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직업의 종류와 수도 무척이나 다양해졌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직업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전통적인 직업들이 없어지기도 한다. '도자디자이너'는 유행에 대한 소비자들 기호변화를 반영하면서 나타난 신종 직업이다. 도예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 생소한 도자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쓰면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도예가 손민영이다.

작품 하나 하나마다 컨셉을 정하고 샘플을 만들어 반응을 보고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하여 탄생하는 디자인제품은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는 산업도자와는 달리 소비자의 기호를 세심하게 반영한다. 핀란드 유학시절, 한국의 청자와 유럽인들의 기호를 적절히 접목하여 제작한 그의 작품이 현지인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으며 전시기간 내 전량 판매된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되살리며 귀국 후 3년이라는 개발기간과 수 천 만원의 개발비를 들여 제작한 '대나무 손잡이 컵'은 무조건 만들고 보자는 생각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제작한 그의 회심작이다. 이 작품 하나만 보더라도 그는 도예가라고 하기 보다 정말 도자디자이너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다.

 

 

 

 

2003년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공간을 담는 그릇」이란 작품은 그의 디자인적인 감각과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주는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다. 석고주입성형으로 만들어진 일정한 규격의 자기판들과 나무, 아크릴을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접합된 이 작품의 주제는 '관념의 해체'. 그릇의 관념적인 기능을 형태의 일탈로 표현한 작품이다.「다용도 도자기 블록」이란 작품은 연결된 도자블럭 유니트들이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변형 가능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 모두 반복되는 일상에서 비롯된 고정적인 그릇의 개념을 벗어나게 하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항상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컵에 대나무 손잡이를 붙인 것, 손잡이에 자석을 부착하여 탈착이 가능한 컵, 오뚜기처럼 흔들거리는 화병 등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생활도자 소품들이 작업실에 가득하다. 이러한 작품들을 제작하기 위해 그는 남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기를 즐긴다. "같은 물체를 두 가지 의미로 바라보는 법, 모든 사물을 디자인적 심미안으로 바라보고 작품에 응용할 수 있는 접근법"이 바로 독특한 그만의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힘이다.

 

 

 

 

하지만 이렇게 디자인 된 작품들이 모두 다 팔리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컨셉과 함께 늘 고민하는 부분은 마케팅 부분. 수동적인 자세로 앉아서 그것들이 팔려나가기 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그가 최근 제작하고 있는 애완동물용 식기는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그릇시장의 틈새를 노린 제품이다. 화려한 색과 반짝이는 금빛, 그리고 애완동물의 이름이 새겨진 그릇은 플라스틱이나 스텐 재질의 그릇과 차별화 되어 소비자들에게 어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도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작품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고 혹 수공예 그릇들을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장식장 혹은 수납장 안으로 넣어버리는 상황에서 그의 애완동물용 식기는 과연 어느 정도 시장을 점유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자주 접할 수 있는 유통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제작한다거나 다른 업체와 협력하는 등의 노력 외에도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도예가로서 아니 도자디자이너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소원은 '좋은 디자인 서 너 가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는 많은 디자인 상품들이 나와있다. 그러나 그 많은 상품들 중에서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손민영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많이 사용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같은 작품을 여러 번 혹은 수십 번도 넘게 수정하고 제작하다 보니 그의 작업속도는 유난히 느리다.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 디자이너이기에 대중의 요구를 빠르게 반영하지 못한다면 외면당할 공산도 있다. 하지만 유행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앞질러 새로운 트렌드로 대중을 이끌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인정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작가는 여전히 배고프다. 그는 오늘도 넘쳐나는 디자인 제품들의 홍수 속에서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 언젠가는 여기 저기서 그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