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문경   

김정범은 흙의 물리적 특성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다른 매체와의 결합을 시도한다. 그는 아이의 얼굴이나 인간의 형체를 변용시켜 인류가 지닌 심각한 문제, '기아'와 '인간복제'를 비판적 입장에서 해석한다.

현대 도예를 전통적 양식, 조형적 표현양식, 설치적 표현양식으로 크게 분류한다면, 그 중 김정범은 설치적 표현양식에 속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그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룰 뿐 아니라 도예의 세부적 영역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본 연구는 김정범 작업세계의 분석을 통하여 한국 도예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데 의의가 있다. 본고는 작가의 작품경향을 다룸에 있어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이는 작품 소재 변화를 근거로 하여 분류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1) '신발'을 소재로 한 설치 및 조형작업: 1986∼1989

(2) 동물의 형상을 변용한 조형작업: 1994∼1997

(3) Baby Mask를 소재로 한 Clay Work: 1998∼현재

 

1. 김정범의 성장과 작품 활동 및 정신적 배경

김정범은 196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81년 홍익대학교 공예과에 입학한 후 장상철 교수를 만나 그의 작업실에서 5개월 정도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도예를 접하게 된다. 이후 1984년부터 3년 가량 신상호 교수가 운영하는 '부곡도방'에서 작업을 하면서 도예에 대한 관심이 커져 1986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도예과에 입학한다. 그의 첫 개인전이 1987년 후화랑에서 열리고, 1988년 '한국현대도예의 장식적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1990년 2월 학과 조교로 있으면서 당시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원이었던 성미경과 결혼을 하여, 그 해 4월 함께 파리로 떠나게 된다.

그가 파리로 떠난 것은 개인적, 사회적 이유에 의한 결정이었다. 작가는 내용이 아닌 테크닉 위주의 작업에 치우치게 되어 자신의 작품이 공예라는 작은 범주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작업 한계를 느낀 것이다. 또한 1980년대의 새로운 선진 미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경험하기 위함이었다.

(1) 1980년대 한국도예계 상황

80년대는 도예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이다. 그룹전, 개인전, 공모전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며 본격적으로 외국의 현대도예가 국내에 소개된다. 70년대부터 도예인들의 해외유학 또는 견학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도예에 대한 시각이 넓어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제작, 발표하는 작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도예가 다양해지고 활발해지는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가마도 쉽게 축조할 수 있게 되고 유약에 대한 지식도 보편화되며 재료를 취급하는 전문점도 늘어나 전반적으로 도예작업 환경이 개선된 시기였다.

80년대는 과거 전통에서 일탈한 새로운 도예가 태동된 시기로서 한국 현대도예가 비상할 수 있는 터를 닦은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김정범은 파리로 떠나게 된 것이다.

(2) 파리에서의 삶과 작품의 영향

그가 파리를 택하게 된 것은 유럽 중심에 위치했다는 지역적 유리함과 유럽의 예술과 문화적 산물의 집결지라는 이유를 들 수 있다. 그는 1992년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면서 그의 담당 교수였던 조지 장꼴로(George Jeanclos)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뎃생, 크로키 등을 통해 유럽 고대 회화의 원근화법과 규칙성을 배우게 된다. 또한 흙뿐만 아니라 나무, 종이, 금속 등 다른 재료와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표현 기법을 접하게 된다.

 

 

 

 

주목 할 만한 것은 김정범의 작업의 경향에 있어 장꼴로 작품의 형식적, 내용적 측면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장꼴로는 유럽 작가 중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독특한 표현과 변형으로 종교적 내용을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의 인물들은 종교적 특성과 무언의 언어로 구축된 인체들이 매우 함축적이고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연출되어 있다. 부다의 영적 숭고함을 나타내는 수도승, 성경 속의 주요 인물들, 그 안에서 정신적으로 승화한 인물들을 형상화하여 그 영원성을 표현한다.

조지 장꼴로의 작품 세계는 김정범의 작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장꼴로의 영향은 형식적 측면으로는 가공되지 않은 흙, 젖은 점토를 사용하여 손자국에서 오는 변화를 표현하는 것과, 내용적 측면으로는 과거의 어두웠던 기억, 자신이 주목한 대상을 자주 등장시킨다는 것이다.

1990년부터 5년 간의 파리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도예가 아닌 여러 분야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다른 매체와의 결합을 통한 설치작업의 기초를 닦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김정범은 예술행위를 통해 대중과의 대화가 가능함을 절감하게 되며 또한 그가 늘 그리고 희망했던 새로운 인간의 표상을 찾게 된다.

