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 180*180*255, 中 265*265*370, 大 340*340*470

확장된 의지 – 확장된 인식

1. 윤현경의 작품에 관한한 나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아도 그렇고 이번의 첫 개인전에 출품하려는 작품들을 보아도 생소하기만 하다. 더욱이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름직한 연배를 보면 아마추어의 과욕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그러나 그가 운영한다는 도자전문 갤러리의 이름은 얼마 전부터 들은 바가 있었다. 몇 가지 추론을 해보면 이렇다. 이유야 어쨌든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도자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그런 희망들이 알프레드의 여름학기도 이어졌으며 서울의 변두리에 도자전문 갤러리를 만드는 동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많은 작가들과의 조우가 있었을 것이고 한 켠의 작업실에서 여러 가지 기예들을 익혀가다가 지금에 이르러 조심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을 내 비추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그의 이번 개인전을 여유있는 마나님의 호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삶의 한 과정을 보다 능동적으로 살아가려는 확장된 의지의 결과로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2. 이번 개인전의 작품들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물레로 만든 그릇들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전제한다. 얼핏 보아서 그릇이 아닌데 그릇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도자가 가진 태생적 방법론 내지는 추상적 본질이 어느정도 깔려있음을 의미한다. 굳이 허머트 리드의 견해를 빌지 않더라도 도자는 본질적으로 대칭적 추상형이기 떄문에 그릇이냐 아니냐하는 무의미한 논의를 떠나 어떤 조형성을 견지하고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윤현경은 복잡한 형태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하기 보다는 간결한 포름을 통해 관람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누가 보아도 그의 작품들은 알의 모양이고 큰알, 작은 알, 붉은 알, 깨진 알, 찢어진 알 들리 하나씩 서있거나 누워있거나 모여있다. 표면에 나타난흔적과 색들은 차치하고 우선 보기에 알들이 잔뜩 있다는 사실만으로 관람자들은 난해한 감상의 벽을 쉽게 넘을 수 있다. 또한 전시주최측의 해석을 보면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더욱 빨라진다. “이번 개인전은 한마디로 “깨어나고 있는 알”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알이 우리에게 주는 일반적인 의미는 완전한 존재, 새로운 탄생이지만 윤현경은 그의 작품 속에서 더 속깊은 의미를 전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먼저, 작품 에 보여지는 알은 지금 막 깨어나고 있습니다. 알 속에 있던 완전한 존재가 불안정하기 이를 없는 이 세상에 신고를 하려는 순간입니다. 완전한 존재와 불완전한 세상의 만남, 그것 하나만으로도 윤현경의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줍니다. 그러한 존재에 대한 물음은 곧 나에게로 투사되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은 반성과 새로운 계획으로 연결될 지도 모릅니다. 또, 비록 똑같아 보이는 둥근 알이지만 그 깨어지는 모양은 모두 다른 것처럼, 각기 비슷한 알에서 태어나는 존재이지만 그들이 지닌 개성도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 이번 윤현경 작품의 특징입니다. 어쨌든 존재라는 것은 고귀하며,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그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알이 깨어지는 순간을 표현하면서도 그 존재를 선뜻 보여주지 않은 것 또한 작가 윤현경이 보여주는 작품에 대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난생신화의 숭고성을 일반적으로 전환하여 관람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윤현경의 알들에 대한 이면적 해석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갤러리의 해석대로 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의미에만 진척한다면 그의 작품에 대한 별도의 접근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알이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든 작가의 손에 의해 변형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완전한 알의 형태로 발언하려고 하기보다는 깨진 상태의 것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있는 해석적 용어 중의 하나가 “무작위의 작위”이다. 윤현경의 작품에서 그런 용어의 적용이 과연 가능할까? 한마디로 아니다. 알을 깨는 그의 행위는 아무리 봐도 작위적이다. 따라서 그의 알은 깨어짐이 불완전하다. 얼마만큼 고심을 하고 알을 깼는지는 모르나 깨지기 직전 또는 깨지는 상태를 표현한 균열들은 다분히 작위적이며 그래서 어설픈 느낌을 주는 부분도 적지 않다. 윤현경의 작품이 알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가진 통속적 기의에 따라 임의로 해석하기 보다는 내용과 동행하는 형식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칼 안드레의 조각 전개과정론에 대입시켜 “형체로서의 조각(조형)”이라고 한다면 작품의 세부 마무리는 더욱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한 알이라는 선입관을 제거하고 물레에 의해 만들어진 회전적 대칭형으로 본다면 깨어진 부분은 비정형적 입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도자기의 속성 즉 내외부 공간을 동시에 포용하는 조형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소위 그릇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술 더 떠 그 곳에 꽃이라도 꽂았으면 갤러리측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궤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3. 그러나 그 알들이 크기를 달리하여 다량으로 제시되면서 해석은 또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 미루어 짐작컨대 윤현경은 알모양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종국에는 “장으로서의 조각(조형)”에 해당하는 작품들에 주력하였을 것이다. 아니면 알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을 구도 있다고 보아진다. 경위야 어쨌든 공간속에 산재하는 알들은 받침대 위에 놓여진 알들이 안고 있는 구속력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펼쳐진 작품들은 한결같이 백색의 차가운 표면과 어두운 내면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경계에는 내면의 어둠이 흔적처럼 묻어있으며 그 내면은 무엇이 빠져나간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소멸된 모든 것들의 유체적 흔적으로 읽혀진다. 다시 말해 새로운 존재의 탄생 이후의 흔적으로 나타냈다기보다는 탄생이전에 소멸된 존재에 대한 제의적 표현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또한 각 개체로서의 알들은 크기를 달리하고 각도를 바꿈으로서 무한정으로 확장되고 강한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시장의 바닥에 설치되었을 때의 작품은 오히려 무미건조하다. 모래 위나 숲 속, 아스팔트 도로 등 장소의 상황에 때라 그 알들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며 주변의 보조적 산물들에 의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알들은 늘어 놓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알이 놓여지는 공간과의 협업에 의해서 장으로서의 조형 즉 합목적성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많아졌고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이 되었다고도 생각하지만 우리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메타포를 일방적으로 강요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윤현경의 알이라는 기호가 통속적이고 일반적인 기의에 의해 해석되어서는 안되며 앞서 말한 난생신화에서 즉발적으로 감지되는 숭고성 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아직도 읽을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우관호 (도예가, 홍익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