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에의 헌신'이란 말은 창조적 분야에 속하는 이들에게 아주 당연한 듯이 느껴지는 것이지만 실지 우리의 주변에서 '작업에 헌신'하는 제작인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공예의 분야에서 원료를 선별하고 재료를 정련하는 끈질긴 인내가 요구되는 제작적 특징을 갖는 경우에 '작업에 헌신'이 전제 조건으로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그 작업은 처음부터 '프로'를 벗어난 '아마추어'에 머무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정도兄과의 오랜 교우를 통하여 제작인으로써 정도兄의 면모를 볼 수 있었고 신뢰할만한 도예가라는 확신을 갖은 지 오래였다.

그는 아카데미 안에서 도자작업을 시작한 소위 현대적인 도자수업으로 출발한 도예가이다. 대학졸업 후 도예가 신상호교수의 부곡도방요(釜谷陶房窯)에서 수련을 하며 일본 견호요(見湖窯)에서 2년간 연수의 기회를 가졌다. 대부분의 외유도예가들이 외국의 현장에서 인식한 도자를 귀국하면서 그대로 이식시키려는 시류와 달이 그가 일본의 현장에서 느끼고 다짐해 왔던 것은 철저한 제작인으로 가져야 할 정신과 도자기와 우리 사회와의 만남에 대한 노력의 필요성이었다.

6년 가까운 부곡도방에서 수련은 原料에서부터 完成에 이르는 전 과정을 스스로 해내는 진실한 의미로서 제작인의 자격을 획득하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도안 얻어진 생산 현장에서의 체험을 도자에 대한 그 나름의 입장을 정리하는 한편 우리 한국 도자의 큰 흐름 속에서 그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기간동안 다양한 도자의 분야를 하나 하나 섭렵해 보기도 하였다. 「한국도예가회」, 「후기도예가회」의 전시회를 통해 실험적 작업에 관심을 갖고 소위 陶彫의 작업에도 몰두하면서 생산현장에서의 제한된 제작 방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하는 한편, 그가 지향하려던 도자유형의 타당성에 대한 검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자수업을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 작업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제한된 제작생활에서 비롯되었던 안이함과 일시적이며 유행적인 풍조를 따르는 감각적인 데에서 과감히 벗어나 우리 도자가 갖고 있었던 본질에 눈을 돌렸다. 충청도 청원지방의 한적한 산허리를 찾아 가마를 박은 일은 그의 제작을 향한 뚜렷한 의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6년째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원료에서부터 사고와 실험, 그리고 완성의 과정을 수없이 거듭하면서 작업만이 그의 삶이며, 삶이 곧 작업을 의미하는 진정한 '프로'로서 도예가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최근 들어 고조되고 있는 창조적 생명력의 바탕이 되는 자율적인 민족의식의 발견에 있다. 오랜 외세의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사회의 일반적 자각은 타율적인 힘에 지배되고 있었던 모방적·유행적인 곳에서 자율적이며, 생명력 있는 창조적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우리의 내부에서도 제한되고 있었던 사회 구조에서부터 일반인들의 정신적 사회적 지위 상승과 함께 밝고 자유로움을 향해 움직여 가는 힘이 느껴지고 있다. 활기찬 기운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현실에의 강한 애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옛 분청에서 감지되고 있는 자율적 세계, 현실세계에 대한 애착, 건강한 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공예정신, 이러한 것들은 오늘의 분청이 당위성을 갖는 확고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이정도兄도 이 전시회에 참여한 3인의 작가 중에 한사람이다.

그가 지향하는 작업은 粉靑작업으로 구분된다. 굳이 도자의 분야에서 粉靑작업을 따로 구분하여 부각시키는 이유는 앞서 인용한 당위성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대도자공예에 있어 粉靑작업이 갖는 전통성, 현대성과 함께 한국 도자의 미의식에 있어 대표성 때문인 것이다.

그는 粉靑의 다양한 조형적 특징 중에서 단순, 端雅함에 더 몰두하고 있다. 단정하고 量感이 있는 항아리와 넓고 씀직한 바래기를 즐겨 만드는 것은 조형 이전에 그가 갖고있는 그릇과 쓰는 이를 배려하기 위한 오랜 사고의 결과이며 그가 갖는 정당한 陶藝觀의 한 면모인 것이다. 쓰임새를 위한 마음은 굽의 넓직하고 안정된 배치에서 구연이나 항아리의 입 넓이까지 세세한 배려를 잊지 않으며, 간혹 조형적 비례에 조금 못 미치더라도 과감하게 쓰임새에 더 큰 의의를 두는 대범성까지 갖게 한다. 이번에 출품된 항아리들이 그 이전의 작품보다 더 넉넉한 量感을 갖는 것은 그가 실용에 대한 가치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러한 방향의 조형을 탐구하는 자세에서 그가 일반 사회의 보편적인 요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삶의 현장에 들어선 도예가 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몇가지 해로운 장식의 장법을 채택하였다. 종전에 그가 즐기던 印花象嵌법에서 보다 뚜렷한 윤곽을 강조하기 위한 효과도 있으나 器面 전체를 크게 무리지어 구획하고 배경에 각기 다른 印花를 함으로써 더 활기찬 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印花로 시문되었던 단순한 표현에서부터 그의 안에서 변모하는 조형에 대한 조용한 움직임의 이면이라 보여지는 한편 시문의 간결한 처리로부터 후박의 두께에 변화를 줌으로서 생동감을 갖게는 하였지만 정리되고 간결했던 종전의 작품이 주었던 안정감과 비교되는 점이 눈에 띄고 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필자의 주관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器形이 주는 단아함과는 이질적인 요소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이다. 그는 전부터 환원번조의 어려움은 시문과정에서 비롯되는 백토의 후박 때문이다. 고화도 자기질을 지향하는 그의 의지는 시문의 결과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번조(燔造) 온도를 향상 고화도 자기질의 완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하면 흔히 빠져들기 쉬운 표현의 효과 보다 실용에서의 質的 완성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의 작품이 조형 이전에 질적 완성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완숙한 '프로'로서 정당한 도예가의 자격을 갖고 있다는 실증적 증거이다.

이정도兄의 도예수업을 시작한 후 근 20여 년 만에 첫번째 갖는 개인전의 작품에서 그가 도자에 대한 애정과 세심한 배려에 끝없이 마음쓰는 정직한 도예가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울러 우리 도자문화를 건실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바람직한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용기있는 도예가가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발견할 있다는 점으로도 뜻깊은 일로 생각된다.

최 건(도자사, 해강도자미술관 학예 연구실장) 1991년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작가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것을 나는 주위에서 늘 보아왔다. 나 또한 이들 중의 한 일원이기에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이러한 창조에 대한 강박관념은 남에게 보여준다는 그것 이전에 자아와의 갈등이 우선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자아와의 갈등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나의 작업은 그 보여지는 모습 바로 그대로이다. 나의 작업에서 나타난 결과에 대하여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가 보아도 나타난 결과에 쉽게 접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은 단순, 단아한 형태와 단정한 표면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제 흙 작업에도 여러 장르가 존재한다.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우리 도예의 길에 각 장르마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작업하는 도예인이 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도예발전에 단단한 바탕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 흐뭇함을 느낀다. 나 또한 그 길에 동참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흙과 더불어 생생한 삶을 사는 도예인으로 남고 싶다.

이 정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