1994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가라르테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것으로 작가는 그의 파리 생활을 마무리한다. 이후 니스국제미술전에서 칸느 시장상을 수상하고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두 차례의 개인전을 더 갖게 되고, 10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하면서 현재 활발하게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2.김정범의 작품세계

(1) '신발'을 소재로 한 설치 및 도조 작업

김정범은 1986부터 1989년까지 신발을 소재로 하여 작업한다. 1987년 10월 '후화랑'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리는데, 그는 수십 개의 구두를 다양한 색채로 표현하여 철망기둥에 끼워 쌓아올린다. 1988년 5월 10여 개의 구두들과 장화 그리고 돌의 형태를 결합시켜 인체형태의 조형을 만든다. 1989년 4월 단체전에서는 수백 개의 장화형태를 원색-빨강, 노랑, 파랑-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바닥에 나열한다.

그는 '신발'이라는 대상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신발'이란 인간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인공물이다. 다양한 색상의 도자기 신발은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을 표현한다. 또한 작가는 그것들을 쌓아 인간관계에 있어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2) 동물의 형상을 변용한 조형작업

1995년 11월 '토. 아트 스페이스'에서 가진 4회 개인전은 신발의 오브제적 성격에서 탈피한 새로운 형식의 작업, 파리 유학시절 교수 장꼴로에게서 받은 영향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얼굴을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과 생략된 인체 상들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여 유약 처리 없이 흙의 형태에서 오는 명암과 흙 자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색을 이용하여 표현했다.

 

 

 

 

동물형상의 얼굴은 인간의 감추어진 성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몸체는 사람의 형태인 것 같지만 매우 모호하다. 그러한 형상은 정체성이 모호한 동물로서 인간의 어둡고 추한 모습을 끄집어내어 표현하였다. 작가는 동물을 사람으로 변형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게 동물성을 부여한다.

 

 

좌 : 무고, 1996 우 : 성전의 풍경, 1992

 

 

그의 작품의 제목을 보면 '성전이 보이는 풍경', '성전의 풍경', '전설의 장군' 등 신화적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신화를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작품에서의 '신화'란 인간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공통부분-지리, 언어, 문화, 정치적 장벽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 '성전이 보이는 풍경'에서 이집트인들이 미이라를 감쌌던 방식처럼 얇은 흙판으로 예상 밖의 여러 형태들이 조합된 몸체를 감싸고 있다. 그것들은 보기 흉하게 변형되어 있거나 절단되어 있거나 은폐되어 있는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표현한다.

 

귀로, 1994

자화상, 1993

 

 

김정범은 인간의 아름다운 진리-영원한 사랑, 자애로움, 화합 등-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가 말하려는 인간은 개인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이며 그 개인 속에 감춰진 보편성을 회복하는데 있다. 1996년 진로 국제 도예전에「무고」라는 제목으로 여성의 전신상과 아기의 머리를 조합한 조형물을 출품한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상상력의 세계, 인간의 철두철미한 양면적인 현실과 이상이 화해될 수 없는 괴리감 등을 표현한다.

 

좌 : 둥지, 1995 우 : 전설의 장군, 1994

 

 

(3) Baby Mask를 소재로 한 Clay Work- 순수(Innocent)

1998년 4월 한전프라자 갤러리에서 5회 개인전이 열린다. 예전의 모호한 동물형상이 이제는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김정범은 자신의 딸에게 처음으로 사준 장난감을 캐스팅함으로서 어린아이를 소재로 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아이'라는 존재는 방치해 놓으면 불안하고 깨지기 쉬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순수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를 작가는 학대하기도 하고 보살펴 주기도 하며 재우기도 하고 마주보게 앉히기도 한다. 그 아이를 통해 작가는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모습, 자신이 희망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순수하고 감정에 충실하며 천진난만한 모습... 작가는 흙을 가지고 놀며 세상을 주무르고 재창조하고 또 그것을 파괴하는 어린아이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를 모티브로 하는 작업은 2000년도에 신체가 생략되고 얼굴만 크게 확대되었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이전의 것과 달라진다. 첨단과학이 야기하는 문제, 인간 복제의 문제, 더 나아가 사회적 이슈를 표현한다.

