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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DELAY-pieces-05, 2005

현대의 도자조형은 전통이라는 역사성과 현시점을 함께 형상화시키고 있다고 하는 장르로서의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본인의 제작은 자신의 사고를 어떤 방법으로 '도(陶)'의 표현과 결부시켜 가느냐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도예의 본질적인 고유성, 즉 역사 속에서의 전통을 숙지하여, 그것을 도예가 가지는 '보편성'으로 보고, 그것과 현대를 살아가는 현 시점에서의 '한 개인'인 나 자신과 잇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본인은 '도(陶)'의 특성에 거슬리는 일 없이 자신의 의도에 맞춰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도(陶)'의 한계가 허용되는 선을 '경계선'이라고 간주하여, 그 선상을 찾아가며 제작을 하고 있다. '경계선'은, '도(陶)'로서 하나의 형태로 표현이 가능한 '소재로서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 이외에, '도예의 필연성과 제작의도가 맞물리는 선'도 의미한다. 본인의 조형은, 윤적법 성형에 의한 곡면과 석고 틀 성형에 의한 원통을 주요 요소로 한다. '부분과 전체', '유기와 무기', '안과 밖'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형태를 제작하여, 각각 조형과의 '사이'가 의식되도록 제작하고 있다.
'도(陶)'라고 하는 특유의 프로세스에 의해 형성되는 도자조형은, 본래의 특성에 따라 '하나로서의 전체(단독체)'로서의 성질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본인은 이와 같은 단독체로서의 도자 본연의 성질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공간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표현을 위하여, 그 성질의 강약을 조정하는 것에 착목하여 조형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나는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세계와 현실세계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상위(相違)에 대해 고찰하고, 그 표상의 이미지를 프랙탈과 결부하여 조형화하고 있다. 일견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표상일 뿐 실제는 무수한 공동(空洞)의 집합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프랙탈의 구조가 공동을 가지는 단위로 되어있다고 하자. 세부로 들어갈수록 구조는 밀집해져 서서히 덩어리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제는 무수한 공동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상은 극히 응축되어 가면서도 큰 '공간의 장'을 향해 열려져 있다. 완결되지 않으며 절대적이지도 않다. 나의 표현에서 사용하고 있는 원통안의 '공동(空洞)' 역시 이와 같은 내부구조이다. 본인은 '덩어리' 그 자체가 아닌 내부에 '공동(空洞)'이 있으며 그것이 외부를 향해서도 열려져 있는 조형을 지향하고 있다. 그 표현의 기조가 되는 것은 '부분'과 '공동' 두 역할을 겸비한 원통을 기본형으로 하여 그것에 의해 내부구조를 제작하고, 원통과 원통 사이를 윤적법에 의한 곡면으로 이어나감으로써 원통내부의 공동이 형태 내부 공간으로 전개되어 가도록 하였다.

CONCERN 1-2, H93,W108,2006

CONCERN 2-1,H28,W25,2006

원통에서 시작하는 형태
무기적인 원통에 어떤 규칙성을 기초로 하여 전개함에 따라 점차 유기적인 형태로 되어간다. 원통에서 시작하여 완성되는 전체적인 형태에도 원통의 형상을 띠는 곳이 나타나도록 의도했다. 이것은, '부분성'을 표현하는 것과 연결된다. 원통은 공동을 가지는 것으로서의 역할과 무기에서 유기로 전개되어 가는 출발점에 해당하는 형태이다.

외적인 형상과 내부구조
안의 구조가 밖의 형태를 존재하게 한다. 내부가 있으므로 외부가 형성되며, 그렇게 나타나게 된 외적 형상은 내부를 반영하거나 암시하고 때로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부는 어떤 목적을 기초로 구성, 연결되어 있으며, 외형은 이와 같은 내부의 의도에 따라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원통내의 공동은 형태 내부에 펼쳐지는 통로이다. 이 통로는 밖에서 보면 무수의 구멍으로 보인다. 일견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서서히 여기 저기 열려 진 구멍이 보이고, 더 접근하게 되면 그 구멍이 통로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내부의 통로가 외부의 원통과 이어지고 그 외부의 원통 면이 곡면과 이어져 그것이 또 다시 내부로 들어가는 양상이 보인다. 덩어리처럼 보인 형태가 원형의 통로로 이어진 같은 두께의 극히 얇은 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본인은 외형보다 그것이 표면상에 나타나지게 되는 경과에 대하여 고찰하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나에게 있어서 '덩어리'란, 내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단순히 표면상의 이미지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하여 '덩어리'가 아닌 작품을 만들고자 하였고, 그렇게 이끌어 낸 원통 속의 '공동(空洞)'은 내부구조이며, '구멍'은 내부로 향해 열려져 있으면서도 밖으로 향해서도 열려진 입구이다.

