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깨기

 

 

 

  우관호(도예가)          

  건배를 하고 상대방의 눈길을 피한 채 술을 마셔 본 일이 있는가? 남의 불행을 자신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많은 주장들을 통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실망하고 자위하듯 자기합리화를 해 본 경험이 있는가? 오늘의 우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밖의 세상사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오로지 자신의 딱딱한 껍질의 두께를 더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을 뿐 껍질자체가 물러지는지 썩어 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흥미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껍질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고 발가벗겨진 모습으로 남을 때 비로소 자기의 모습과 껍질의 두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껍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고 거꾸로 짐이 되어 무게만 더한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했을 때 비로소 현실적인 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박경주의 근작들은 지금까지 보여왔던 것들에 비해 아주 특별하다거나 작업의 도를 얻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현학적 수식어를 동원하여 나열하는 것은 주례선생의 사고로 급조된 주례 전문가의 말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그와의 교분이래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느끼는 몇 가지를 축의금 삼아 던지고자 한다.

 우선 그의 작품들은 보기에 편안해서 좋다.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까지 근 10여 년간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심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나타나는 설명적인 부분들이나 사족과 같은 점들이 개인적인 불만이지만 보이는 그대로가 직접 와 닿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다. 수도꼭지와 하이힐을 신은 다리들, 신문을 전사한 주사위의 변형 등 초기의 작품들과 적당히 주물러 놓은 듯한 인체시리즈들에 이르기까지 소위 예술적 심오함이나 무게 그리고 기교보다는 작가의 감수성이 솔직하게 반영되어 있어서 부담감이 없는 것이다.

 이번의 작품 역시 '보는 부담'은 없다. 인체를 의미하는 원통에 얹어진 라이트박스 위의 엑스레이 필름, 주변에 널려진 잡동사니들, 한술 더 떠서 하나로 모자라니까 쌍으로 표현하여 오늘의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심장하지 않아서 더욱 편안하다. 애써 표현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보다 가장 가깝고 직접적인 사물들을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주변의 잡동사니들, 흔히 오브제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물건들 역시 그저 일상적인 것들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 몸 가까이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박경주의 '사람'주변에서 예술의 형식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방함이 한편으로는 박경주 자신의 껍질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우를 해본다. 지나치게 편안하다는 사실은 작품의 언어나 전개방식이 한쪽으로 굳어버려 더 이상 기대할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사람을 보는 시각, 세상을 보는 느낌들이 시간이 갈수록 좀더 정교해져서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것들을 수용하는 세계가 늘 변하고 있다는 긴장감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예술이라고 하는 일들에 종사하다보면 끊임없이 자신을 소모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똑같은 물건을 조립하는 것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듯이 작가라는 직업도 자신의 감수성을 위한 단련과 새로운 방법론의 창출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박경주의 작품에서 읽혀지는 또 한가지는 재료의 한계에 대한 무관심이다. 작가자신이 흙이라는 매체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지 않는 지는 몰라도 굽는 방법, 유약을 칠하는 방법 등에 대해 대단히 무관심하다. 쉽게 만들 수 있고 건조할 때나 구울 때 튼튼한 흙이면 만족해하는 듯하다. 흙의 표정이나 특성 그리고 색깔은 그에게서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 다. 언젠가 작품을 보는 중간에 흙을 주재료로 쓰는 이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간단했다. 다루기 편해서 라고. 그래서 그런지 만드는 과정도 전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크기가 결정되고 모양에 대한 이미지가 구체화되면 쉽게 쉽게 만들어나간다. 코일링을 할 때도 있고 흙 판을 붙여서 만들기도 한다. 부분적으로는 주물러 붙이기도 하며 특별히 정리하려 하지도 않는다.
손자국을 애써 나타내려하지도 않고 완성된 모양 위에 물 묻은 스펀지로 적당히 마무리하고 만다. 어린아이가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맹인이 빚어 놓은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다. 유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유약을 칠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가마 속의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만한 크기의 전기가마에 기성의 중화도 유약을 물감 칠하듯이 바르고 적당한 시간에 전기밥솥에 밥하는 것처럼 구워낸다. 그래서 원색의 빨강도 노랑도 초록도 부담 없이 표현되고 그림도 마음대로 그리게 된다.

 정교하지도 심오하지도 않고 더더욱 불가사의하지도 않다. 때때로 그는 종이나 플라스틱 필름 위에 그림도 그린다. 그리는 대상들이야 입체와 마찬가지의 내용들이지만 경우에 따라 좀더 변덕스럽게 나타날 때가 있다. 바로 앞의 개인전에서 그렸던 몇 장의 그림들은 입체작품의 뒷벽에서 앞의 것을 보완하기도 하고 훼방하기도 하였던 기억이 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와 같은 그림 역시 특별한 의도와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이 기호화되고 도형화되어 관객 앞에 던져졌을 뿐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박경주의 작품을 기존의 도예가 안고있는 여러 가지 부담에 비추어보면일종의 추파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자신 역시 작품과 같은 색을 가지고 있으며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박경주 자신이 편안한 사람은 아니다.

