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기반을 둔 끊임없는 실험정신



신상호 교수의 작업은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시도로 일관해오고 있다. 신상호는 1960년대 전반 대학에 입학해서 바로 이천에 가마를 마련하여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도자기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각 대학에는 물론이고 도자기를 한다는 사람은 웬만하면 소형의 전기나 가스가마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때는 이천 수광리와 여주 학동에 몇 곳 흙가마가 있어 도자기에 뜻을 둔 사람이면 여주 이천에 가야만 가마 구경을 할 수 있을 때였다. 그때 신교수가 학생으로서 자기 가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도자기에 향하는 집념과 열의가 남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때부터 그는 백자도 청자도 만들고 분청사기도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가 이들 도자기의 태토와 유약을 부단히 바꾸어 가면서 기형과 문양에서도 수 없이 많은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시작은 전통에 뿌리를 두었지만 지금 자신이 살며 숨쉬고 있는 「현재의 청자, 백자, 분청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신상호의 이러한 실험정신은 실용과 물레에서 이루어지던 전통도자기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돌연 일변하여 실용과 물레와 무관한 대형의 괴체조형물에 원색으로 설채하는 작업에 열중하여 그를 평하는 사람들이 그가 미국 교수 생활에서 자기 개성을 잃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분청사기로 승부를 내려는 듯 새로운 인화문에 새로운 분장법과 상감법을 반복 구사하여 미화와 우연 속에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려 수 없이 많은 작업을 하였다. 1991년 10월 조선일보 미술관서 선보인 것이 바로 새로운 분청사기작업이었다. 그 때 주위 사람들이 이제 그가 그 많은 실험에서 뚜렷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서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의 작업은 두 가지 유형으로 모두 물레와 분청사기라는 전통에 바탕을 두면서 하나는 여러 가지 항아리 같은 형태 위에서 이루어진 인화문, 상감문을 매체로 한 회화적 작업이었고 또 하나는 물레에서 성형한 통형을 변형시킨 동체위에 동물의 두상을 만든 것이다. 여기서 그에게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새로운 실험이 이미 나타나고 있음을 보았다. 새로운 기법과 정신으로 만들고 있는 분청사기 계통이면서 두 가지 유형은 이미 다른 궤도 안에 서 있었다. 하나는 물레와 분청사기에 바탕을 두었으며 또 하나는 물레를 벗어나고 있었고 분청사기와도 인연을 끊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그는 두 가지 유형의 작업을 다시 내놓았으나 하나는 종래의 공예개념인 물레와 분청사기에 바탕을 둔 작업을 좀 더 새롭게 그의 새로운 구상대로 끌고 간 것이며 다른 하나는 거친 도판을 쌓아올리고 붙이면서 형상을 만들어 가는 다시 말해서 흙의 특성을 살려 형상을 축조하듯 쌓아 올려가는 독특한 기법으로 두상을 강조한 동물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이번에 보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한 분청사기 작업은 철분이 많이 함유되고 입자가 매우 고운 태토로 항아리와 접시 형태를 만들고 그 표면에 태토물로 화장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인화문을 전면에 무작위로 시문하고 어느 정도 마른 다음에 표면을 적당히 문지르고 칼로 깍고 못으로 그어 백토 시장하여 상감문과 나머지 인화문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시 일부 흔적만 남기고 거의 전부를 긁어낸다. 그리고는 거기에 또 다시 반복하는 과정에서 남고 다시 새로 생긴 문양에 작가의 뜻이 담겨지게 된다. 문지르고 긁어내고도 남은 인화문과 꼬챙이로 그은 자국은 연륜과 같이 쌓인 역사의 흔적으로 남긴 것이고 상감하여 다시 긁다 남고 다시 생겨난 문양은 역사 위에 새로 형성되는 현실일 수도 있다. 또 그는 백토분장시에 일부분을 갈색과 회색과 적색으로 발색하는 분장토를 입혀 역사의 흔적에 은은한 이끼 같은 고태를 남기려 하였다. 그의 작업에서는 이렇게 반복되는 인화상감문양 뿐 아니라 기체도 시문이 끝나면 초벌구이하고 유약을 바른 다음 환원으로 본벌구이를 하고 난 다음 또 한번 구워낸다. 본벌구이를 한 다음에 다시 구워내는 것은 태도 속에 많이 들어있는 철분이 흙으로 스며들고 겉으로 배어나와 표면을 암녹회색으로 만들과 완전자화하여 돌보다 견고하며 또한 불을 땔 때 끝에 가서 잠깐 산화시켜 표면색에 미묘한 변화를 주었다. 또 하나의 작업은 1991년 전시 때에 시도한 바 있는 전통에서 출발한 분청사기 동물두상에서 물레를 전혀 배제하고 분장기법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골력을 살린 거친 태토판을 쌓아올리고 덧붙여 나가면서 두부를 주제로 한 동물상을 만든 것이다. 앉아있고 웅크리고 숙이고 서 있는 동물의 여러 가지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내는 것은 태토판과 덩어리를 숙달된 솜씨로 빠르게 덧붙이면서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의도하지 아니한 우연의 형태를 기대하기도 한다. 형상이 완성된 다음 초벌구이하고 표면부위마다 여러 가지 화장토를 섞어 바르고 다시 문질러 지우면서 변화를 시도한 다음, 본벌구이를 하고 여기 다시 철분 등 자연 안료를 얇게 바른 다음 문질러 지우고 또 덧칠한 후에 다시 굽는다. 마치 분청작업과 같이 여러 번 칠하고 문질러 지우고 다시 칠하고 하는 과정에서 어둡고 밝고 진하고 엷은 표면색의 변화를 만들어내어 오랜 연륜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며 세 번 구워냄으로써 태토와 화장토의 철분 등이 유감없이 겉으로 배어나와 흙과 불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색의 향연을 연출한다.

