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Meditation - In The Atumn 4 / 16.5*16.5*24cm / Stoneware Ashglazed / 2004
3. Meditation - In The Atumn 8 / 34*34*4.5cm / Stoneware Ashglazed / 2004
4. Meditation - staying 3 / 33*20*48cm / Stoneware Ashglazed / 2004

최성재의 분청 – Meditation

분청사기에서는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감지된다. 거친 듯 담대하고 소박한 듯 고아한 품격이 작은 기물 하나에 응축돼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전통분청의 내재율은 폭넓은 쓰임을 지닌 창조적 기능과 감성적인 무늬그림으로 분해된다. 기능은 새로운 문명적 조건을 제안하는 요긴한 쓸모로, 무늬그림은 심화된 사유의 결과를 평면이라는 조형조건으로 치환하려던 도선초기 실험정신의 한 상징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무늬그림은 보통의 수묵화와 문맥이 다르다. 소재와 표현결과에서 향유대상을 크게 넓히는 쓰인의 보편성을 가졌을 뿐더러, 표상된 기호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진솔한 생활감정을 범계층의 정서적 보편성에 기반하여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조형의식이 달리진 오늘에도 분청은 여전히 단색조의 동시대 미의식과 교감하면서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물론, 400여년의 공백을 거뜬히 메울 만한 저력은 특유의 조형적 유연성에서 기인한다. 뷴청의 핏줄속에는 질긴 관성에 저항하는 일정 수준의 반골의식과 일상의 내밀한 감성이 뒤섞여 흐르는 탓이다. 따라서 분청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양식사의 분석적태도보다는 감성의 코드를 한껏 확장할 필요가 있다. 최성제가 빚어내는 분청은 절묘한 여백과 관조적 사유의 깊이를 통해 시공간을 호흡하는 고름 숨결을 지녔다는 점에서 주묵을 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명제인 ‘관조’ meditation는 그가 빚어내는 ‘여백’과 긴밀하게 조응하는 구조이다. 담청색 모노크롬과 일체화된 명징한 울림은 이처럼 적절한 여백을 통해 표상된 깊이 있는 관조적 사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 여백을 남기는 일에 특유의 저력을 발휘한다. 그의 여백은 무언가를 채우고 남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표현소재와의 사이에 팽팽한 긴장을 유발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이렇게 얻어진 여백은 그의 작품 내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여백은 표현된 여러 소재가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만큼 중요하며, 공간을 비우되 잘 비우기 위해 애쓴다. 최성재 만의 역설적인 비움의 어법이 힘을 발휘하는 탓이다. 절제없이 좋은 여백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표현욕구를 끝없이 절제하는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절대의 여백에 도달하게 된다. 성공적인 표현의 결과는 대척점에 있는 비움의 과정을 통해서 완전해진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두 가지 요소가 서로에게 상생의 역학관계를 형성한다. 이 때 기형은 적극적인 쓰임을 겨냥하기보다는 지지체의 구실을 담당하는데 만족한다. 물레질 보자 손질이 더딘 판 성형으로 구축된 각이진 병과 호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손색없는 형태와 기능을 지녔지만, 쓰인의 해석과 선택의 문제는 관객의 몫으로 고즈넉히 미루려는 속셈이다. 표현도구는 손가락 또는 끝이 부스러진 나뭇가지와 풀줄기 따위가 무작위로 동원된다. 한껏 돋워낸 내적 운율을 본장토를 바른 기벽 위에 온전히 토해내기에는 붓 보다 효과적이다. 손놀림은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이에 앞서 길고 내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손끝에서 휘늘어진 강가의 버들가지나 갈대 늪을 유영하는 두어마리의 오리가 마침내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제작과정의 즐거움을 중시하는 편이다. 자신이 스스로 즐길 수 없다면 그 결과가 좋을리 만무하다는 생각에서다. 현대 분청을 주도하는 소수의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린 지 오래인 최성재의 내면의 울림이 이번 전시를 통해 좀더 친밀하게 가다가기를 기대한다.

최공호 (미술사/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