CONCERN 2-5,2006

CONCERN 2-2, H8,W21,D17,2006

윤적법에 의한 곡면과 원통에 의한 조형
윤적법은 손에 직접 접하여 만들어 나가 흙 속에 만드는 이의 상념을 담아 간다. '도(陶)'의 성형원리를 가장 직접적이고 원초적으로 표현한 방법이 윤적법이며, 그 근원적인 표현은 기(器)의 형태를 취한다. 윤적법에 의한 성형은, 형태가 보여 지기까지 일정하게 순차적이고 직접적으로 손으로 빚어간다는 것이 특성이며, 이것은 나의 조형에 있어서 중요한 제작과정을 충족시킨다. 윤적법에 의하여 부분인 원통과 원통 사이를 이어나가는 곳에 곡선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곡면은 원통의 구조를 내부로 하여, 이 내부를 감싸듯이 나타나 원통내의 '공동(空洞)'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이렇게 구조가 이중으로 되어 두 가지의 내외관계가 만들어진다. 원통내의 '공동(空洞)'을 안으로 하여 그것에 대한 밖과, 원통 외면과 곡면 사이인 '중공(中空)'을 안으로 하여 거기에 대한 밖이 그것이다. 곡면은 '관계'라는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요소이다. 윤적법에 의해서, '부분과 전체', '안과 밖', '유기와 무기'와의 관계성이 새롭게 생겨나 서로를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하나의 형태 속에 있는 관계성이 주위의 조형과의 사이에 있어서도 나타내려는 의도, 이것은 단독체로서의 형태로부터 전체로 향하고자 하는 가능성을 내재한 형태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부분에 의해 전체를 느끼게 하는 일.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부분이 하나의 전체(단독체)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다른 작품과 함께 놓여지는 경우는, 상호관계에 의해 '더 큰 전체를 위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독립된 형태라기 보다 더 큰 전체 속에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형태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의 표현으로써, 단독체로서의 성질을 완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도예는 단독체로서의 성질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형태와 물질, 양 측을 모두를 포함한 성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예는, 흙이라고 하는 소재를 통해 아무것도 없는 제로의 상태에서 어떠한 형태를 지향하느냐가 중점이 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소성에 의해 흙에서부터 도자로 물질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도예가 가지는 필연적인 특성이다. 이와 같은 제작과정으로 인해, 도예는 주로 '단독체'로서 성립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독체로서의 도자 본연을 받아들이면서도, 제작의도로서 그 본래의 성질을 완화시키기 위해, 각각의 조형의 '사이'를 의식하게 하는 표현을 시도하였다. '사이'는 관계를 의미한다. 하나의 조형 속에서의 '사이'는, '안과 밖', '유기와 무기',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로서 존재한다. 이것은 원통과 윤적법에 의한 성형을 통하여 표현되는데, 이 과정을 공간으로 확대하여 조형과의 '사이'에도 역시 관계가 형성되도록 의도하고 있다. 하나의 형태 만들기에 있어서도 그리고 공간 만들기에 있어서도, 서서히 명확해지도록 하는 것. 이것은, 조형의도를 '도(陶)'의 제작과정을 통해 표현해 나가고자 하는 도자조형의 필연성과도 결부된다. '하나의 형태가 나타나지는 것'과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서로 비추어져 자연히 연결되어졌다. 공간에 점차적으로 성격을 주게 하는 도자조형, 이것을 진행시켜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글 /최영희

DELAY-pieces-05-1,2005

hidden-03-3,-2003

hidden-2003

도(陶)로서의 필연적 조형을 모색하는 작가

오늘날 미술은 각 장르의 해체,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만연하다. 장르간의 붕괴로 인한 미술언어의 다양화현상은 표현방법에서 외적, 내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도예 또한 동시대 미술의 한 분야로 그 확장된 영역 가운데 작가 또한 구분된다. 전통성을 추구하거나 기존의 것을 무작정 답습하는 작가, 도예라는 본연의 특성을 인식하고 작업하는 작가 혹은 도예라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현대미술 안에서 작업하는 작가 등 많은 의미를 가진 채 도(陶), 도예라 불리는 작업이 이어져오고 있다.