 

innocent porclien 1998, 44×35×33

chuchotement porcien 1998, 48×13×40

 

 

2000년 3월 한전프라자 갤러리에서 'Narration, Symbol and Identity'라는 단체전의 1부 'narration' 전시에서 김정범은 아이의 형체를 흙판 위에 눕힌다. 그 잠자고 있는 아이는 현대사회의 공포와 혼란한 가치 속에서 살아가는 불행한 아이들을 의미한다. 2부 'Symbol' 전에서 작가는 흙으로 성형하는 대신 파우더 작업을 보여준다. 파우더 작업이란 점토를1100 에서 소성하여 그것을 다시 가루로 만들어 기물의 표면에 본드칠을 한 후 접착시키는 것이다.

그는 130 130 110(cm)의 크기의 피라미드를 만든 후 그 안에 '수은'과 같은 금속성의 오브제를 넣는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주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그 범위를 넓힌다. 1부에서 어린아이를 직접 등장시키는데 반해 2부에서는 피라미드를 만듦으로서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화한다.

 

 

le faux miroir porclien 1998, 30×18×35

innocent porclien 1998,40×40×48

 

 

2001년 12월 '시대의 표현-상처와 치유'전에서는 대형의 설치작업을 보여준다. '상처와 치유'전은 글로벌리즘, 무한경쟁, 생태환경변화, 유전공학의 발달, 사이버 공간 등 이러한 상황에서의 치열한 생존문제, 환경의 변화들로 인한 인간들에게 야기된 부작용과 그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그는 흙과 섬유질을 섞어 마스크를 제작하여 일부는 불에 타고 일부는 원래의 형상을 유지하는 각기 조금씩 다른 마스크 형상들을 얻게 된다. 그는 이러한 마스크들을 다시 격자 모양으로 배치시켜 중앙을 중심으로 재구성한다. 아이의 마스크는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태워진 부분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관람자는 그의 마스크 형상을 통해 내면마저 일그러져 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작품은 커다란 입방체 구조물 내에 아기 두상을 설치하여 두상 내부에는 조명을 넣어 불빛이 점멸하도록 한다.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어 반복되는 점멸은 인간의 심장 또는 자궁 속에 잠든 아이의 생명을 표현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헤롯왕이 아이를 학살한 것부터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질병, 전쟁, 기아와 쾌락의 부산물로까지 희생되어온 아이들을 모델로 삼으려고 했다. 작가가 생명체가 가지는 정체성을 모색하면서 아이의 존재는 더 이상 유린된 상처가 아닌, 희망의 상징체이다.

 

 

chevalier earthenware 1998, 50×20×63

lnnocent 2000, 테라코타 , 35×45×13

 

 

3.김정범 작품에 있어서 설치라는 방법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작가의 1980년 후기부터 시작된 설치작업은 흙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들을 혼합 사용한다. 도예작품에서 설치는 1980년대부터 나타났다. 그로 말미암아 '도예의 표현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라는 의문을 던져주었다.

도예 작품의 제작 개념은 다양하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본다면

첫째, 흙과 불의 특성을 통해 도예의 관념성을 표현하는 것

둘째, 흙과 불을 단지 조각적 재료로서 이해하고 그 표현적 범위를 확대하는 것

셋째, 다른 매체와의 결합을 통하여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

여기서 김정범은 세 번째의 분류에 속하는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흙에 한정하지 않고 재료를 매우 자유롭게 선택한다.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통해 작가는 인류의 부조리와 현대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논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인습적인 도예 개념에 대한 선입관으로 얽매이게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작업을 하여 도예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그것의 가능성을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좌 : innocent project 2002 우 : innocent 2001

 

 

그는 그의 작업이 계속 변화하기를 바란다. 김정범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도와 창작 에너지는 그를 움직이게 하는 발전소와 같다. 평론가들은 그를 도예와 조각을 접속시킨 작가라고 평가한다. 그는 여러 재료들을 혼합하여 미술의 장르를 넘나들고, 그의 표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에게 흙이라는 하나의 재료는 단지 삶 그 자체이고 경탄할 만큼의 긴장과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을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운을 남긴다.

그는 '주관적인 문제를 가장 개인적인 표현방법으로 나타내는데 그 의도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의 의식이 불투명하고 독선적이며 비합리적인 틀 속에 머물러 있기를 부정한다. 그는 급속히 변화하는 정보화세계, 글로벌 시대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만들어 내는 실험을 꾸준히 하는 열성적인 작가이다.

 

innocent 2001 , 혼합재료, 280×28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