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 순수성과 소박함

도예는 그릇으로서의 기능과, 기능을 떠난 순수한 조형의 창조로 구분되어지고 있다.
전자는 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기능과 미라는 두 가지 측면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제한이 있다. 반면 후자는 비록 기능적인 도구에서 변주되었긴 하나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 상형의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 두개의 방법은 어느 것이 우위일 수가 없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그러한 바탕에서 각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주변의 도예의 현황은, 전자를 까닭없이 폄하시키는 반면, 후자에 대한 맹목적인 편향을 보이는 다소 기형적인 변화를 들어내 보이고 있다. 정확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나, 회화에서의 사실적 경향이나 구상적 방법을 낡은 양식으로 치부하고 추상적인 방법만을 산호하는 풍조와 유사하다. 사실 내지 구상의 방법은 그것대로의 길이 있고 추상은 추상대로의 길이 있어, 이 둘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일 뿐 아니라 미술계의 불균형을 자초하는 그릇된 인식 체계임을 보아오고 있는 터이다. 오늘날 도예기 이런 전철을 밟고 있지 않나 하는 기우를 떨쳐버릴 수 없게 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도예가 일수록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외면한 순수조형으로만 쏠리고 있는 경향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도자조각이 그릇의 자연스러운 변주로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추상적 형식을 도입하고 있는 것은 순수조형의 방법 자체를 근원적으로 회의하게 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자조각은 어디까지나 도자에서 발전된 조각적 기법이지 조각에서 도예로 오는 방법은 아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박종식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오늘의 도자조각이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가의 방법론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우선 작품 자체의 평가보다 그의 뚜렷한 방향감각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의 기형은 도예가 지니는 본래적 상형에서 출발하면서 점차적으로 기형에 가해졌던 제약들을 불식해가면서 기형 자체가 자율적인 상형으로 태어나기를 시도하고 있는 편이다. 아직도 그릇으로서의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있지는 않으나 벌써 기능성은 사라진 단계다. 말하자면 그릇의 형태에서 나왔지만 이미 그릇은 아닌, 순수형태에 도달되어 있다. 처음부터 순수형태로 진입한 경우와는 달리 변모의 과정을 역력히 읽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형상의 변주다.
또 한편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불과 흙이 만드는 현상학으로서의 도자 특유의 창조적 비밀을 실감있게 전해주고 있는 느낌을 준다. 빚어진 흙의 촉감, 불의 작용에서 일어난 균열과 기표, 열에 의해 생성된 질감과 색소 등, 기형의 조성에서부터 불을 거쳐 결정되기까지의 창조의 점진적 과정이 흥미롭게 추체험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도예의 생성과정과 창조적 의미를 그만큼 자신있게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풍겨주는 전체의 인상은 고대의 제의(祭儀)를 위한 기물과 같은 약간은 투박하면서도 주술(呪術的)인 신비성이다. 원시적인 순수성과 소박함을 지니고 있는 인상이다.

吳 光 洙


(w:65cm, d:18cm, h:60cm)

(w:65cm, d:12cm, h:55cm)

(w:42cm, d:15cm, h:38cm)

(w:40cm, d:13cm, h:35cm)

(w:45cm, h:36cm)

(w:42cm, d:14cm, h:4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