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은 오늘의 여인상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김종인의 작품세계는 자전적 인생의 단편들을 바탕으로 현실과 내면세계를 독특한 시각언어로 옮겨놓고 있으며, 작게는 한 여인의 삶을, 크게는 현대인의 인간성 문제를 개인적인 범주로부터 여성 공유의 문제로 이끌고 있으며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한 조형작업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김종인에게는 그녀의 가정환경과 학연, 인맥 등의 주위환경으로 인한 소외감과 외로움 등이 '모순의 연속'으로 다가왔지만, 동시에 그녀의 창조력과 상상력의 근원이 되었다.

 

 

 

 

몸이 꽁꽁 묶여 매달려 있는 여인상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여인상, 납작하게 짓눌려버린 여인상 등 자화상적인 조형작업은 사회구조에 짓눌려 지치고 허덕이는 현대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도예가로서의 김종인은 1997년 이후 원시전통문양을 변용하여 색화장토 페인팅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단순히 식기로 사용하기 위한 그릇이 아니라 조형작품처럼 곁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아트 웨어'를 만들고 있다. 본 연구자는 김종인의 작업세계를 〔1〕투각과 상감의 전통기법에 충실했던 '기'작업, 〔2〕투각과 상감기법을 인체조형에 응용한 작업,〔3〕판성형을 이용한 기하학적 형태의 인체조형을 목재, 금속 등의 혼합재료와 함께 설치하여 표현한 작업,〔4〕"그릇도 조형이다"라는 명제 아래 "아트 웨어"라고 명명한 그릇을 만드는 작업으로 크게 구분하고 그 내면에 흐르고 있는 페미니즘과 김종인의 관계를 연구하여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김종인과 페미니즘.

(1) 김종인의 성장환경

김종인이 '여인상'을 작품테마로 선정하게 된 동기는 그녀의 가정환경, 특히 아버지와 아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박사이며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에 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머니는 상대적으로 왜소했고, 그저 '김박사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다섯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5남 2녀의 막내로 자란 그녀는 어머니, 아니 여자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런 사고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76년 서울여대에 입학하여 동아리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이상의 노력을 해도 인정받기 힘든 사회구조적 문제가 가정, 학교,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다.

 

 

 

 

김종인은 자신의 돌 사진이 없다는 것을 알고 3살 때 비로소 돌 사진을 가지게 된 것을 "내 것을 처음으로 찾았다"고 표현하며 이러한 사실이 20년 뒤 '매달린 여자'란 작품으로 표출되었다고 한다. 김종인은 1980년 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4년만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1990년과 1994년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김종인은 작가로서보다는 통역사로서의 역할에 더 비중을 둘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무렵 발표한 '여인상' 시리즈는 학연과 인맥으로 뭉쳐진 환경에 부딪힐 때 느낀 소외감과 외로움을 각박한 판작업으로 표출하게 된다.

 

 

 

 

이러한 판작업은 1995년 여름 미국 버먼트 아트센터에서 살아있는 조형연습이라는 작업을 통해 갇혀져 있던 것에서 탈피하게 된다. 1996년 3회 개인전은 김종인에게 중요한 계기가 된다. 마흔살이 되면서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아직까지 여자로서 탈피하지 못하는 사회속에서의 제약을 안과 밖이라는 공간의 소통을 의미하는 투각형태의 문양으로 표현하게 된다.
1999년 현대화랑의 전속작가가 되면서 김종인은 조형작업에 사용된 문양들을 '아트 웨어'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잘 팔리는 공예가'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페미니즘

가. 현대적 페미니즘의 의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났던 초창기 여성운동은 계몽사상과 자유사상에 입각한 인본주의 여성해방운동이었다. 가부장적인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고 남성중심문화에 도전하여 여성의 특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현대적 의미의 페미니즘이 출현한 것은 1970년을 전후해서이다. 이렇게 출발한 페미니즘은 사조나 유행에 그치지 않고, 70·80년대를 지나면서 확고한 이념과 사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러한 배경에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제휴, 즉 부계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문명비판적 공모가 깔려 있었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대 페미니즘의 특징은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성성'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 페미니즘이 과거의 것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쥴리아 크리스테바는 남성 중심적 사회질서를 전복하는 방법은 상징질서 속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여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끌어오고, 현 상태를 거부하여 그것에 균열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성 정체성을 비롯한 모든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라는 개념을 타파하고 그것을 애매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페미니즘 운동이 나아갈 방향은 생물학주의나 본질주의의 입장을 벗어나 성 정체성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 페미니스트 아트(Feminist Art : 여성주의 미술)
페미니즘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페미니스트 아트가 출현한 시기는 1971년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없는가?"라는 논고가 쓰여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아트라는 것은 이 사회에서 여성이 알게 모르게 당하고 있는 불평등과 억압을 미술로 표출시키고 그것을 변혁시키고자 하는데 그 의도가 있다. 여성해방운동 초기의 여성미술가들은 남성이 만들어낸 여성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이미지를 타파하는데 주력했다.
이제 여성의 특징은 숨겨진 채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다. 여성문제는 여성에게 가해지고, 또 여성 스스로 저항없이 수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허위의식을 깨기 위해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 모순을 직시하고 분석할 능력을 지녀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이고, 페미니스트아트란 그것을 토대로 형상화의 작업을 해야하는 것이다.

2. 김종인의 작품 세계

본고에서는 김종인의 작업 세계를 표현형식으로 구분하여 연구하였다.

