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홍익대학교 일한대학원 도예유리과 비평전
작가 :
단체전
2023-02-26 (일) 01:08
조회 :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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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홍익대학교 문현관 4충 현대미술관 제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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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2023. 02. 06(목) ~ 2023. 02. 1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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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2023 홍익대학교 일한대학원 도예유리과 비평전 ■ 작가이름
왕우철
이순 이윤희
왕항원
김희정 안규빈
이경은
이채민
조민근
최나운
최서우
권지현
등쓰위
박노식
박선아
채민정
김지환
신은지
유철양
윤산하
윤지훈
은동기
이도아
이소윤
정영주
홍정민
김유빈
나혜원
우이슬
홍은혜
김록영
김은주
김수아
김시원
김혜린
이희주
김선우
이슬
■ 장소 홍익대학교 문현관 4충 현대미술관 제 1관
■ 날짜 20232.6 MON - 2.10 FRI 10:00 - 17℃0
■ 내용
2차 이윤희
본인의 작업은 맑은 백자에 금칠을 더해 화려한 채색과 정교한 형태를 완성하는데 이러한 조형성에는 종교적인 성스러움과 경외감이 짙게 배어있다. 생과 죽음 등 삶의 총체적인 단면들을 종교와 신화의 이야기로 차용하며 제시한다.
이번 전시의 작업은 중세 종교화가 비유나 상징을 통해 성서적인 메세지를 전달했듯이, 17세기 회화 [바니타스]를 모티브로 한다.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해골, 치유를 상징하는 붕대, 안식처를 상징하는 샘물 등 다양한 상징들로 표현하고자 한다.
도자기법 중 대량생산이 가능한 산업도자 기법인 주입성형방식과 정교하고 세밀한 장식적 묘사와 채색이 결합한 그의 작업은 장면마다 언어화된 혼종 이미지가 이야기를 형상화한다. 소녀, 해골, 절단된 신체, 동식물 등의 이미지들을 프레임 안에 깊숙히 집어넣어 인류 역사에 침전된 욕망과 결핍, 삶과 죽음, 죄악과 성찰의 서사를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업은 입체와 부조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프레임 안으로 깊숙하게 자신의 서사를 압축시킨 것이다. 그리고 관객이 마주하는 그 순간, 세라믹 위에 새겨진 이야기들을 펼쳐놓는 납작하고도 깊은 조각들은, 종교화나 역사화에서 느낄법한 비장함과 숭고미를 떠오르게 한다.


3차 이순
이 시리즈는 '꽃잎'과 '새장'을 주요 요소로 사용합니다. 꽃잎은 사랑, 미, 부유함, 건강 등 아름다운 것들을 나타냅니다. 새장은 속박, 벌칙 등 아름답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나타냅니다. 현대사회에는 이런 아름다움과 속박이 공존하는 모순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 막시밀리안 의'현대 사회의 철장(iron cage)'이나 미셸 푸코의 '원형 감옥 파놉티콘(panopticon)' 이론 등은이에 대한 대표적 예시입니다. 현대 사회는 고도로 발달된 산업과 풍부한 물질적 부를 가진 사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법, 제도, 도덕 등 사회 전반을 관리하기 위한 많은 규칙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 혼인이라는 제도와 혼인법들이 필요했고, 사회 치안을 위해서 경찰, 법원, 법률 등이 필요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의 아름다움, 이 역시 복잡한 제도 위에 세워집니다. 이러한 점은 연구자들이 이 시리즈를 연구하게 된 동기입니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속박의 관계를 논의하고 분석하여, 아름다움과 속박 간의 관계를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1차 왕항원
제 작업은 식물과 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창작할 때 나는 생태 보호, 전쟁, 인성 등 많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다. 제작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수정되었다. 제 생각에는 영감은 제작 중에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제 작품은 서로 다른 시기의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식물의 생명에 대한 존중, 작품의 조형은 일종의 제멋대로의 상태, 자연을 대할 때 식물의 생명력과 끈기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출현은 기물 조형으로 대표한다. 인간과 식물은 서로 잘 어울리지 못했고 생태의 파괴로 식물들이 시들기 시작했다, 그 후에 작품은 철근을 등장시켰다. 나는 이러한 주체로 인류의 출현을 대표했다. 도시의 과도한 개발은 생태의 나쁜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철근의 강성과 꽃의 연약함은 대조적이지만 여전히 강하게 자라고 있다.