최영희는 현대도예의 다양한 방향성 가운데 현대미술과 유사성을 보이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여지는 것일 뿐 분명한 건 작가가 도예가 지닌 본질적인 차이를 인식하고 이를 조형언어로 소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도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시각예술장르로서 현대미술과 맥을 같이 하느냐, 도자 매체의 특수성과 근원적인 접근방법으로 바라보느냐로 봤을 때 작가는 후자의 관점으로 충실히 작업에 임하려 한다.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며 도예의 필연적 조형언어를 찾아가는 것이 오늘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 의아했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하고 고집 있는 자신의 작업관으로 현대미술에서 조형도자의 입지를 다져가려 한다.
‘도예라고 하는 장르는 도자로서만이 표현될 수 있는 조형으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 소재와 개인, 전통과 현대 그 조화 속에서 심층적으로 이루어지는 제작만이 전체 미술 안에서 방향을 상실하거나 고립되지 않는 유일한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노트

내.외적 ‘관계 보기’
최영희의 작업은 세밀한 형상을 보여주지 않지만, 공간과 원통, 연결됨 등 그것들이 한데 뭉쳐 이뤄내는 게슈탈트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때론 검은 괴물 같이 그로데스크하며, 마치 세포의 모양을 확대한 냥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을 자세히 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인간의 신체에서 끄집어낸 심장 같다고 말한다.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지 않은 흑백 단색조의 조형작품이 이렇게 관람자에게 열린 해석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화려한 색에 의한, 구상적인 조형물도 아닌 덩어리는 텅 빈 통로(원통형)를 따라 시선을 안과 밖으로 이끈다. 이것은 색을 배제한 모노톤의 작품으로 형태에 몰입할 수 있게 함에서 비롯된다. 그 안에 펼쳐진 원통형의 비슷한 구조들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무기체에서 시작되어 서로 얽히고 이어주는 유기체 세계로 확장됨을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무기에서 유기체로 변모된 작품은 생명력을 불러일으키고, 작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공간 밖으로 뻗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은 원통형이 모여 전체를 이뤄가는 형태의 총체적인 연결성, 관계성을 중시하는 작업의 시작으로 에서는 더욱 안과 밖으로 확장된 열린 시각을 보이며 상호 관계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공간에서 비롯된 작품과의 관계성, 작품들 간의 관계, 작품 하나에서 보여주는 이 모든 관계는 작은 부분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전체를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연관성이다. 결국에 작가가 말하는 ‘안과 밖’ ‘부분과 전체’ ‘무기와 유기’는 표현방법에 있어서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연결된 고리,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최영희 작품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연관성, 관계성이 전시장이나, 작품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은 작고 작은 것들의 집합체이며, 각각의 독립적인 개체이자 전체이다. 끊임없이 무한 매핑(mapping)으로 뻗어가면서 다시 안으로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의 관계이기도 하다. 곧 이것은 나를 중심으로 또한 조형도자를 기반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것이 결국 자신에 대한 성찰과 도자 매체의 경계를 넘어서 혹은 그 경계에서 만난 조형으로 상호작용하는 또 다른 관계 맺기로 이어진다고 본다.

살아있는 유기체 되기
흥미 있는 다른 하나는 유기적인 생물체로 변화됨이다. 크기가 다른 구멍들은 그 구멍 통로 안으로 시선이 따라가다 다시 밖으로 나가서 내부, 외부를 보게 한다. 원통형의 구멍을 연결 지어 나간 덩어리는 자연을 닮아 생명력을 품고 있다. 텅 비어있다는 것은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이것으로 인해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낸다. 또한 공간을 만들어 안과 밖을 경계 지으면서 결국에는 경계를 허물고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순환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기의 원통형에서 시작하여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연결고리, 다양한 크기의 구멍들은 시공간과 생명을 담아낸 전체 덩어리로 살아나 다양한 생각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색을 배제하여 형태에 집중 할 수 있게 만든 모노톤은 그 검은 톤과 흰 톤을 선택함으로 더욱 새로운 유기체에 가까워진다. 색이 가진 특성상 흑백색은 모든 색을 내포하고, 생산해내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지니기 때문이다. 형태에 스며든 색은 단조롭지만 그것으로부터 움직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생성되어 나가는 혹은 새로운 유기체가 생성되기 이전의 모습들을 담고 있듯 말이다. 사실, 작가는 색에서 느껴지는 연상을 제거하고 형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찾은 색 이였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우리가 보는 것은 색과 형태, 공간감을 통해 구멍들의 관계, 연결성과 조화된 색으로부터 이성보다 몸으로 미메시스적인 감성을 가지고 '유기체- 되기'를 느끼게 된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한 최영희는 2005년 아사히 도예전에서 작품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공모전이 마라톤처럼 오랜 시간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모르겠으나, 도예분야에 있어 역사가 깊은 아사히 도예전에서 수상한 작품은 작가가 그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된 작품이 수상한 것으로 앞으로 진행되어가는 작업을 가능하게 했다는데 의미가 있고,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은 분명할 것이다. 오랜 시간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고 나만의 것을 흙과의 대화를 통해 차근차근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재와 철저히 치열히 마주하는 작업의 자세로 현대도예의 경계선상에서 즐기고 있는 작가를 볼 수 있었다.

글 / 김지수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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