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irdcage / porcelain / 280*220*310mm / 2004
3. Cactus Jungle / porcelain / 420*260*370mm / 2004
4. Flora / porcelain / 270*180*190mm / 2004

이 글은 박은정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나 사실 작품을 직접 보면 글의 효용성이 그리 없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언부언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그의 작품들이 그냥 보기보다는 몇 가지 읽을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박은정 작품은 기본적으로 주전자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의 본질적인 기능성은 처음부터 무시되어 왔다. 물고기, 꿩, 카멜레온, 개구리, 뱀, 랍스터, 달팽이, 무. 스타 프루츠, 선인장, 생강, 아티초크, 당근, 솔방울, 오크라,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등 우리 가까이 있는 생물들을 수재로 주전자의 4요소 몸체, 뚜껑, 손잡이, 물대 등을 표현하는 전개방식은 여느 작품들의 프로세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작가 또한 소재의 선택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상의 생물들을 석고로 떠내고 그 자리에 흙물을 채워 형태를 만든 후 휘거나 잘라서 원하는 요소들을 생성한 후 접합하여 완성시키는, 도예의 기술적 방법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재미는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에 따른 주제읽기다. 앞서 말했지만 주전자는 태생적으로 다른 용기들에 비해 건드려야 할 부분이 많다. 이러한 점들은 도예가들이 조형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박은정은 오히려 즐기고 있는 듯 하다.

발견의 기쁨, 소위 오브제(found object)로 한 장르를 구축한 현대의 예술가들은 일반인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사실들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여 왔고 그것은 사물에 대한 재해석 또는 재인식이라는 사고의 경지를 맛보게 하였다. 박은정은 여러가지 생물의 형태를 조합해 나가면서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주전자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간결하게 완성시킨 것이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소재들을 접합하면서 이루어진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다시 새로운 소재를 찾아 추가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시각적 아름다움과 장식성이 돋보이는 반면 꼼꼼히 들여다보면 유전자 변형에 의해 탄생된 듯한 기묘한 생물들의 모양을 찾을 수 있다. 마치 중국 고대의 지리서 산해경에 나오는 괴수와 요괴 그리고 신화적 동식물을 연상케 하는 조형들과 오크라를 이어 붙여 만든 그물망,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새장 등은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의 순기능에 역설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나아가 유기체적 생명의 본질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가지 생물들을 뒤섞여 은유적 모습으로 구현하는 조형사고의 박은정의 작품이 주전자라는 보편적 인식의 수준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두번째 흥미로운 점은 조그마한 주전자에 들이는 기술적 공력이다. 슬립캐스팅으로 만든 소재들을 접합하여 완성하는 프로세스는 제작자의 계산과 기술적 경험을 요구한다. 소재들의 세밀한 부분들을 다치지 않게 하고 또한 각 소재들의 건조상태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접합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나아가 고온소성에서의 연화하중에 의한 변형을 막기 위해 각 요소들간의 구조와 두께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소성 프로세스는 색채의 표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도예가 흙과 불에 의한 예술이라는 자위적 구호아래서 흙의 질박함과 불에 의한 우연적 효과에 연연하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장르간 교착은 도예가들을 더 이상 신비주의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적용하여 본다면 박은정의 색채구사는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주전자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가진 본래의 색채를 충실하게 구현하면서 전체적으로 투명한 유약의 질감은 박은정만이 감지하고 해석하는 색질감(color texture)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표면의 요철이 많은 소재의 경우에는 먼저 산화동 같은 금속산화물을 바르고 닦아내면서 오목한 부분이 짙게 표현되도록 하고 다시 그 위에 반매트 색유를 발라 본래의 용융점을 넘겨 소성한다. 그러면 유약은 맑은 유리질의 색유로 바뀌지만 백색 태토의 색감을 은근히 드러내면서 색 자체만으로 깊이감을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박은정의 작품들은 마치 색유리로 만든 생물들의 조합체처럼 보여지거나 서정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 완결감있는 조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우관호(도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