3차 왕우철
이 작품은 당나라 때 '흑석호' 침물선에서 해저에 떨어진 도자기를 영감으로 했다. 도자기는 마치 시간으로부터 벗어난 것 같았다. 수 천 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근데 기나긴 역사에서 사람의 일생은 아주 짧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곧 죽음을 의미하고, 누구에게나 큰 초조감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생동안 시간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기억으로 시간의 흐름에 맞서고, 창조로 허무에 대항한다. 해저에 들쭉날쭉하게 나열한 도자기들은 마치 사람처럼 아무리 작아도 시간과 싸우면서이 세상에 자기만의 흔적을 남긴다. 제가 보기에 해저 유물은 인간과 시간의 대결이다.
3차 박노식
사람들은 각자의 정체성이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본인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정체성이 형성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나는 작업을 위해서 나만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관련된 것들에 궁구하며 작업의 주제, 형상을 찾고 있다.
나는 ‘나’를 만든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봐온 만화와 피규어(Figure) 등이 나의 관심사이자 작업 소재다. 과거 토우의 형상에서 실루엣을 차용하여 캐릭터화(character) 한다. 그 형태에 '나'를 표현한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 의해 본인의 외형이나 특징이 굳어지는 경우가 있다. <Identity-정체성>의 연작인 <나, 나>는 타인에 의하여 외형이 굳어지는 경우를 본인의 모습에 대입하여 표현하였다. 흔히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본인의 외형의 모습을 캐릭터화하여 제작하였다.


2차 이도아
고통은 언어를 분쇄한다. 육체로 느껴지는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들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언어 이전의 비명을 외친다. 나는 이 비명들을 모아 이야기 짓기를 시도한다. 나의 육체로 느꼈던 고통을 엮어 가시화한 나의 이야기는 비합리적이며 기이한 형상이다.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 1946~)의 <고통받는 몸>에 따르면 ' 고통스러워 하기’는 확신하는 것이고 ‘고통에 관해 듣기’는 의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쉽게 확신할 수 있지만, 타인의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쉽게 의심한다. 그러므로 육체의 고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통의 공유 불가능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임시로 언어를 붙잡아두곤 한다. 예를 들어 의사에게 두통을 설명할 때 우리는 ‘욱신거리다’ ‘쿡쿡거리다’ 등 실제 고통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로 고통을 설명한다. 혹은 예술에서 이별을 묘사 할 때 ‘하나의 몸이 두 쪽이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 몸이 갈라지지 않았으나, 몸이 반으로 나뉜 것과 유사한 고통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고통의 감각을 타인이 완벽히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고통의 감각을 공유하고자 일시적으로 언어의 기능을 활용하여 표현한다. 이는 일시적인 언어적 표현으로 비합리적이며 모호하다. 즉, 고통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고통의 감각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완벽하지 않으며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을 가시화하여 이야기하는 나의 작업은 비합리적인 기형이다. 고통이 분쇄한 언어들을 주워 담아 엮어내는 일은 기형을 만들고 육체적 고통을 가시화하는 나의 작업은 기괴한 인간 형상일 수밖에 없다.
나의 그로테스크한 관점은 배출인 카타르시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와 반대로 나는 배출된 것들의 재구성을 목격하도록 함으로써 관람자 자신의 육체로 회귀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공유불가능한 고통을 그로테스크의 시각 언어를 활용하여 관람자의 촉각적 경험을 자극하여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보고자 하는 전략이다. 전략적 행동을 통해 관람자와 나는 하나의 육체적 소통체계를 형성하고자 시도한다. 이를 통해 관람자와 작가라는 두 사람의 고통에 관한 일시적인 쌍방의 소통체계를 형성함으로써 고통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2차 정영주
나는 도자 매체의 본질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고자, 흙을 탐구한다. 이번 2차수에는 흙의 물성에서 비롯되는 모습을 도자기의 표면에 적용했다. 내가 생각하는 도자 공예, 도자 매체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특징은 흙의 물성을 다루는 것이다. 도자에 사용하는 흙은 촉감이 부드럽고, 가소성이 있어 비정형의 모양을 성형할 수 있다. 이어서 소성 단계를 거치며 화학적 변화가 나타난다.
