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숙경(미술평론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모두가 반반씩이다 물과 땅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도 그렇고. 산과 평야의 비율도 그렇고, 산과 평야의 비율도 그렇고 식물과 동물의 비율이 그렇다. 정확히 따진 수치로 볼 때야 그렇지 않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의 비율이 대략 반반씩인 듯 하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의 비율도 반씩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하나가 된다는 말은 성경이 아니어도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다. 임윤선이 보여주고 있는 아담과 이브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의 아담과 이브라는 주제를 통해서 인간사를 마주 대하는 듯 했다. 수많은 사람, 갈등, 미움, 기쁨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반 이상이 남자와 여자라는 갈라진 반반의 성, 서로 만나 하나가 되어야 하는 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브의 눈물(w:50cm, d:20cm, h:80cm)

임윤선의 도예는 형태를 보기 위해서 그림을 먼저 보아야 한다. 형태와 그림의 특별한 상호관계 때문이 아니다.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도 아니다.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그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눈을 매혹시키는 것이 그의 알록달록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즉, 강한 순색과 강한 선이 형태를 가리고 앞장서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실컷 그의 그림을 감상한 수에 형태를 보게 된다. 더구나 큼직한 덩어리로 정돈된 형태는 그림을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여 누구나 그림감상을 우선으로 하게 만든다.

eve + adam = tears(w:120cm, d:20cm, h:90cm)

흔히 도예작업 위에 그려진 그림은 문양 아니면 장식정도에서 그치기 쉬운데, 임윤선은 그런 테두리를 벗어난다. 언뜻 보면 경쾌하기 그지없다. 격정적인 불안이라던가 동화 같은 감정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회화를 대하면 대할수록 야릇한 슬픔, 안타까움, 쓸쓸함도 느끼게 된다. 그가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의 대부분은 그렇게 실현된다. 서로 얽혀있는 사람들, 서로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서로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임윤선이 회화작가는 아니다. 그는 흙작업을 하고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마 앞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분명한 도예가다. 물론 흙의 기분을 살리려고 애쓴 흔적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도예라는 특성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평가는 편협한 생각의 결과다. 미리 정해진 관습과 관념이 도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정해진 단편에 모든 것을 죄다 끼워 넣는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다.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에서 너무나 많은 길이 열려진 상황에서 굳이 흙의 관점에 자신을 묶어둘 이유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임윤선의 알록달록한 도자는 신선하다. 개성이 어떻고, 독창성이 어떻다고 떠들썩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요즘처럼 획일화된 표상과 정해진 엘리트상을 강요하는 시대는 그 어떤 시기에도 없었다. 그건 분명히 모순이다.

무작정 흙냄새를 풍기고자 인위적인 흙색을 내든지 전통이란 명분 하에 비슷하게 흉내내는 작업이 아니어도 도예는 얼마든지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이 일곱 가지인 것은 다양하기 때문에 보기 좋을 수 있다는 하나의 예다. 우리는 이 일곱 색 중의 하나인 임윤선의 색을 만난다. 그래서 또 다른 도예의 영역, 도예의 표현, 도예의 기질을 맞이하게 된다.

미술공예 (1994년 6월호)

글/ 김숙경(미술평론가)

나는 무엇이고 싶다.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거나 학문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일과 관계없이 나는 그저 나이고 싶다. 온갖 문제들로 뒤섞인 이 세계는 인간을 인간일 수 없게 한다. 계산될 수 있는 존재, 저울질 할 수 있는 물체, 비교될 수 있는 물건으로 낙찰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건 시장 속에 있는 상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이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나를 찾아 나서고 싶다. 세상이 원하는 가치기준과 잣대에서 빠져 나와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신비한 존재이고, 존엄한 생명체이다.

 

 

 

임윤선은 그렇게 '나'를 위하여 행진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행진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소화불량에 걸리고 만다. 어떤 소화불량? 말 그래도 방금 먹은 저녁 식사가 말썽이라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임윤선의 소화불량은 고질병인데다 불치병일 수도 있다. 그는 세상과 맞닥뜨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소화해 낼 능력을 잃은 것 같다. 현대인들이 갖는 우월감에 대하여,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진보에 관하여, 그들만이 갖고 있는 처세술에 대하여 이제는 별 반발이나 충격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날 소화불량에 걸리게 된 원인일지 모른다.

 

 

 

 

그냥 섞이지 못하는 것, 그냥 섞일 수 없다는 것이 '나'에 대한 욕심 아닌 욕심이다. 나는 너와 다른 존재이고, 나는 그들과 합류할 수 없다는 것이 내 고집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주장하고 싶다. 임윤선은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일렬로 내걸었다. 다시 한번 나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을 가로막는 굵은 뼈다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는 골다공증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어머니를 유추해낼 수는 없다. 그저 모호함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더욱 더 알 수 없는 내 모습이 담겨져 있다.

 

 

 

 

'흙으로 돌아간 아버지' 앞에서 우리는 원초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돌아간다는 말이 새삼스러워지는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평등해 질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실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들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자아라는 것에 관하여, 물론 아무도 알 턱이 없다. 이 작업 역시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소리만 맴돈다.

 

 

흙으로 돌아간 아버지

 

 

무언가 파헤치고 캐내고 싶은 임윤선의 욕구는 모호함과 공허함으로 채워지고 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더욱 더 배고픔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세계는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임윤선의 세계가 아니다. 밝고 명랑하고 확실한 실체를 보여주었던 그가 이렇게 변화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나이고 싶고, 그러한 나는 누구인지 밝히고 싶기 때문이다.

월간도예 (199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