첫째, 투각과 상감기법의 장식을 위주로 한 '기'작업.
김종인의 작업은 초기에는 한국전통도자에 기초하였다. 서울여대 공예과 재학시절에는 물레 또는 코일링작업에 상감, 투각 등의 장식을 위주로 한 '기'형태의 작업을 하였다. 당시에도 판성형을 이용한 조형작업이 있었으나 '기'작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영국 유학은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드는가에 대한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스스로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침으로서 한국 도예의 정체성에 대한 '프로젝트 작업'이라는 결과물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김종인은 전통도자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투각과 상감기법 형식은 이후의 조형작업에서 모티브가 되어 나타나게 된다.

 

 

 

 

둘째, 오늘의 여인상
유학에서 돌아온 김종인은 1990년 첫 개인전에서 매달린 여인상들을 발표한다. 세상의 편견과 폭력에 움츠린 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라며 몸체를 꽁꽁 묶어 매달아 놓은 여인상들은 너도 매달려 있지는 않은가? 이렇게 있어도 되겠는가? 라는 화두를 던진다.
움츠린 상태에서 꿈틀대는 듯한 몸체는, 전통기법을 이용했던 '기'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상감과 투각의 기법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풍만한 여체의 형태인 부드러운 곡선의 외형과 예리하지 않은 투각들이 보여주는 공간은 안과 밖을 소통시키며, 능동적이고 싶지만 수동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자화상과 같이 보여준다. 1997년 진로도예전(JICA)에 이어 마네킹을 캐스팅한 대형인체조형에 원시전통문양을 변용한 것을 색화장토로 장식하는 표현을 시작한다. 밧줄에 매달려 있던 몸체는 벽이나 프레임에 걸쳐져 있거나 기대어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마치 신디 셔먼이나 조지아 오키프와 연장선 위에 있는 듯 하다. 김종인의 대형인체조형들은 정지된 영상 속에서 스스로 모델이 돼어 자화상을 연출하고 있는 신디 셔먼의 연작들처럼, 인체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조지아 오키프의 <검붉은 붓꽃>에서 꽃의 형태를 이용하여 여성의 성기를 암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은밀한 것으로 그려졌던 여성의 특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여성의 자아를 고양시키고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던 것같이 상징화된 원시식물형태의 문양으로서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셋째, 판성형을 이용한 기하학적 형태의 인체조형을 혼합재료와 함께 설치하여 표현한 작업.
1994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 김종인의 작업은 판성형을 이용한 기하학적 형태의 인체조형으로 나타난다. 예전에 흐르는 듯한 부드러움과 자연의 선과 얽혀 있던 형상은 극적인 평면의 입체와 각박한 느낌의 잘려진 듯한 외형의 여인 형상들이다. 큐비스트적 각을 이룬 「오늘의 여인상 '94」는 여인들의 형상을 통하여 자신의 가슴앓이와 그것을 사회 속에서 여성, 크게는 현대사회 속에서의 현대인 모두의 문제로 끌어내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주위환경으로 인한 소외감과 외로움을 각박한 판으로 표현하였던 작업은 1995년 미국의 버먼트 아트센터에서의 작업 중 전환점을 맞게 된다. 흙판 작업이 아닌 나무판작업을 하면서 그녀 자신속의 답답함, 갇혀져 있는 것들, 소심함들을 떨쳐버리는 살아있는 조형연습을 하게 된 것이다.

 

 

 

 

귀국 후 김종인은 96년 Dance & Figure Performing전, 4번째 개인전인 오늘의 여인상 '96전을 통해 인체조형을 목재, 금속 등의 혼합재료와 함께 설치하고, 무대 위에서 나무판으로 만든 인체조형들과 공연을 하였다. 공연에서는 올가미를 쓴 사람이 등장하는데 올가미는 계층, 편견, 인맥 등 인간이 만들어놓은 답답한 것들을 상징한다. 또한 김종인은 전시공간에서의 공간소통을 표현하였다. 신사미술제에서 그녀는 천장의 소외된 공간을 끄집어내어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실험들을 통하여 현재의 작업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소외된 공간을 사용하며, 계층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소품이나 골동품 등을 이용하여 디스플레이를 하고 있다.

 

 

 

 

넷째, '아트 웨어' 작업
원시전통문양을 변용하여 색화장토 페인팅기법으로 표현한 '아트 웨어'는 보는 그릇, 쓰는 그릇, 즐기는 그릇,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그릇이다. 김종인은 1999년 현대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면서 '그릇도 조형이다'라는 명제로 형태는 같아도 그릇에 그려진 그림은 같은 것이 없는, 벽걸이 형의 그릇들을 만든다.
문양들은 조형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문양들은 그릇과 어우러져 실용적 측면, 조형적 측면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며 예술과 일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드디어 '아트 웨어'는 여성들의 일상 속에 자리한다. 이것은 김종인이 각박함을 느끼며 중얼거려온 오늘의 여인상이라는 테마가 주방이라는 현실공간 속에서 자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지아 오키프나 신디 셔먼 등 대부분의 페미니즘 작가들이 그들과 그들 자신의 육체에 대한 관계를 조명하며 사회속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김종인 또한 지치고 허덕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풍만하거나 납작해져 버린 여체들로 대변하여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종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원시 문양들은 남성 우위적인 크리스트교 신앙에 대응하기 위해 고대 크레타문명에서 번창하였던 종교의 여신을 상징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아나 멘디에타와 같이, 원시문화에 매료되어 역사 속에서 그들의 맥을 이어보려 노력하는 많은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작업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김종인은 '아트 웨어'작업을 통해 그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고 분석하여, 그것을 토대로 형상화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