나는 도자기 제작 과정 속, 재료의 물성에 의해 생겨나는 미적 특질을 포착하여 질감 표현에 활용했다. 도자 점토와 재료를 소성하여 요철을 유도했다. 더불어 특정 알갱이가 흙 사이에서 녹고, 튀어나온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 작품은 코일링으로 만든 기의 표면 위, 흙의 질감이 돋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손으로 점토를 주물러 형태를 만드는 성형 기법 특성상, 반듯한 곡선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성형한 기 표면에 매끄럽거나 거칠게 흙물을 바르기도 했다. 작품은 모든 각도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가졌다. 이에 따라 한 작품 안에서 다채로운 형태와 그에 따른 질감 표현이 드러났다.
흙물을 발랐을 때, 순간적 질감 포착은 유리했지만, 흙 자체의 질감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흙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돌멩이처럼 크고 작은 알갱이를 만들어 작품에 적용했다. 직접 제작한 알갱이 사용과 더불어, 상감기법으로 흙 속에 녹은 광물질을 표현했다. 자연의 흙에서 관찰할 수 있는 무작위한 모습을 기 표면에 드러냄으로써, 정제되지 않은 흙의 원시적 질감을 표현하였다.


1차 김유빈
어린 나는 항상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했다. 동화책 속 공주님들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것과 비슷한 드레스를 가지고 싶어했다. 그리고 자란 나는 유럽 여행을 하며 신화나 역사 속 인물들이 등장하는 미술품을 보며 감탄한다. 어느 날 내가 욕망하는 것은 드레스나 미술품이 아닌 그 안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소장함에서 오는 충족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결국 내가 욕망하는 직접적인 대상에 가까워질 때 비로소 만족을 얻는다.
미술품을 통해 사람들은 욕망을 충족한다. 하지만 작품을 소장함으로 얻어진 욕망의 충족은 짧은 시간 내에 중단되고 또 다른 미술품을 소유하길 원하게 된다. 그것은 미술품은 그 자체로 그들의 진정한 욕망이 아닌 것을 증명한다. 사람들은 미술품 소장을 욕망한다고 착각하지만 그 진정한 대상은 건너편의 주인이나 모델에 있다. 미술품 속 주인공과 본인을 동일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진정 본인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도자기 표면에 나와 나의 흔적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그려내며 나의 욕망을 충족한다.
나는 곧 사라질 찰나의 발자국들을 부조물로 만들어낸다. 그것들을 표면에 붙여내 당시의 나를 기록하며 도자기 속 주인공이 된다. 나는 발자국이 지워지는 것이 아쉬워 구겨지고 정돈되지 않은 물건들을 나의 모습과 그려낸다. 나의 움직임은 구겨진 옷과 먹다 남은 과자들, 빨래통에 쌓인 빨래 같은 흔적들을 남긴다. 그렇게 무심코 남긴 옷가지들과 쓰레기들은 바닥에 남고 의자에 걸린 채로 나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리며 방치된다. 청소를 시작한 나는 그 흔적들을 바라보며 이전에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를 다시 떠올려내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리하고 펴내는 과정에서 나의 움직임의 흔적은 없어진다. 나는 곧 사라질 찰나의 발자국들을 부조물로 만들어낸다. 그것들을 표면에 붙여내 당시의 나를 기록하며 도자기 속 주인공이 된다.


2차 홍정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같은 그림 찾기에 비유할 수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같은 그림 찾기를 하듯 공통점을 찾는 것은 일종의 즐거운 놀이이다. 반면, 현대 사회 속 사람들은 <같은 그림 찾기>보다 <다른 그림 찾기>를 한다고 느껴진다. 타인에게서 나와 같지 않은 점을 발견하고 그를 두드러지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틀린 점을 찾으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그림 찾기를 보면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그림이다. 타인과 내가 같은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고 그에 집중하면 조금 더 쉽게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
공통점을 찾기 위해서는 물체를 면밀히 관찰하는 섬세한 시선이 필요하다. 이는 형태를 비교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연습을 통해 능숙해진다. 나는 유사점이 없어 보이는 사물을 나열해 시작점을 제시한다. 왜가리, 옷걸이와 화병 등의 사물의 나열은 인위적 변형으로 인한 공통된 형태를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고양이의 꼬리는 해파리의 입다리로 이어지며 다시 해파리의 우산은 버섯의 갓으로 연결된다. 이런 연결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비슷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어느 순간 같아질 수 있다.
