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 진 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개인전 20회, 단체전 다수, 아사히 외국인 유학생 미술전, 쥬니치 도예비엔날레, 미노 국제도예공모전,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등 저명한 공모전에서 입상. 이제 막 30대 중반을 넘긴 젊은 작가의 경력치고는 화려하다. 특히 한 해에 한번 하기도 힘들다는 개인전 20회의 경력이 눈에 띈다. 그것도 매 전시마다 다른 작품으로 구성된 개인전이라고 한다. 과연 어떤 열정을 지닌 작가이기에 이렇듯 많은 전시들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이정석은 1996년 대학을 졸업한 후 ‘계속 도예를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지닌 채 일본 유학길에 올랐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흙을 떠나 살 수 없는 도예가가 되었다. 일본에 있는 7년 동안 흙이라는 매체가 지닌 매력과 도자기에 대한 관객들의 열정을 흠뻑 느꼈기 때문이다.

전시, 특히 개인전에 대한 이정석의 애착은 남다르다. 도예가로서의 자신감을 갖게 해 준 것이 바로 개인전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학생의 신분으로 가진 첫 번째 개인전에서 일본 관객들이 보여준 관심은 그에게 작업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갖게 해 주었다. 또한 스승인 고이에 료지 교수는 전시 작품에 대해서 많은 충고를 해주었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다양한 내용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정석은 전시를 자신의 시험무대로 삼고 유학기간 7년 동안 무려 16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매년 공모전에도 도전하였다. 그 결과 각 공모전에서 상위 성적으로 입상하였고 여러 갤러리에 초대되어 많은 전시에 참가하게 되었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흑도나 라쿠 소성을 통해 재료의 질감을 살린 그의 작품들은 원시적인 생물을 연상시키는 기형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친근감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한 표정을 지녔다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들. 마치 어린아이가 만든 듯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양한 표정을 지닌 작품들에는 작가의 천진난만한 상상력이 가득 묻어있다.  

 

 

 

 

이정석의 작품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과정이 유희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작업을 시작할 때 많은 준비와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지만 작업에 심취할수록 계획과는 전혀 다른 형태들을 만들어 결국 자신조차도 생각지 못했던 창조물을 일궈낸다. 마치 흙장난을 하듯 태토를 주무르고, 펴고, 누르고, 긁고, 말고, 붙이는 동작의 반복을 통해 자동기술법적 조형 혹은 무작위의 작위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흙에 톱밥, 쌀겨, 거름, 스티로폼, 모래, 금속 등의 이물질을 섞어 태토의 다채로운 변화를 유도하면서도 흙 자체에서 오는 질감과 작품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결부시켜 작품의 다양한 표정을 능숙하게 끌어내고 있다. 즉 도자기의 숙명적 형태인 둥근 곡면체와 흙의 물성에서 비롯된 유기적 형태를 적절히 조합해 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산업대 한길홍 교수는 그의 귀국 후 첫 개인전 작품에 대해 “그의 동물 형상들은 생명체의 움직임이다. 그것은 곧 탄생을 의미하며 또 하나의 진화를 얘기하고 있다. 그는 흙 작업에서 감각과 촉각이 한데 어우러지는 숱한 생명체의 모습을 만들어가며 잉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재현도 복제도 아닌 그만의 생성력에서 빚어지는 조형적 산물이다”라고 평하였다. 한길홍 교수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정석의 작품은 원시적인 형태에서 유기적으로 살아 생동하는 한 생명체로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진화는 비단 형태의 변화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상상력과 창조에 대한 의지를 반영한 진화임을 알 수 있다. 단지 하나의 질료에 불과했던 흙덩어리로부터 형태를 만들고, 그것에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완전한 의미를 지닌 하나의 포름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실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표정의 형상들. 그러나 그 표정들은 한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최소 5번 이상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찾아낸 그만이 가지고 있는 표정들이다. 손 가는 대로 쉽게 제작된 듯 보이지만 작품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손놀림과 관찰이 있었던 것이다. 유학시절, 같은 것을 100개씩 만들어 보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 그는 오늘도 경기도 광주의 아름다운 마을 장심리에서 새로운 생명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생명체들은 또 다른 진화를 꿈꾸며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수회의 전시를 통해 작업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얻었듯이 앞으로도 많은 작품발표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진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