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경상의 흙의 여행 -

조형행위는 생명의 본능에서 시원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복잡한 원소들이 적절한 조화로 완성된 생명체가 알을 깨고 세상에 모습을 들어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흙을 매체로 표현된 도자조형은 불을 에너지로 하여 비로소 생명을 얻어 그 의미를 우리 앞에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자문화는 실로 오랜 역사 속에서 성격과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 생활 공간과 문화를 풍요롭게 전개한 실존인 것이다.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 등은 우리의 창의적인 예지의 능력을 맘껏 발휘한 흔적이었으며 독(항아리)은 우리의 넉넉하고 여유있는 음식문화를 창출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하였음을 물론 마당 한 곳을 조형공간으로 장식한 훌륭한 조형물로써의 역할을 하여 왔다.
유경상은 이러한 독을 이룬 흙을 오늘에 재표현 하려는 의지를 이곳에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행위는 마치 흙과 불로 이루어지기 이전의 인간적 조형 본능과 표현의 내면을 탐사하는 여행자로써의 길을 떠나는 모습인 것이다.
이제 우리 주위에서 서서히 퇴역하는 독문화의 현실에 새로운 생명을 넣고자 그의 작품은 마치 독을 대변하여 큰 일을 여기저기 벌리며 흙의 내면을 낱낱이 강변하고 있는 모습으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작품전을 통하여 흙의 여행을 떠난 그가 어떠한 모습으로써의 흙의 실체, 우리 생명의 근원인 흙과 불의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큰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1991. 11. 도예가 한 봉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