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그릇(器) 중에서 굽으로 사용되는 다리가 3개인 것을 삼족기(三足器)라고 한다. 삼족기는 우리나라, 중국 등지에서 발견되는 고대 토기와 금속 공예품의 특이한 형태 중 하나이다. 청동기 역사에 있어서 삼족기는 제기(祭器)이기도 하지만 지배자의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중요하고 신성하게 다루어졌다. 특히 삼족기의 삼(三)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완전, 균형, 조화 등으로서 주로 동북아시아나 이집트의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삼(三)이 갖는 의미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고구려의 벽화나 공예품 등에 새겨져 있는 다리가 셋 달린 새(三足烏)는 인간이 죽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영원히 살기를 비는 마음에서 그려졌다.

작가 최정윤은 대학원 시절부터 꾸준히 삼족기에 대하여 연구해 왔다. 그 이유는 단순한 그릇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삼족기의 제의(祭儀)적 성격에 깊은 관심을 두는 등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까지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삼족기는 제물을 담았던 제기의 성격에서 벗어나 하나의 조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큐레이터 장동광은 그의 작품이 가진 구조적인 형태를 여러 가지로 분석해내고 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난봉옥이라는 선인장에 외형을 비유하는가 하면 루마니아의 조각가인 브랑쿠시의 작품에서 유사한 형태적 요소를 발견하고 있다. 최정윤의 작품에서 이러한 조형적인 요소들은 작가의 관심과 맞물려 여러 의미를 가진다.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선은 부족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려 했던 지배자의 힘과 권력을, 부드러우면서도 풍만한 양감은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는 모체의 곡선을 닮았다. 또한 형태의 단순화와 추상화를 통해 표현을 절제함으로써 다양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조합토, 망간유, 동유, / 1280℃/ 92×42×6cm/ 2001	조합토, 백토, 동유/ 1280℃/ 89×28×22cm/ 2002

그가 추구하는 깊고 오래된 느낌의 색조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부터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반복소성에 의해 나타난다. 그 녹색과 갈색은 언뜻 보기에도 청동기와 너무나도 닮아있어 마치 도자기가 아닌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차용해 온 그 색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유구한 과거의 전통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겹겹이 쌓인 유약들이 만들어내는 마티에르는 시간의 역사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작품의 무게감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최정윤은 표면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하여 소성온도를 달리하면서 5번 이상의 소성을 한다. 이것은 단순히 발색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유약으로 얻어낼 수 있는 질감 즉 마티에르도 동시에 얻고자 함이다. 반복소성을 통하여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유약이 단순한 표면의 치장이 아닌 작품내용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형태를 보정해주는 역할과 더불어 색과 질감이 주는 느낌 또한 작품의 내용을 더욱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이는 조형이 단순히 형태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조합토, 백유, 망간유/ 1280℃/ 87×31×31cm/ 2001	조합토, 동유/ 1280℃/ 75×95×42cm/ 2001

 

 

최정윤은 풍부한 지식과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 그의 작품은 커다란 덩어리에서 필요 없는 의미들을 하나씩 깎아 내는 조각이 아니라 존재하는 의미에 새로운 의미들을 조금씩 붙여 가는 조각인 것이다.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 덧붙여진 의미들은 다시 커다란 한 덩어리가 된다.
작가는 조물주처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낼 수 없다. 많은 사물과 현상을 통해 사고의 본질을 찾아내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는 것은 작가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일 것이다. 최정윤은 삼족기의 전통적인 의미와 기형의 변형을 꾀한 자신의 작업을 통해 현대도예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훌륭한 전통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비판 없이 계속 이어나간다면 그것은 전통이 아닌 인습(因習)이다. 전통을 계승하는 후손들은 전통을 시대에 맞게 변화, 발전시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정윤은 과거의 위대한 유산을 현대에 가져다 놓으면서 과감한 변용을 꾀하였다. 그의 작품은 땅 속 깊이 묻혀 있다가 찾아낸 오래된 유물 같이 보이면서도 현대적인 조형의 형식 또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크기와 형태를 만들어냄으로써 그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두 시대가 한 사물 속에 공존하면서 만들어내는 조형. 이것이 그의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매력이 아닐까.

김진아(예술기획,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