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의 소리 -

 전통적으로 한국 도예가들은 자연을 작품에 반영하였다. 전 세계인의 감탄을 자아내었던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 모두가 자연을 모티브로 다루고 있다. 자연은 때로는 무늬로서, 때로는 기형의 모티브로 이용되었다. 한국의 도기에서 오랫동안 연화문, 당초문 등의 식물, 크게 뒤틀림하며 승천하려는 용, 그리고 물고기, 새 등은 도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자연의 절대적인 요소로 탐구되었다. 흙에서 빚어지는 도기는 자연 그 자체 일른지도 모른다. 인간이 흙으로 빚어졌으며 신의 호흡에 의해 생명력을 갖게 되었지 않는가! 현대에 와서 도기는 용도와 기능을 배제하고 순수히 미적인 관점에서 고려되고 있다. 오늘날 도예가들은 그릇, 항아리 등을 만들기 위해 작업하는데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현대 도기는 도자기가 아니라 회화, 조각과 마찬가지로 순수미술의 한 장르가 되었다. 한국의 화단에서 한 동안 미국의 영향으로 추상표현주의 양식이 크게 유행하였었는데 도예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를 생산한 도예의 나라라는 전통을 가진 한국이 1960년대 이후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구 문화의 무분별한 유행의 추종으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혼란의 미로를 헤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몇몇의 자각있는 도예가들에 의해 가장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따듯한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미적 가치를 가진 현대도예가 탐구되고 있다. 전통과 혁신의 조화 속에서 현대도예의 길을 모색하는 대표적인 예술가가 오천학이다. 그는 구상과 추상적 모티브로 자연을 적절히 응용하면서 한국 현대 도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예술 안에는 자연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자연에서 따온 모티브가 예술의 주제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 안에는 작가의 자연에 대한 느낌과 자연의 법칙을 재편성하고픈 바램이 내포되어 있다. 다시말해 작가가 꿈꾸는 세계가 예술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작가가 창조하고 싶은 세계는 어떤 것일까? 오천학은 자연계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소리를 예술화시키고 싶어한다. 그의 화두는 '자연'이다. 그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다시 한번 더 창조하고자 한다.

 '자연'이란 단어에서 사람들 개개인마다 각자 다른 여러가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자연은 누군가에는 두려움과 공포 혹은 위대한 숭고의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친근함과 서정적인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자연은 축복의 神인 동시에 재앙의 神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천학이 탐구하는 자연은 주변에서 우리에게 언제나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친근한 세계이다. 오천학은 자연의 이미지를 점토가 갖는 물성을 살리면서 천연스럽게 표현하는 작업에 치중한다.

  오천학의 작품에서,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낸 30-40대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뒷산에 올라가 매미를 잡았었고, 아카시아가 피는 계절에는 꽃을 따 치마폭에 한아름 싸서 아카시아를 먹으며 집으로 왔었다. 학교가는 길 졸졸 흐르던 냇가에는 개구리가 울었고 그 개구리를 잡느라고 학교가는 것도 잊어버리기도 하였다. 집 텃밭에는 나비와 잠자리가 날았고 그것을 잡아 병 속에 가둬 두고 다음날 아침이면 매번 죽어있는 나비를 끌어안고 울곤 했었다. 지금 우리는 그 자연을 잃어버렸다. 오천학은 잃어버린 자연을 어린 시절 기억과 함께 우리에게 되돌려 줄려고 한다. 자연으로 귀환하려는 작가의 의지는 점토작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따뜻한 서정성과 원시성을 환기시키는 테라코타는 문명의 거짓꾸밈에서 벗어나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끌어내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매체이다. 그의 작품은 개구리, 달팽이, 매미 등 곤충들이 안락한 거주지를 마련하고 평화롭게 숨쉬고 있는 자연의 한 단면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주변 풍경의 단면이라기 보다 자연을 체험한 우리 기억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그에게 있어서 자연이란 특정한 식물, 동물, 곤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까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예술가들은 자연을 관조하며 명상하는 대상으로 고려하였으며, 작품을 하는데 있어 자연의 숨결과 기운이 작품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기운생동'이다. 서양인들이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몇백년 역사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한 반면, 한국의 예술가들은 작품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몸부림쳤다. 옛날 한국 예술가들은 작품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물질에 대한 집착, 욕망, 갈등을 떨쳐내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마음의 '텅빈' 상태 안에 예술만이 들어오게 해서 자신들의 영혼이 작품에 스며들게 하였다. 오천학은 전통적인 한국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것처럼 자연의 숨결을 그의 예술에 부여하고자 한다. 작품의 생동하는 기운은 그의 작업 현장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그는 작업하는 순간을 작가 내부의 유기적인 리듬이 표현되는 자유의 시간, 또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도공들처럼 걱정, 갈등, 욕망 등을 떨쳐내어 비워진 마음으로 작품이 생성되어가는 태동의 힘을 자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작업전의 모든 계획들을 작업 과정에 있어서 무리하게 적용할려고 하지 않는다. 덜 말라서 물기가 있는 점토를 누르고, 말고, 구부리며 접는 과정에서 형태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한다. 그는 점토가 만들어가는 형태의 과정을 태아의 성장 과정처럼 즐겁게 바라보며 점토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결과를 존중하려고 한다. 자연속의 모든 생명체가 수분을 머금고 있을 때 생장하듯이 수분을 머금은 점토는 마치 생명이 있는 물질같이 유연하게 변형되며 자연스런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는 항상 변화하는 자연의 속성을 작업 과정에도 반영한다. 유약 역시 테라코타의 따뜻한 질감을 입혀 흙이라는 매체의 본질적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오천학은 동심 속의 자연을 환기시키기 위해 자연의 외적 형상미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재현적 방법과 아울러 추상적인 형태요소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즉 자연에 대한 개개인의 특별한 감정과 체험을 끌어내기 위해 오천학은 구상과 비구상의 형태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연꽃잎 위에 있는 개구리, 달팽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매미와 나뭇가지에서 노래부르는 듯한 새는 탄성을 자아내게 할만큼 실제 대상들을 닮았다. 그러나 곤충들과 동물들이 거주하는 장소는 추상적으로 조형화되어 있다. 추상적 조형성은 자연의 생명력이 시각화된 것인 동시에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시키는 형태요소이다. 인간들은 과학기술 문명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자연을 파괴하였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성 상실의 아픔마저 가져왔다. 나무를 베어내고 콘크리트 숲을 만든 인간은 작은 곤충, 벌레, 새들을 저 멀리 몰아내었듯이 이웃과의 정을 단절하며 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자연을 몰아낸 댓가로 재앙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에 오천학은 말한다."나는 첨단 문명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자연과 인간성에 대한 회귀의 메시지를 담고 싶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우리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다시 상기시켜서 자연과 인간성을 다시 회복시키기를 원한다. 그는 작업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자연이 속삭이는 영혼의 소리로 생각한다.  오천학이 자연을 대하는 모습은 엄격한 틀이나 심각한 주제를 너무 의식하지 않고 경험에 의한 감성으로 자연이 그러하듯이 늘 변하는 자유로움을 택하고 있다. 자연은 영원히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친구이며 그는 자연과 일체화된 감성과 감흥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글:김현화(숙명여대교수/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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