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호 작품에 대한 단상(斷想)
김진하(프리랜서 큐레이터)
Ⅰ.
오늘의 우리는 무정부주의인 것이나 혹은 그와 관련된 유사한 것들을 그리 가치롭게 여기지 않는다. 특히 그것은 역사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며 한 시대의 모든 문제들에 치열하게 부딪히려는 사람들에게 몰가치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이러한 무정부주의적인 관념성이 작가의 세계관 자체가 아니라 전달하려는 주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드러내려는 방법론일 경우, 우리는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아이러니와 패러 디에 의한 내용전개 및 메세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열려진 표현방식과 자유 분방한 작가의 상상력이 제공하는 범위는 상식이나 고착된 논리를 앞서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우관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시니컬한 발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관호 작품의 내용이 권 력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에 더 시니컬하고 패러디하게 읽혀진다. 그러나 우관호는 통상적인 권력에 대한 비판-강권·저항·통치·고발·계급·투쟁·민중 ·이데올로기 ‥‥ -보다는 「권력」이라는 개념자체를 풍자한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힘으로서의 권력과 거기에 대응하는 저항의 힘 어느 한쪽에 서 있지 않으면서 권력을 비판한다. 그것은 작가의 세계관이 모호하게 보이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명제화되고 상식화된 주 제의 드러냄에 대한 거부의 의도이며 현상의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었을 때 발생하는 가치판 단의 경화를 그 자신이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우관호가 천착하는 권력은, 오늘날 과 같이 정치적 관심이 증폭되는 시기의 구체적이고 구조적 힘으로서뿐 아니라, 인류가 시 작된 이래 끊임없이 추구되어온 가장 더러운 지배욕으로서 인간욕망의 정점인 권력까지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관호에게 있어서 권력은 다분히 관념성과 심리적인 특징을 띤다.
Ⅱ.
우관호의 작품은 흙이라는 재료에 가하는 「감성적 표현」을 통한 상징방식 보다는 소재들의 분절된 의미가 상호 대립·보충·결합하여 내용에 이르는 'Code'를 형성하여 일정하게 의미 연관성을 확보한다.이러한 방식은 언어개념에 의한 의미작용을 일으키며, 'Code'는 메세지를 찾아가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예는 우관호의 작품소재인 '별'이나 '날개' 등에서 쉽게 드러난다. 근육질의 파쇼적인, 혹은 슬프게 좌절하는 남성 인체의 배경이나 어린 아이의 인형 모델링의 받침, 그리고 그림으로 등장하는 별은 이미 개념정의가 확고한 소재이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군부에 의한 권력의 한 표상이나, 본질적(통시적)으로는 '희망' '순수' 등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통용되어온 별의 개념은 후자였으나, 우리의 상황에서는 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점이 우관호가 주목하는 문제의 시작이다. 하나의 단어인 '별'에서 전통적으로 쓰여온 개념과 실제 통용되는 개념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회의와 문제제기이다. 그것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면서도, 인간욕망이란 점에서 동일하다. 이 이율배반성의 일정한 소재들끼리 부딪히는, 그리하여 주제를 찾아가는 통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수사법은 보는 이의 지각적 연상작용 속에서 작가가 발언하려는 메세지에 차차 접 근케 한다. 그것은 보는 이의 연상과 판단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가 주제를 단순한 내용 으로 확정짓지 않고 상황만을 연출했을 때 관객의 지각적 호기심은 더 큰 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모호한 단발적 발언이 유도하는 관객의 판단은 내용의 핵심에 도달하든 하지 않 든 간에 인간존재에 대한 사고작용으로 남게 된다.
Ⅲ. 확실히 예술에 있어서 수사(修辭)는 중요하다. 그것은 표현의 본질에 접근하는 연결고리 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법만이 두드러지고 작가의 세계인식이 모호하게 보이 는 경우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관호에게 있어서 그가 구사하는 수사법의 재치보다는 보다 세계에 대한 심화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우관호의 작품이 보여주는 가치중립성이 오히 려 서구적인 사고의 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문제의 무게에 비하 여 그의 패러디한 발언이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와 인간, 그리고 우 리의 구체적 현실에서부터 우리 삶과 연계된 권력의 문제들에 보다 첨예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