 열 평 남짓한 어수선한 작업실에서 쉼 없이 작업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의 예술이 가진 부조리와 사회의 질곡에 대해 그는 자신의 세계부터 전복하려는 반란자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앞으로의 작업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평가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작가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무위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데올로기의 양극화는 소멸되어 가지만 삶의 극단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고 또 그것은 박경주 자신에게 좋은 소재로 작용할 것이다. 칼날을 잡은 존재로서 칼날에 다칠 것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주는 엑스타시와 같은 불안감을 작품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그의 생각은 칼날의 반대편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환상 tv, 2011>

<환상 소파, 2011>

환.상.공.간. 속의 희망찾기
박경주 작가는 현대도시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삶 뒤에 가려진 허무와 몽상에 대해 강한 원색과 상징적 아이콘, 믹스 미디어로 현대인의 삶 속에 숨겨진 희망을 다뤄왔다. 새빨간 하트모양, 하이힐, 레이스 달린 브래지어, 손거울, 가방 등 대중적인 기호를 만화처럼 그려낸 오브제작품들은 마치 상품처럼
어여쁘게 포장되어 있다. 살며시 포장을 풀면 그 안에 새겨진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이 보인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톡톡 튀는 감성으로 일상에서의 희망을 바라듯 꿈꾸는 듯한 환상공간으로 안내하려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비상품, 이미지에 노출된다. 무의식 중에 그러한 물건들은 나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 알 수 없이 자신을 대변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인데 남들처럼 이것도 저것도 사보고, 더 예쁘게 성형도 하고 쉼 없이 누군가와 전화하고,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미디어를 통해 만난다. 매번 경험하는 일상은 재미와 화려함으로 넘치는 듯 하지만 한 켠으로는 이유 모를 허탈감과 외로움이 더해온다.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 현대인, 작가는 이러한 현대인의 감정과 행동을 일상 속에서 찾아 ‘남’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현대사회를 말하기에는 넘치는 듯 과장되게 밝은 만화같이 그려진 이미지이지만 그래서 더욱 현실에서 웃을 수 있고, 풍자적인 시각으로 깨어있도록 건낸다. ‘그래도 아직 살만한 세상이다’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파하듯이 박경주는 유쾌하게 위트 넘치는 감각으로 표현한다. 
TV, 전화기, 카메라, 비행기, 가방, 구두, 기호와 숫자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기호를 차용하여 단순화된 아이콘의 반복. 알록달록 컬러와 만화 같은 표현, 작가가 그려낸 환상공간은 현대사회에 떠도는 이미지들을 따다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대중문화 코드로 읽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공주, 브래지어, 거울, 나비는 물신화된 사회 속에서 자기애를 반영한 모습으로 하나의 예쁜 상품 같다. 끊임없이 자기 대체 이미지를 제공하여 예뻐질 것을 강요하고 새로운 ‘신상’을 통해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도록 하는 우리 안에 잠재된 나르시시즘을 표현한다. 앙증맞은 물방물 핸드백과 여성의 매력과 자존심이라 불리는 하이힐, 사랑의 눈물방울을 떨구는 공주, 명품에 반짝이는 눈을 가진 듯 알록달록 머리만한 리본을 단 여자, 만화캐릭터 같은 대중적이며 현대문화가 담긴 이러한 작품들은 현대인, 바로 작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거리에서 파는 옷, 악세사리, 구두 가게 그리고 재미있는 건축물, 색상. 이 모든 일상생활이 담겨있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셀프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이미지를 합성한 렌티큘러. 보는 시점에 따라 사진으로 혹은 일러스트 그림으로 중첩되면서 보는 사람도 함께 걸어가며 움직임을 느낀다. 눈부시게 화려한 빨간색의 환상테이블, 의자는 작은 타일에 반복적인 아이콘 이미지를 새겨 넣어 하나쯤 갖고 싶도록 유혹한다. 소비사회의 상품화된 이미지를 대중적인 코드로 읽고 있는 박경주는 팝아트의 성향을 분명하게 내세우며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아이콘화된 이미지, 강렬한 그래피티적 표현,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주변의 것들을 차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앞서 말한 좀 더 상업적인 대중성을 반영한 예쁜 아트상품으로 만든 가구, 셀프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작품 이미지를 합성한 움직이는 그림 렌티큘러와 애니메이션화 한 동영상을 중점으로 선보이면서 시각적으로 강렬한 박경주의 환.상.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글 출처 - 이도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