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th in Earth / 옹기토, 합성수지 / 220*130*160cm, 2004
2. Earth in Earth / 혼합재료 / 123*210cm, 2004
3. Earth in Earth / 혼합재료 / 150*210cm, 2004

긴장과 이완 - 김정범 개인전에 부쳐

1. 퍽 오랜만의 전시이다. 한창 작업하는 작가의 3년여의 시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닐 뿐더러 작가의 작품성향의 변화추이를 읽기에도 다소 긴 공백으로 느껴질 수 있다.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가 전과 다르게 무언가 일상적인 게다가 희망이랄지 열먀랄지 하는 긍정적인 ‘(형식이 아닌)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잠깐 생각했다. ‘이 양반이 늙어가나?’
2. 이번 전시에서 김정범이 보여주는 것은 (혹은 보이는 것은) 일종의 ‘고민’이라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그이 고민은 자신의 작업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철학이랄지 혹은 조형이랄지 하는 것이라 느꼈고, 근대적 의미의 예술로써의 도예의 지속 혹은 탈피에 관한 것이 부수적으로 근본적인 고민의 뒤를 따른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문제에 있어서, 김정범은 아마도 일상의 생활세계 그리고 ‘소소한’ 생명(거대한 이야기로서의 생명이라는 현상이 아닌 일상에서 유지되고 환원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작업에 담고 싶어 시작된 고민인 듯 했다. 이것은 김정범이 아직까지 지속해온 현대미술의 강령이랄지, 혹은 신화(음)과 문명(양)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써 열매 맺음의 변증법이라는 거대 담론, 그리고 작품의 내용을 형식을 위한 도구의 의미로 치환시키는 현대미술의 형식주의적인 태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물의 지배원리인 ‘관서의 법칙’으로 인해서 커다란 이야기와 형식이라는 강령에서 당장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번전시는 조형의지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미미하여 일견 정지해 보이기도 하는 정도로 비춰진다. 그것이 고민이다. 그리고 두번째 문제에 있어서 그는 대체로 절충이란 방식으로 그의 태도를 표명한다. 형태를 만들고 오브제를 차용함에 있어서 도예가 가지고 있는 축조 라는 방식 대신에 분해된 형태에서 집적하는 방식을 통해서 전체에 이름으로써, 전체가 먼저 상정되는 단일 프로세스로 완성되는 도예적 방식을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도예적 형식 대신에 집적이란 프로세스를 차용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도예작품의 보여줌처럼 느껴지는 마띠에르와 색채를 채용함으로써 예술로서의 도예가 가져왔던 범주의 경계에 서려하는 듯 싶다. 부연하자면, (아마도)작가가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던 황토색은 (작가가 원한다고 말하건 그렇지 않건) 재료적인 제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혹은 그것이 앞으로도 쉽지 않다는 상징적인 표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전시장을 하나의 전체로 상정하거나 개별의 작품들이 각각 이질적인 의미관계를 형성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그 ‘색’이 하고 있다.
3. 김정범의 작품이 가진 미덕 중의 하나는 차용하고 있는 이미지는 대부분 유사와 상징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재미’를 던져준다. 가령 동적이미지로 채용한 폭포와 정적이미지의 견고함으로 채용한 바위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나타나는 폭발의 버섯먼지와 수려한 나무를 담은 작품의 경우, 폭포/나무와 바위/폭발이 유사한 형태, 즉 상사로 나타난다. 이것은 형태의 유사함에 착안한 내용의 유사하지 않음을 너머 전혀 반대의 것을 보여주는 내용과 형식의 간정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전의 전시부터 지속적으로 차용한 어린아이 인형의 머리와 해골은 일견 상반된 이미지로 형식적 닮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그것을 유사하거나 혹은 그것을 넘어선 동일함으로 상정되는 것이다. 폭포/나무와 바위/폭발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게 내용의 유사함이라는 것에서 이미지의 차용이 시작되어 보여줌이 상반됨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유사와 상사사이의 긴장감이 작품에서 드러난다. 지구 같기도 하고, 혹은 작가의 말처럼 열매로 상징되는 구체일 수 있는 두개의 구체는 표면의 거칠기로 같음과 다름의 긴장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만들어진 좌태위에 올라가는 작품들의 경유 최대의 곡선 및 축조와 사물의 직선 및 집적이 대척점을 두고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유사와 상사 그리고 긴장과 이완의 관계들을 작품의 설치에 있어서 전시장을 하나의 전제로 구성하는데 주효하다. 우선, 형식적으로 긴장 및 이완이 전시장 구상의 기본적인 원리로 작동하여 제의적인 국면을 띠게 된다. 사회가 가지는 재현체계로서의 종교 그리고 재현체계로서의 유사와 상사와 닮아있다. 그래서 이번전시는 다분히 설치에 있어서 종교적이다.
4.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작품은 마띠에르와 바탕색은 늘 사용하는 황토색이지만 색채의 제한에서 벗어나는 ‘일종의’실험처럼 보이는 따블로 작품이다. 마띠에르와 모노크롬의 바탕이 주된 기저지만 생성되는 사물, 공간을 나르는 커뮤니케이션(?)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각각의 사물들이 경계와 어울림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 작품은, 그 경계가 색채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으며 그래서 ‘색’이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평면작품에 입체적인 내용을 부여하기 위하여 평면을 포기하고 색채와 내용을 채용하는 회화적인 국면(drawing aspect : painting이 아닌)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색채표현이 시험이라는 측면 외에,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일상으로의 회귀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이 형식에 의해서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 때문에 형식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그래서 색이 쓰이고, 표현적인 요소들이 ‘그림’ 속에 들어가고, 내용들의 유기적인 연계를 위해서 화면들이 배정되는 내용중심의 프로세스가 담겨있다. 이것은, 형식적인 변화로 나타나지만, 그 형식적인 변화를 부른 기지에는 그의 조형정신이 형식에서 내용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4. 사족
예술로서의 도예가 점점 용도폐기 되는 분위기에 개인적으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예술로서의 도예는, 공예로서의 도예에 일종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전위로서, 그리고 현대도예 전개의 미적 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면서 현대 도예의 지층을 만들어 왔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도예는 형성 및 전개에 해당하는 공과 마찬가지의 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지에 와서, 예술로서의 도예가 제대로 된 예술로서의 교육이 이루어져 본적도 없이 전면적으로 용도폐기 되는 분위기는 현대도예에 ‘창의성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양분을 공급받을 원천을 용도폐기 하는 것은 현대도예에서, 도예를 ‘단지 그릇을 만드는’ 것으로 ‘현대’를 고사시킬 가능성이 크다. 도예의 경우, 예술이론의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 도무지 이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 혹은 기반없음이 문제이다.

김영민(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