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 나의 도자기

 

 

 

글. 박순관 (도예가)

      

복잡한 서울에 살면서 근교인 경기도 하남시의 작업장으로 매일 출퇴근을 하게 된 지 올해로 3년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출퇴근의 방향이 거꾸로인 셈이어서 출퇴근시의 교통 체증에 따른 마음의 고통이 없이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 작업장을 근교로 따로 갖게 되기 전에는 집에 있는 지하실을 작업장으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10년 정도 하면서 생활공간과 작업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데서 오는 나태함이 나의 예술작업에 커다란 해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작업장을 새로이 마련하고 남들처럼 출퇴근을 하게 되다 보니 안정된 가운데 예술에 전념할 수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남의 아빠들은 다 출퇴근을 하는데 우리 아빠는 왜 집에서 빈둥대느냐고 제 엄마에게 질문했다는 큰 아이에게 낯이 서게 되어 좋았다.

 

흙과의 오랜 인연으로 도자기 전공
내 작업장은 벽돌공장의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주위에는 커다란 벽돌가마와 무진장한 흙이 쌓여 있다. 이 공자응ㄴ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것이며, 여기서는 전통기와와 토관 등이 생산되었다. 현재 살고 있는 천호동 주변도 내가 어릴 때는 기와공장과 벽돌공장들이 많았으므로 내게는 자연적으로 흙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동네 형들이나 친구들과 같이 요즘 아이들이 미니어쳐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그 때 내 나이에 걸맞는 놀이도구인 권총이나 탱크, 혹은 기선 등을 주변 기와공장의 흙을 가져다 만들곤 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아버님이 제재소를 운영하시게 되어, 그 때는 주로 나무로 뭔가를 만들거나 조각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주위 환경과 어울리다 보니 공예분야와의 인연은 생겼으나 당시의 나는 장차 예술방면으로 나가보겠다는 생각은 않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는 섬유공학과를 선택하게 되엇는데, 이는 순전히 사회적인 시류에 따라 인기학과를 선호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섬유공학은 애당초 나에게 어울리는 공부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전혀 그 학문에 흥미가 없다보니 인생의 황금기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일단 휴학을 하여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뭔가 만들기를 즐겨했었으며, 그 방면에서 소질을 보였음을 알고는 계속 그런 소질을 살려 공예 쪽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난 스스로 나무를 다루는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목공예를 해보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주위의 몇 사람이 도예를 하고 있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의 도예과가 이 분야에서 상당히 알려져 있었으며, 흙과의 오랜 인연을 생각하여 도자기를 전공키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군에 가기 이전에 당시 도자기의 멕카로 불리던 이천을 몇 번 가 보았다.

 

군 제대후 도자기만이 아니라 옹기기술까지 배워
마침내 대학을 휴학하고 지원병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군문에 있는 동안 과연 내가 어떤 일을 할 것이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되었다. 이때에도 도자기를 전공하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군에 있는 동안 난 이 미지의 세계에 홀로 도전하였다. 새로운 분야로 향하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난 당시에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 잡혔으며,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도예 관계 서적은 물론 미술, 민속, 골동, 미술사, 음악 등 예술의 전 분야에 걸친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어댔다. 사실 군 시절의 없는 시간을 억지로 쪼개어 다양한 독서를 했던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 때 접한 지식들이 지금까지 나의 예술관, 특히 공예관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이론을 위주로 공부하면서 느낀 답답함을 불식하고자 강원도 원주 주위의 도자기 공장을 찾아 보았던 바, 도자기 공장은 없었고 옹기 공장만이 하나 눈에 띠었다. 이 땐 더운 밥 찬 밥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그 곳을 가보았더니 이천의 도자기 공방들과는 전혀 다른 면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 당시의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 다니며 제대 후에는 도자기만이 아니라 옹기 기술까지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며, 그 계획은 복학 후에 옹기공장에 다니며 실천하였다.

제대한 후에는 학년을 낮추어 도예학과로 복학하였으며 예술세계에 남들보다 뒤늦게 들어섰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들에게 뒤떨어진 부분을 보강코자 밤낮을 가지리 않고, 도예이론 및 실기에 정진하였다. 이같은 약점(?)을 커버하기 위하여 공모전이 있을 때마다 열심히 응모하였으며, 이로 인한 많은 성과가 있기도 했다. 특히 옹기에 대한 관심이 이미 커질대로 커져 있어서 이 외에 미와 제작기술, 옹기 고유의 용어 등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여, 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학교를 마치고 개인전을 개최함에 있어서나 도예 워크샵이 있는 경우에도 그간에 닦은 옹기 제작 기술을 응용한 수레질로 도예 시범을 보이곤 했다.
작업장 뜰에서 1976년부터 모아온 옹기들과 내가 눈을 맞고 있다.

 

옹기의 영향으로 한국적인 미를 창출
물레성형에서 보이는 정형성보다는 수레와 도개를 사용하여 두드려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무늬와 아울러, 둥근형이면서도 약간은 비대칭으로 나타나는 형태에 이끌려 수레질 성형을 계속하고 있다. 나의 작품들은 한국적이면서도 오래된 골동품에서 풍기는 어떤 맛이 있다고들 한다. 그륵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선사시대 토기나 삼국시대 토기를 사랑하는 이유 하나와 오랫동안 옹기류들을 모아 오면서 이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흙의 종류에 제한을 받지 않으려 한다. 어떤 흙이든 간에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니 이를 살리고싶은 까닭이다. 과거의 도공들이 천민 계급으로서 단지 생활을 위해서 작품을 만들었듯이 나도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끝없이 작품을 만들어, 반복과 숙달에 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다. 도예에 입문한 이래로 난 단 한 번도 흙을 놓은 날이 없다. 진실한 도공으로 남기 싶기에 이를 잊고 산 날도 없다. 노동에서 오는 신체적인 무력함을 마기 위하여 나는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다. 나는 작품 하나에 온갖 정성을 다하는 일품공예적인 자세보다는 숙달된 솜씨로 많은 것을 만들되 조금씩 다른 수제품으로서의 미를 간직한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다.

 

흙으로부터의 여유
현대의 공예가 일품도예로의 길을 가고 실용적인 면보다는 창작적 순수예술 쪽만을 높이 평가하는 감이 있으나 대중의 도예 보급이라는 측면도 고려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예전엔 우리나라가 도자기의 나라로 불리워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함을 마음 아파한다. 도자기를 만지는 일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일이며, 숨김이 있을 수 없어서 소박하다.
기계문명에 익숙해지다보면 우린 늘 바쁜 시간에 쫓기게 마련이고, 점차로 마음의 여유와 정서를 잃게 도니다. 이같은 인간성의 상실에 직면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흙을 직접 만지며, 흙으로부터 재창조된 도자기를 사랑하고, 이로부터 여유를 발견하는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 데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 위 글은 월간 시계 1991년 11월 호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