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1999년 일본 크라프트전의 심사위원단은 공모전 개최 이래 최초로 외국인에게 대상을 수여하였다. 수상자는 아이치현립예술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던 한국인 고희숙. 일본작가들도 입상하기 어렵다는 일본 크라프트전에서 한국 유학생이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크라프트전은 입상과 동시에 촉망받는 작가로 주목받기 때문에 일본 도예계의 모든 관심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고희숙은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치현립예술대학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쳤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아 대학원에는 입학하지 못하고 사카에기 마사토시 교수의 소개로 세토요업기술센터에 연구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모든 작품에 있어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다음 해 대학원에 진학한 고희숙은 세토요업기술센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카에기 교수의 지도아래 작품을 제작하던 그녀는 1999년 일본 크라프트전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일본, 독일, 한국 등 여러 나라의 디자인 관련 공모전에서 입상하였다. 그리고 한국작가로는 최초로 INAX 타일회사에서 주최하는 신진작가발굴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1999년 크라프트전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WHITE VESSEL'이라는 작품은 백자소지의 화기로서 슬립캐스팅기법과 물레성형기법을 연결한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장 타카하시 토시히코는 “제작자 본인의 코멘트 중에 ’슬립캐스팅의 좋은 점과 수작업의 좋은 점을 연결하였다‘라는 실로 간결한 문장이 있다. 틀에 의한 경질감과 물레의 의한 부드러움과의 융합. 단 한 단락의 이 코멘트가 이들 작품의 어딘지 모를 매력 그것이다. 푸르고 맑은 투명감이 넘치는 유약을 내측에만 시유하였고, 그로 인해 잘 구워진 자기표면의 아름다움이 보다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에 집합된 밸런스의 미에도 주목하기 바란다. 거기엔 그녀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 감성의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평하였다.

 

 

 

 

심사위원장의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희숙의 작품은 내용과 기술적인 면 모두에서 공모전의 주제였던「연결하다」를 기발하면서도 완전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슬립캐스팅 기법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틀에서 같은 모양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는 단점도 같이 갖고 있다. 그러나 고희숙은 틀에서 성형된 획일적인 기형에 수공예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물레성형기법을 연결함으로써 형태 하나하나에 미묘한 변화를 주고 있다. 이는 독창적인 디자인 제품이 예술적 작품으로도 인식될 수 있다는 것과 공예적 작품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기술과 예술이 조화되어 인간 생활에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동시에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양한 아이템을 개발하여 소비자들에게 각양각색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그 기물들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즐거움을 엮어주고 있다. 특히 물레로 마무리한 전 부분의 자연스러운 선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외형선, 투명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의 청백유, 손으로 느껴지는 고운 자기질 표면 등은 사용자들에게 ‘얼음처럼 맑고 투명한’, ‘은은하고 부드러운’ 등의 다양한 수식어를 지어내게 하는 조형적, 디자인적 요소들이다.

 

 

 

 

고희숙은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작품발표를 하고 여러 곳에 디자인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기대하는 부분이겠지만 고희숙 역시 자신의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아직 한국보다 일본에서 인지도가 더 높다. 특히 일본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브랜드가 생길 정도로 수요가 일고 있다.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과 백자의 단아하고 부드러운 미감은 보는 이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작품이 구매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면 한국과 일본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공예디자인제품을 친근하게 여기는 일본소비자들의 구매행태가 이러한 차이를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도자기 제품을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한국소비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고희숙은 도예가이자 도자디자이너이다. 한국에서 도자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다소 생소한 것이지만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는 도자뿐만 아니라 공예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예디자이너들은 현대 생활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고희숙도 이들과 더불어 실력 있는 한 도자디자이너로서 우리의 삶에 질적 향상과 미적 가치를 전해주려 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이 좋은 디자인으로 이어져 현대의 생활문화가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