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인 젊은 시각
- 이혜경의 도예전에 부쳐.... -

임 두 빈 ( 미술평론가ㆍ단국대 교수)

젊은 작가 이혜경의 도예전에 관한 글을 부탁받고 처음에 필자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이혜경의 작품세계 전반을 아직 살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히 필자의 뇌리에 우리 현대 도예의 후진성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필자는 「서울 현대 도예 비엔날레」행사의 하나였던 강연에서 우리 도예의 문제점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다. 도예계의 현황을 살펴보면서 실망과 답답함을 느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조금이라도 도예계의 발전에 보탬을 주려는 생각에서 행한 강연이었다. 그러나 강연이 끝난 뒤 필자는 우리 도예의 후진성을 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연의 호응은 젊은 작가들에게서만 나왔었고 (그 중 몇 분은 매우 열띤 감정으로 동감을 표하기도 했다) 반성해야 할 기성 도예가들은 오히려 자기변명과 어리석은 행태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도예계의 수준에 대한 필자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혜경의 작품에 대한 글을 부탁받았던 것이다.
필자는 일단 작품들을 보고 글을 쓸 것인가 안 쓸 것인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혜경의 작품들은 신선한 데가 있었다. 구태의연하고 낡은 기성 도예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그의 독자적 정신에 따라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최근 작품들에서 그녀는 단순한 조형적 형식미를 추구하는 경향에서 탈피하여, 구조적인 아름다움 이전에 보다 의미있는 정신성을 부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도자기라고 하는 통상적인 기형 위에 인체의 형상을 도입시켜 작업하고 있는 최근의 경향이 그것인데, 기형 전체가 특정한 분위기의 인물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는 작은 장식물처럼 도자기의 일부분에 부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구도자와 같은 형태를 연상하게 하는 도자기가 있는가 하면, 한복의 여인이 경건히 기도하고 있는 듯한 모양의 도자기, 또는 어딘가 해학미를 느끼게 하는 형상의 도자기 등, 인체의 형상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차용하여 변형하고 재구성해서 만든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인체의 형상과 도자기와의 결합은 그녀의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조화를 발하면서 도자기에 조용한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한 생동감 속에는 삶과 세계에 대한 작은 상징성도 함께 깃들어 있는데, 이 상징성으로 인하여 그녀의 도자기는 단순한 도자기의 용도나 심미적 차원의 형식적 시각을 넘어 보다 의미있는 사유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아직 그러한 상징의 힘이 그렇게 분명하게 감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상징의 힘이 감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혜경 같은 젊은 작가가 도예계에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혜경 외에도 소수의 젊은 작가들이 기성 도예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자 애쓰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들에 의해서 앞으로 우리 도예는 참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도예정신의 외로운 노력에 격려를 보내며, 역사가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이혜경의 앞날에 무한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1991. 10. 22 안서호수에서....



人-行(w:35cm, d:35cm, h:80cm)

옹기할배(w:20cm, d:20cm, h:75cm)

제가 믿나이다(w:20cm, d:20cm, h:75cm)

작은 병人-行(w:20cm, d:50cm, h:30cm)

연화탑형土物-깨우침의 자리(w:30cm, d:30cm, h:40cm)

연화탑형土物-깨우침의 소리(w:45cm, d:25cm, h:65cm)

깨침(w:45cm, d:25cm, h:65cm)

연화탑형병-깨달음의 의지(w:25cm, d:25cm, h:53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