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하고 도발적으로 무장된 감성
-서상원의 개인전에 부쳐-
서상원의 작품은 치열하다. 최근의 작품도 그렇지만 초기의 것들도 보기에 편안한 작품들은 아니었다. 1993년 서울 현대도예공모전에서의 대상작과 1994년 진로국제도예전에서의 작품들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유기적 구조체와 현란한 색으로 눈을 자극하였다. 크고 육중한, 그러면서도 안정적인 볼륨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저채도의 유약이 횡행할 때 서상원의 것은 과거시험장에 나타난 백댄서들의 율동처럼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었다.
작품의 내용도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외계인" 또는 "절대적 존재"와 같은 제목들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뭔지 모르는 기괴함 즉 그로테스크한 무엇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그로테스크는 단순한 기괴함, 두려움, 절망 등의 의미가 아니라 통상의 관상용 도자기가 갖는 조형적 보편성에서 일탈한 새로운 세계로의 모색이었다.
"그로테스크를 구별하는 특징은 부조화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쟁, 충돌, 이질적인 요소들의 혼합이나 이종(異種)의 합성이다. 이 부조화가 단지 예술작업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경향이나 작가의 정신의 창조적인 기질에서 보여진다는 것이 중요하다. "와 같은 필립 톰슨의 말과 "그로테스크의 다양한 형태는 모든 종류의 합리주의와 조직적인 생각의 모순을 명백하게 선언한다."라는 볼프강 카이저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그로테스크는 사고와 실행에 관한 연결코드로서의 역할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술가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던지는 상상력적 일탈의 범주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의 타진인 동시에 기존의 체재에 대한 항거의 한 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서상원은 동시대의 도예 즉 우리나라 현대도예가 가진 역병과도 같은 유행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점토의 유연성이 가진 구조적 취약함을 극복하여야 하고 스테인에 의한 원색의 발색을 위해 전문적인 기술적 성취를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같이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관한 나름대로의 틀을 잡고 난 뒤 미국으로 건너갔고 전혀 이질적인 문화적 충격 속에서 자신의 토대를 새롭게 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의 작품들은 가기 전이나 크게 다름없이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를 유지하였으나 차츰 편집광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치밀한 작품들을 시작했다.
우선 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부분적으로는 점토의 유연성을 이용한 유기적 형태들이 자리잡지만 거의 대부분은 마치 나무처럼 흙판을 절단하고 조립한 기하학적인 형태들로 구성된다.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제작되는 작품들은 손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으며 매우 위태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치 튜브나 각진 파이프로 만드는 것처럼 속은 모두 비어 있으며 적절한 건조강도와 역학에 의해 이루어진다. 작업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지루할 정도로 오랜 시간 꼼꼼하고 정밀하게 부품들을 만들고 재조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에서 의도하는 바는 전혀 뜻밖이다.
"이미지를 겹치고 결합하는 것은 나의 작업에 자주 이용된다. 나무의 뿌리, 동물, 꽃, 곤충 등과 같은 유기적이고 자연적인 형태들은 볼트, 너트, 톱니 등과 같은 기계적인 형태들과 함께 작업 속에 나열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이미지의 결합은 실제의 것으로부터 환상적인 형태를 창조한다. 나의 작업은 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고 오토마티즘을 사용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아이디어와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별, 사람, 동물 등을 형상화하여 그것들을 조화시켜 명쾌한 유머 마저 풍기는 미로의 작품들,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들을 기초로 하여 그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환상세계를 전개하였던 초현실주의의 선구로서 높이 평가되고있는 Brugel과 Bosch의 작품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와 같은 작가의 말은 질서정연하고 차가운 포름속에 담겨진 매우 복잡한 욕심과 경화된 인식을 거부하는 의지로 해석된다.
세 번째의 전환은 작품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과 관람자에 대한 배려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쪽으로 행해진다.
"인생 혹은 예술이 될 수도 있고 게임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는 광범위한 의미의 게임" 이라는 정의를 전제로 한 최근의 경향은 고유의 의미를 가진 작품 하나하나가 게임보드 위에 설치될 때 그것들은 새로운 개체가 되고 새로운 스토리를 구성하여 하나의 새로운 전체를 창조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마치 서양장기판과 같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에는 무거운 조명이 드리우고 작품들은 장기의 말처럼 포진된다. 작품들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장기판에 올라 앉은 말이고 무사고 무기이다. 역할에 따라 날카로운 이를 가지고 있거나 적을 잡기 위한 그물을 들고 있으며 현란한 색으로 적을 유인하기 위해 분장한 것들도 있다. 전체를 지휘하는 보스는 점잖은 단색조의 우아함으로 모두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대비적 요소를 기본 에너지원으로 하고 있다. 동양의 문화 특별히 한국의 문화와 서양문화, 유기적인 형태들과 기하학적이고 기계적인 형태들, 파손되어지기 쉬운 모양과 영속성 있는 재료, 대칭과 비대칭, 수평과 수직 그리고 단색과 다색의 대비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게임을 통해, 게임을 시작하면서 매우 모호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의 올바른 위치 찾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종래의 설치적 개념의 작품들을 완전히 해체하여 각각의 작품대에 올려 놓음으로써 나타나는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다. 이는 곧 작가가 말하는 위치찾기의 한 방편인 동시에 그동안의 모색점을 새롭게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작품은 작가의 창조적 정신과 표현의 에너지를 응축한 결정체이다. 아직 젊다고 말할 수 있는 서상원은 10여 년의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탐구해 왔으며 도예가들의 구실 중 하나인 기술적 프로세스의 어려움을 이유로 안주하지 않았고 집단 이기주의의 울타리로 자신을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편안하기 보다는 부담스러우며 자연스럽기 보다는 작위적이고 순진하기 보다는 계산적이다. 그리고 치열하다 못해 도발적으로 무장된 감성으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우관호(도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