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개인전에 부쳐
-임창섭(미술평론가)
박상진은 경기도 광주에서 ‘개천요’를 운영하는 도예가이다. 분청을 한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시원시원한 성격대로구나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의 분청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이 성격과 달리 분청이 매우 세심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분청이란 소박하고 자유롭다 못해 어딘가 어수룩하고, 손가는 대로 만드는 그릇이라는 고정관년믕 여지없이 깨뜨리고 만다. 하나하나 정성들여 ‘인화’를 한 분청을 보면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형태도 정교하게 다듬어 어디 흠하나 보여주지 않을 태세이다. 사실, 분청은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독특한 그릇리다. 역사란 항상 소용돌이처럼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과정임을 생각하면, 분청이 그릇 중에서 그렇게 특별 대접을 받을 일도 없을 것 같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청자와 백자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 존재임은 분명하다. 분청이 탄생한 배경이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부엇이 독특한지 금방 수긍할 수 있게 된다.
고려가 몽고의 침입으로 정치, 사회제도가 무너지고, 경제의 틀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분청이다. 즉 국가에서 관장하던 청자상업이 무너지고, 도공ㅇ\즐이 전국으로 흩어지게 된 것이다. 그릇의 품질을 관리하는 공적인 체계와 제도가 무너지자, 약간 어설프지만 그릇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이는 누구나 그릇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당시 고려사회는 화려하고 기품있는 고급청자의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에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청자를 요구하게 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기 마련, 준비된 도공들은 재빨리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들은 시장에 내다놓고 그릇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그릇, 즉 저렴하면서도 사용하기 편한 그릇들을 대량으로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은 필연적으로 분청은 자신의 모습을 청자와 다르게 해야 하는 원인이 되었다. 저렴한 값에 시장에 내놓으려면 비용을 적게 들여야 했다. 그래서 그릇의 색은 칙칙해지고, 그릇 모양도 제멋대로 일수 밖에 없었다. 그릇에 넣는 그림도 도공이 제멋대로 그려서 유치하다. 그래서 본 모습은 청자이지만, 겉모습은 하얗게 치장하는 겉모습을 하게 된 것이 분청이다. 이것이 하양 백토로 치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 더 저렴하면서도 그릇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점차 많이 개발되자 분청은 더욱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흩어진 도공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과 장식방법을 만들어 내자 분청을 그야말로 다양함이 하나의 성격이 될 정도였다. 많은 도공의 숫자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진 것이 바로 분청이다. 어떤 형식이나 목적에 얽매이지도 않고, 도공의 스스럼없는 재기와 재치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된 것이다. 바로 분청의 탄생배경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분청은 ‘현대성’이라는 속성을 생성시켰다. 분청의 현대성이란 시대의 변화와 흐름 그리고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그릇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분청이 탄생한지 수백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분청이란 그릇에 호감을 갖는 이유이다. 어쩌면 박상진이 분청에 심취하는 이유가 바로 이 현대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분청은 조직적이다. 계획적이고 논리적이다. 흔히 분청은 우리나라 도자 역사에서 자유분방함의 대명사로 치부된다. 또 우리나라 문화의 소박함을 대표하는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분청의 또다른 면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분청은 일반 백성에서부터 왕실에까지 두루 쓰이던 그릇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왜 도예가 박상진이 그렇게 섬세하게 자신의 분청을 다루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을 두루 모아 생각하면 현대의 분청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청이 가졌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적응력이 그 첫번째 대상이다. 아무리 사회가 변하고, 문화가 변해도 분청은 자신의 내적, 외적 모습을 변화시켜 가면서 적응해 나간다. 그래서 여전히 분청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릇되었다. 다시 말하면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이가. 이것은 분청이 우리들의 감성에 기초한 그릇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또 하나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의미생성이다. 분청이란 그릇은 이제 단순히 음식을 담거나 단지 관상용으로 탁자에 놓는 그릇이 아니다. 분청은 우리 정서를 담아내고 대변하고, 그리고 즐기게 하는 가치를 새롭게 생성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런 노략이 현대에 분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존재 역할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현대의 분청에 이런 새로운 의미생성을 위한 도예가 박상진의 큰 노력을 기대한다. 언제나 분청은 새롭게 도전하는 도예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선의 어느 무명 도공에게도 자신의 몸을 드러내었듯이, 도예가 박상진에게도 분청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