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然에서 日常으로 - 오천학의 作品世界

글/ 김숙경(미술평론가)

현대공예는 순수미술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순수미술과 조형미술이 지니는 개념과 한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썩 훌륭한 것이 못된다. 물론 1970년을 전후로 공예의 개념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도자공예의 기존관념인 물레성형이나 손작업을 통해 그릇을 만드는 일, 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답습의 일원으로 그릇을 만드는 기능공적인 일에서 일차적인 변화를 맞이한 것이 용기의 장식과 형태를 파괴하고 변형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자유로운 조형세계가 마련되지 못했고 그릇이라는 고정관념을 떠나지 못한 상태이다. 결국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조형성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자 도자조형이라는, 새로운 활력을 얻어 비로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자공예에 자유로운 구상과 표현이 이루어졌는데, 회화적인 접근과 조각으로의 접근이 이를 증명해준다, 바로 이러한 양상 때문에 순수미술의 경향을 띠고 있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이유만으로 도자공예가 순수미술적이라고 논하기에는 모순점이 많다. 특히 현대예술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종합하고 있어 조형미술과 순수미술과의 구분은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본질은 모두 다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표현 외에 공예의 전통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양상도 있어 결과적으로 도자공예의 풍부함을 맛볼 수 있게 되었는데, 굳이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가는 독자성을 개척하여 작품에 부여하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당면과제이지 어떤 경향에 속하는 가는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점에서 오천학은 자신의 세계를 잘 구축해 온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과 일상에 있다. 그다지 커다랗지 않은 것에서 시작되며 방대한 것을 바라지 않는 자세는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재유색이 대변해준다. 이 색깔은 토속적인 것을 바탕으로 화사함보다는 소박함을 보여주는데, 특히 흙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색을 드문드문 드러나게 한 것은 이 특징을 더해주고 있다.

조형감각 역시 자연에서 포착된 요소들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데, 나무와 돌 등이 그의 작품 안에 자주 출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것은 억지로 무언가 꾸미고 만들겠다는 의지보다 일상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여 형상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구로 해석된다. 어쨌든 오천학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에서 시작하여 어렵고 머리 아픈 과제를 결과물로 남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잊고 사는 현대인에게 자연의 바람을 제공하는 신선함이 있다.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세가지의 과정으로 구분되는데, 사실적인 표현에서 직선적인 표현으로, 여기에서 다시 곡선적인 표현으로의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독창적인 선의 창출을 위한 노력으로 평가되는데, 결국 자연을 주장하고 자연에 귀착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근래에 들어와서 많이 나타나는 곡면적인 형상은 전통 도자기의 형상에서 얻어진 곡선이 모여서 다시 분리되거나 결합하여 재창조되는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써 이것의 근본은 전통의 재현에 있다. 그는 전통의 계승을 작가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하며 형태, 색채, 문양의 단순한 도입은 단순히 소극적인 재현에 그치는 것이지 건강한 전통문화의 탐구자세가 아니라고 한다. 즉, 전통 속에서 각자의 맥락을 찾아내어 조형화시킴으로써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라야 진정한 문화계승이라고 주장한다. 이 전통성의 문제는 그가 국제무대를 체험하면서 더욱 절감하게 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선은 단순히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오천학의 곡선을 다른 측면으로 해석하면 인류문명의 발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즉, 원시문명과 함께 발생된 용기문화(즐문토기 또는 무문토기)에 나타나는 원초적인 곡선의 표현이다. 세계인류문화가 발전되며 함께 해 온 용기문화는 나름대로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맥이 이어져 내려왔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상감청자와 백자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동안 수없이 다듬어진 결과인 것이다. 서양의 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성격은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근본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은 곡선적인 형상으로, 이것이 반복되며 변형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이 형태는 현재와 과거를 포함하고 있는 무한 대의 세계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유에서 오천학은 긴 세월이 다듬어 준 자갈의 선을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돌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작품 속에 구상해 넣음으로써 장식이나 인공적인 테크닉을 거부하며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둥근 입체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은 변형된 주름으로 나타나기도 하여 조형성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훌륭한 조형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시도는 무궁무진하게 행해지는데 예를 들면 나무를 서 있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눕혀보거나 절단시키는 작업이 그것이다. 작품『力』은 완전히 분리된 구조로 관객이 움직여 새로운 구성을 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것은 고정된 작품의 개념이 아닌 융통성을 띤 작품으로 관객이 자율적으로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어떤 틀에 꽉 짜여져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창의성을 유발시키는 작품으로 무한한 세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풍부함이다.

작품『關係』는 조각의 분위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도자조형의 특징인 회화적인 요소와 조각적인 요소의 양 측면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또 다시 부분적으로 회전되거나 절단되어 나타난다. 두툼한 판막을 축으로 서로 대칭과 대비와 조화로 재구성되고 여기에 어떤 강조점을 두기 위해 액센트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실험은 회화의 평면성과 조각의 공간성을 종합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천학의 예술관이 제대로 반영된 것은 '자연시리즈'이다. 동글동글하게 이어진 선은 커다란 원형을 이루고 그 안에 풀포기(또는 새싹)와 나뭇가지로 이어져 원형의 세계가 형성된다. 이것은 마치 불교의 윤회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새롭게 나타나고 성장하여 활동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 다시 탄생으로 이어지는 우주를 담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원형 밖으로는 아무 것도 제시되지 않았다. 원형 안은 인간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원형 밖은 신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 어쩐지 원형 밖으로는 감히 어떤 시도도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진다. 반면 원형 안은 인간의 굴레를 모든 사람들에게 낙인 찍는 도장처럼 이해된다. 인간 개개인이 짊어져야만 하는 운명을 등에 지고서 굽이굽이 주름진 곡선을 따라가면 삶의 에피소드가 펼쳐지고, 이 모든 것은 자국을 남기든 남기지 않든 소멸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우리가 늘 부대끼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식 저편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오천학은 자연의 말을 들려주고 자연의 섭리를 깨우쳐 주려는 것인지 모른다.

도자기는 무엇인가를 담기 위해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오로지 물체를 담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대의 도자는 사상과 철학까지 담을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오천학의 공예는 특별한 이미를 담고 있다. 즉 그가 담고자 하는 자연세계는 조그만 틈바구니조차 없는 현대인에게 흐린 하늘에 문득 보이는 작은 조각의 푸른 하늘과 같다. 일상 생활에서 모든 것을 무심하게 떠내려 보내지 않음으로써 작품 속에서 당연히 일상의 이야기가 꽃을 피우게 되고, 그래서 장식주의적인 요소와 감각주의적인 요소가 최대한 배제된 진솔한 모습 그 자체로 환원된다. 결과적으로 오천학의 도자는 자연에서 시작되어 일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기교스럽지 않고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를 펼쳐 보이는 진실성을 현대인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自然 Ⅶ(w:38cm, d:12cm, h:53cm)

自然 Ⅱ(w:56cm, d:13m, h:35cm)

自然 Ⅳ(w:55cm, d:13m, h:41cm)

木 Ⅴ(w:41cm, d:23cm, h:55cm)

關係 Ⅰ(w:54cm, d:18m, h:48cm)

結合 90-Ⅱ(w:53cm, d:22cm, h:38cm)

力-Ⅱ(w:79cm, d:33cm, h:32.5cm)

木 Ⅳ(w:75cm, d:16cm, h:27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