동물상은 큰 것들 하나 하나가 다른 개성을 지닌 작품으로 등장하지마 작은 동물상을 집단으로 벽면의 동층 선반에 배치하여 군상이 하나가 되어 작품으로 선보인 것도 있다. 작은 군상들도 큰 것과 마찬가지로 도판을 쌓아올리고 덧붙여 만드는 등 큰 것과 똑같이 많은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신교수의 작업은 1991년의 분청사기 작업으로 미루어 점차 거기에 정치하면서 좀더 형태와 문양을 자리 뜻에 가깝게 정리, 세련시켜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번 분청사기 작업만 보아도 아직도 어떤 미지의 목표를 향해서 부단히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지난번 전시 때의 이중구연의 여러 가지 항아리 형태에서 이번에는 이중구연을 지양하고 단순화된 형태로 이행되어,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인화상감문과 단순화된 형태가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지난번 작업에서 보다 정리되어 가는 일면이지만 특히 상감문양에서는 지난번 작업에서 나타난 새와 나무와 같은 또는 신교수가 만들어낸 구체적 형상을 이번에는 자꾸 지워나가면서 미지와 우연과 찰나에서 얻어지는 성과에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은 신교수의 실험정신이 어디까지 이어지느냐 하는 데에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동물형상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분청사기 동물두상에서 출발하였지만 작품성과 재질과 제작 기법 등이 전혀 새롭다. 재질도 큰 것을 만들기 위하여 골력이 많은 거친 태토를 사용하였고 제작기법도 괴체의 조각 같은 형이면서 조각과 같이 덩어리에서 깍아내는것이 아니라 겉면만 도판으로 쌓아올리고 붙여나가 속은 비게 되는 방법이다. 분청작업에서는 포괄적인 자연현상을 회화적으로 나타낸 것이고 동물작업에서는 자연 속에서 개체의 동물을 선택하여 조각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동물상 하나 하나가 인격체로서 각기 개성과 특성을 지닌다. 모든 동물상은 각기 다른 표정이면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깉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동물은 본성(천성)대로만 행동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천진하다. 인간처럼 계산된 작태는 벌이지 아니한다. 신교수는 인간의 여러 가지 심성을 동물에 의지하여 나타내려 했을 것이다. 인간의 착한 심성도 간교한 작태도 천진한 동물을 의인화하고 우회해서 은유적으로 나타냈으므로 우리는 여기 선한 동물상에서 인산의 착한 심성을 다시 찾아 거기 흠뻑 젖어들 수도 있다. 어딘지 음흉한 듯한 표정에서는 동물들이 "사실 우리는 이러하지 아니하다."하면서 인간의 간악함을 훈계하고 잇는 듯하여 깊은 자기 반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교수는 이 작업을 위해서 오랜 모색과 구상의 세월을 거쳐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숙달된 솜씨로 순간 순간에 형상이 이루어져 형태와 표정이 솔직하고 대담할 수 있고 최후의 마무리는 불이 만들어내는 자연현상과 같은 것이어서 여기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성과에 대한 매력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신교수의 끝없는 실험정신은 신교수 만이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신의 특수한 작업환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가 생활하고 연구하고 작업하는 곳은 숲과 바람과 물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든지 가능할 수 있는 풍부한 자제와 매우 훌륭한 시설이 있고 무한한 에너지를 지닌 신교수가 있다. 신교수는 전통공예와 특수한 회화성이 서로 만나 어우러지는 선적인 구성의 형태미를 추구하면서 흙으로만 가능할 수 있는 특이한 조각적 기법으로 가구적 괴체가 주는 구성미를 함께 추구하고 있다.

자신이 이룩한 혜택받은 환경에서 수 없이 거듭되고 반복되는 작업에서 우연과 미지의 바램과 순간 순간에 이루어 놓은 성과는 솔직 대담할 수 있는 반면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자연스러움을 해칠 수도 있다. 또한 불을 때는 시간을 길게하고서도 초벌, 재벌한 다음 또 다시 구워내므로 숙성하고 완전자화하는 것은 견실한 신뢰를 주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질(태)와 재물(유약)의 내면성이 유감없이 표출되지만 자칫 지나치게 완벽한 것을 추구해서 긴장감을 조성할 수도 있고 어수룩하고 어딘지 모자란 듯한 여유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교수가 해나가고 있는 작업은 우리의 전통과 자연과 같은 아름다움을 그의 작품에 담으려는 끝없는 실험정신에 바탕을 두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밝은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여 우리를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갈지를 언제나 기대해 본다.



정 양 모 (국립중앙미술관 관장)



H 35×46 cm 1995

H 25×32.6 cm 1994

H 40.3×40 cm 1995

H 41×40.7 cm 1995

H 28×30 cm 1995

H 26.6×37.5 cm 1995

H 38×47.3 cm 1995

H 31×40.8 cm 1995

H 29.4×38.4 cm 1994

H 24.2×32.3 cm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