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데스크한 드로잉
언제부터 미술은 재현성을 부정하고 자율성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조신현
그로데스크한 드로잉 글 / 이진숙 한향림갤러리 큐레이터
언제부터 미술은 재현성을 부정하고 자율성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미술이 환영주의적 전통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향하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미술에 대한 작가들의 변화된 개념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예가 조신현의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새로운 형태와 장식기법의 개발에 몰두하여 왔던 그의 침묵을 깨는 첫번째 개인전이다. 전시장에 펼쳐진 조신현의 작품들은 예술과 공예의 한계에 대한 논란이기보다는 '재료에 대한 충실함'으로 그 주제에 접근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전까지 백자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작업들의 시도들은 다분히 시각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들인 반면 이번 작품에 나타난 그의 대담한 선적인 형태들은 진정 새롭고, 과거의 양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올해 제5회 청주국제공모전 <<창조적 진화, 깊고 느리게>> 라는 주제로 은상을 수상한 작가는 서로 다른 색 판들이 겹쳐 선을 이루고, 그 선들로 인한 면에 조각을 함으로써 선들이 변화하고 서서히 하나의 조형물로 진화되는 것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선들은 흙을 한겹 한겹 기도하듯 며칠을 쌓아 작은 몸체의 덩어리를 만들고 인내하며 조각하여 형태를 만들고 장시간의 건조와 번조를 통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이러한 작업과정은 기(器)가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 개념에서 다소 이질적이지만 새로운 영역을 모색하는 탐구의 길을 점토가 가지는 풍부한 표현력으로 확장시키게 된다.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그의 드로잉은 대담하고 단순한 선 위주의 양식을 구사하였는데, 이것은 다양한 색소지의 사용으로 한층 부각된다. 표면장식에서의 모든 선은 마치 조각처럼 만져질 듯한 인물형상들 원근접적 질서에 의해 재현된 공간 안에 배제해 놓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색채와 형태의 유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추상적인 공간으로까지 그려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선 양식들은 물감이 흘러내리듯 유동적인 색채의 독자적인 움직임들을 보여주며 섬세하면서도 공격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그로데스크한 드로잉으로 조각되어진다.
사실 도예작업만큼 과정에 신경이 쓰이는 작업도 드물다. 그것은 번조라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몇일 혹은 몇 달간 진행한 작업이 갈라지거나 깨지는 등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가 어려운 제작 방법을 택한 것은 새로운 기법에 대한 모험과 실험정신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노력과 관심으로부터 기인된 새로운 시도는 독자적인 개성이 작품 속에 담겨지고, 마치 기초를 제대로 다진 새로운 건축물처럼 단단한 작업으로 연장된다. 바로 이러한 노력의 과정들이 장인정신이 가졌던 혼신의 미의식과 더불어 현대생활과 맞닿는 끊임없는 실용성과 소통의 미학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