1차 나혜원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본인은 그동안 성장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해오며 왜 성장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민의 끝에 나온 답은 사랑이었다. 내가 느낀 사랑과 연대의 의미를 이번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인생에서 사랑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부모-자식, 스승-제자, 연인, 친구 등. 사랑으로 묶여있는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사랑이란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는 관계를 형성하고, 성장하며 나를 알게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
따라서, 본인은 관계의 시작을 사랑이라고 보았다.
- 사랑이 있어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다.
- 사랑을 기반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는다.
- 사랑이 있으니 미움이 있다.
지난 3년간 고향인 제주에서 제주 옹기를 접하고 다루게 되었다. 옹기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가마를 뗄 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와서 조건 없이 돕는다. 많은 사람들의 연대로 옹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본인은 사랑을 느꼈다.
이번 작품의 세부 주제는 ‘연대’이다. 타인과 타인의 연대는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때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거의 사라져 갔던 제주 옹기이나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여 지켜왔고, 그 결과 지역 문화재로 등재되어 아직까지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이것이 본인의 작업이 옹기의 형태를 사용한 이유이다.
각각의 옹기들은 한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의 형태임에도 모두 다른 이목구비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눈빛과 표정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만들어진 옹기들은 서로 눈을 마주하거나 혹은 함께 배치된다. 옹기들의 상호작용을 통해본인이 주제로 삼은 사랑이 표현된다.
2차 이슬
流; 흐를 류는 기체나 액체가 흐른다는 뜻의 한자이며 특정 물질이나 추상적인 게 널리 유통된다는 뜻과 정처 없이 떠돈다는 뜻, 그리고 사건의 진행 따위가 그 진행에 거침이 없다는 뜻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흐르다가 시간이 지나 파인 곳이 있으면 머물다가 흘러갑니다. 흐름은 드넓은 바다로 이어집니다. 그 바다 안에서 끝없이 흘러갑니다. 물이 흐르고 머물 듯이 유리도 뜨거울 때는 흐르고 저의 손에 의하여 제가 원하는 모양으로 저의 작업 시간에 머뭅니다. 이 작업을 통해 유리에 물과 같은 흐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물의 흐름을 컵, 볼, 접시로 표현했습니다. 높은 산에서 흐르는 물을 표현한 컵 산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호수에 흐르는 물을 표현한 볼 그 모든 물을 담는 바다를 표현한 접시 총 3종류의 식기를 만들었습니다. 울렁거리게 만들어서 유동적인 모양을 만들었고 울렁임 사이에 이슬을 붙여 머무는 물을 표현했습니다. 물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여 3개의 기물이 겹쳐지는 색감으로 반사된 물을 나타냈습니다. 이 식기 안에 당신이 좋아하는 시간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차 신은지
1. 정육면체에서 모든 면을 지나는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직선은 입체의 표면을 평면상에 펼쳐 놓음으로써 구현된다.
2. 두 점을 포함하는 평면은 무한히 많지만 한 직선 위에 있지 않은 세 점을 지나는 평면은 하나뿐이며 평면을 결정하는 조건은 넷 뿐이다.
1) 한 직선 위에 있지 않은 세 점 2) 한 직선과 그 위에 있지 않은 한 점 3) 한 점에서 만나는 두 직선 4) 평행한 두 직선
3. 정다면체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다섯 뿐이며 다섯개의 정다면체는 면의 개수와 모서리의 개수가 교차함에 따라 서로를 품으며 순환한다. 4. 다면체에서 대각선은 같은 면 위에 있지 않는 두 꼭짓점을 잇는 선분이다.
