하기 이를데 없는 판펭린의 작품을 이해하기 앞서 우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에서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경향들에 대해 먼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10여년전 중국 일대를 여행하는 동안 항저우(杭州)에서 중국어로 미조(微彫)로 불리는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쌀알에다 불경을 새기는 것은 물론 복숭아씨에 배를 타고 노니는 100명의 사람을 조각한 것도 보았으며 더욱 절묘한 것은 머리카락에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를 선각한 후 색깔까지 칠해 놓은 것을 현미경으로 확인하였던 경험이 있다. 극히 작은 세계를 탐구하는 반면에 진시황의 병마용과 같이 1,000여명의 실물크기의 병사와 말을 흙으로 구워 부장용으로 쓰기도 하는 대극적인 양면성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중국이며 중국예술의 한 단면인 것이다.

 

작품3 勝券在握(이길 수 있는 확신) 24*11*11

 

판펭린외에도 시완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형조각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장에서 싼 것은 우리돈 2-300원에 불과했지만 비교적 묘사가 정확하고 인물의 경우 표정까지 나타내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판펭린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곤충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고 그것의 외형은 물론 정신적인 면까지 표출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었기에 지금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작년 도자기엑스포의 세계현대도예전에서 관객의 눈을 가장 많이 끈 작품은 마릴린 레빈의 가죽점퍼였다고 한다. 작품의 크기와 예술성은 차치하고 일상의 사물을 흙으로 재현했다는사실 하나만으로 일반인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판펭린의 작품들이 관객의 눈을 끄는 것도 레빈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레빈이나 판펭린은 사물의 단순한 재현이 목적이 아니라 사물이 가지고 있는 내적 정서, 다시 말해 존재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동향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사물들이 작품으로 제시되는 것을 보아 왔다. 하이퍼 리얼리즘이 그랬고 팝아트의 일부 작품들이 그랬다. 미술개념의 변화는 매체의 발달과 함께 치열한 작가정신에 의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만들어 온 것이다.
판펭린의 작품은 흙의 조형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사물에 대한 집요한 관찰력과 그로 인한 새로운 세계의 발견인 동시에 막연하고 모호하며 무언가 심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듯한 대형 작품들과 대비되는 주목할 만한 조형언어의 하나라고 판단된다.

 

작품4 牧牛(목우) 8*8*16

작품5 戰無不勝(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12*13*24

사족: 80cm의 나무등걸에 8mm의 개미 200여마리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15일 정도라고 하여 되물었더니 빨리 만들지 않으면 개미다리가 체온 때문에 말라버려 부러진다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