형식적-체계적 사유를 특징으로 하는 수학을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로 확장하여 그 속에서 이 세상을 구성하는 어떤 원리를 발견하고 우리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1차 홍은혜
KEEP CALM : 당신은 지금 불안하지 않은가요? 의사전달의 시각적 수단이었던 문자는 15세기 중엽에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의 발명과 함께 단순한 기능성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조형적, 개념적 매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기후변화, 사회∙정치∙경제적 위기, 질병, 학업 등 개인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본인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항상 불안해하면서, 현실과 단절된 나를 발견하곤 한다. 본인에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은 ‘ 나’라는 존재와 현실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본인에게 흙을 만지는 것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행위이다. 누구에게나 불안감은 존재하고, 이를 해소하고자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본인은 작품을 통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중들과 불안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동시에 관중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일련의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작품은 영어 문장으로 제작되었다. 영문 철자를 일러스트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변형 및 디자인한다. 이후 작품 메시지의 철자인 ‘K’, ‘ E’, ‘E’, ‘P’, ‘C’, ‘A’, ‘L’, ‘M’을 각각 흙으로 코일링하여 제작한다. 본인은 문자를 도자 조형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다. 좁은 범위의 개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4차 조민근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잔잔한 움직임이나 역동적인 움직임에 매료되어 빠져든다. 나는 자연의 경관을 바라볼 때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바다나 강, 호수 등에서 물이 흐를 때 나타나는 물결이나 파동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의 이파리, 낙엽 등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곡선의 형상과 움직임에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느꼈다.
자연물의 형태는 다양한 곡선과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율동감이 느껴지며 자연의 유기적 곡선 형태는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나는 물결의 움직임이나 파동, 식물의 움직임 등에서 볼 수 있는 곡선 형태에 영감을 받았다. 자연의 생명력과 활력을 내가 생각한 프레임 형태(원의 형태)로 제작하거나 식물의 움직임을 확대하거나 재해석하여 표현한다. 자연의 유기적인 곡선을 부분적으로 보여주거나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선의 동적인 움직임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Waves>작품은 물의 흐름이나 파동에서 나타나는 곡선을 원형의 프레임 안에 표현한 작품으로 물결에서 보이는 선의 아름다운을 표현하였다.
<My plants>작품은 식물의 형태를 차용하였다. 반복적인 선을 입체적이게 표현함으로써 식물의 생명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자연물에서 볼 수 있는 선을 통해서 자연의 생명력과 신비함을 느끼고 감성을 자극하고자 하였다.
4차 안규빈
도심 속 바쁜 현대인들은 자연을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낀다.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가진 현대인들은 자연으로 돌아와 귀농 · 캠핑 · 식물 키우기 등의 활동을 통해 정서적으로 위로 받는다. 본인 또한 바람에 살랑이는 식물의 모습과 소리를 들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식물에서만 심리적 안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도시를 거닐다 보면 한없이 연약한 새싹을 볼 수 있다. 단단한 아스팔트와 보도블럭 사이를 비집고 성장하는 새싹의 모습은 연약하지만 성장하고자 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단단한 물체를 비집고 성장하는 식물을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한 감정 해소하며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자 하였다. 자연의 생명력을 담기 위해 유약 소성이 아닌 기물과 자연의 원재료를 함께 소성하여 자연의 신비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2차 유철양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걸을 때 우리는 육체와 세상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육체와 세상 속에 머물 수 있다. 걸을 때 우리는 생각에 빠지지 않으면서 생각을 펼칠 수 있다. “ 1)
이번 작업은 내가 경험한 공간을 판 성형 기법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를 재설계하고 제작할 때 뜻밖의 수확을 얻는다. 나는 작업 과정에서도 “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체험한다. 특히 흙은 계획한 것과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공존하는 재료이다. 작업을 통해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신체와 정신 그리고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다.
먼저 큰 흙판을 만들고, 그것을 잘라서 기하학적으로 변환한 공간과 건물을 제작한다. 이때 자르고 남은 흙판으로 각각의 형태에서 연상되는 사물을 추가로 제작한다.이 사물들은 제작 당시에는 무엇이 될지 미정이지만, 완성 후에는 어떠한 시적.연관성이 생긴다.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의식적인 행위라면 사물을 만드는 것은 우연히 발생하는 행위이다. 이는 우리가 공간을 직접 걸을 때만 선물처럼 마주칠 수 있는 풍경 혹은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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