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생명력」연작을 중심으로 한 조형적 변형
-신광석의 도자 예술세계-

Ⅰ.
'80년대 초반 신광석의 도자예술에 나타난 조형적 특성은 사각의 기하학적 기형 속에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화시킨 단순한 형태와 모노크롬의 중간색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그의 작품제목은 「자연」을 바탕으로 「구조」, 「변형」, 「얼굴」, 「산」,「우주」, 「만월」 등의 부제를 붙인다. 기하학적 추상형태의 요소를 바탕으로 조형적 탐색이 이루어진 그이 판작업 도자는 순수 형태의 절대적 미(美)를 추구하는 경향이다. 동시에 이 같은 새로운 기법의 도예작업은 자연 이미지의 독특한 구조적 추상형태 모색과 함께 한국 현대도예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자연 이미지를 담고 있는 개성적 형태의 창조이다. 과감한 형태의 외적 변화는 전형적인 도자기의 곡선과 원형에서 탈피, 직선적인 면의 표현적 효과와 사각의 완벽한 추상적 구조에서 나타난다. 전부터 다루어왔던 원형의 물레성형에서 벗어나 판작업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판작업이라는 기법의 실험으로 그는 인습적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예가의 한정된 인식을 넓혀 주었으며 사각의 기형을 자유롭게 펼쳐 보여주면서 기하학적이며 직선적인 구조의 차갑고 엄격한 느낌을 강조하는 형태 창조로 현대도예의 새로운 흐름을 유도하였다.
「자연-태양」(1975)에서 시작된 태양의 원형 이미지 작업 후 「자연-구조」(1983)와 「자연-변형」(1983)작업은 가장 단순한 평면적 면과 선(線)적 구성 요소로 구축된 도자이다. 추상조각가들이 인체가 갖는 볼륨감의 부분들을 추상화하여 조형적덩어리를 만들었다면 그는 자연의 사물에서 이미지를 차용하고 극대화 내지는 극소화한 도자를 만든다. 단순하면서 수직적 형태의 구조와 변형은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갖춘다. 자연 그대로의 형상에 머물지 않고 자연의 유사성을 인간의 의지와 감각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려는 힘은 창조적 조형성의 탐구 결과이다.
신광석의 초기작업에서 보여지는 자연의 이미지 탐구 작업은 예술철학자 르네 위그의 말대로 인간은 자연에 의해서 주어진 암시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노력 끝에 자신의 분신을 창조해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단 자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은 초기뿐만 아니라 후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성을 갖는 것을 보며 초기에는 그 구체적 형상이 엄격한 구조의 틀에 갇혀 순수한 추상적 형태의 단순미에 치중한 느낌을 준다.
직사각형의 단순한 도자형태에서 부분적으로 삽입된 삼각형 면과 톱니처럼 파여진 작은 면들은 단조로운 구조의 틀에 많은 이미지의 변화를 준다. 태양이나 달, 산을 비롯 얼굴의 형상까지 나타난 다양한 자연의 이미지는 직선적인 면을 기본으로 하여 차가운 추상을 추구하였던 모더니스트 화가들과 같은 공통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캔버스나 청동, 대리석의 질감과 달리 유약과 소성의 과정을 거친 「자연-변형」의 표면은 그 차가움을 억누르고 뜨거움과 중간 입장을 취한다.
차가운 미니멀리스트의 오브제나 캔버스의 모노크롬 표면과 흡사한 초기 직사각 구조의 표면은 변형된 자연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면서 도자가 갖는 차분하고 정적인 세계를 유지한다. 다듬어지고 형상을 드러내는 조각가의 볼륨감과 달리 그가 만들어내는 속(in)과 겉(out)의 표면은 이중적 공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볼륨으로 동적일 수 없는 정적인 감각에 머문다. 이 같은 표면의 촉시적(觸視的) 느낌과 자연의 이미지 형상에서 주는 예술적 깊이가 초기작업의 조형적 특성이다.

Ⅱ.
'85년 이후 「자연」의 연작은 좀더 구체적인 형상 이미지 작업으로 잠시 그릇의 틀을 벗어나 산이나 별, 달 등의 형상을 변형시키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조각적 볼륨과 회화적 표현의 흙작업이다. 대지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듯한 덩어리는 축소된 산의 형상이며 달과 별, 나무의 흔적들이 자연스럽게 표면에 릴리프로 나타난다. 마치 산수화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듯한 이러한 연작들은 서정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수직적 타원형의 곡선 면과 점, 선의 볼륨감은 안정된 느낌이다. 작가는 이러한 그의 조형적 변형 작업은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작가의 의지로 생각되며, '80년대 중반 이후의 다양한 변모를 예고하고 있다.
'86년 「자연-생명력」의 연작들은 다시 기형의 복원과 흙의 원초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림 액자와 같은 사각의 틀에 작은 항아리를 붙이거나 반원형의 둥근 받침대 위에 청자 병을 올려놓는 작업이다.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놓여진 이러한 작업은 또 다른 도자의 상황을 도자의 상황을 말한다. 즉 받침대가 있는 조각이나 회화처럼 걸려있는 사각 틀 속에 항아리 작업은 장식적 공간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황을 연결시키는 장식적 공간은 일종의 변형된 유형화이며 도자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조형형태의 탐구이다.
새로운 조형적 형태에 관한 실험과 집착은 지속성을 갖는다. '87년 시도된 작업은 '86년과 같은 유형의 연작이나 기형이 더욱 중심이 되면서 기형 속과 위에 추상적 형과 색채가 등장한다. 얕고 둥근 대접 속에 원형의 기둥과 좌우 대칭이 되는 부채꼴 모양의 연작은 추상표현의 소박한 조형적 표현이다. 자연스럽게 비대칭화된 형태와 순수 색면의 등장은 입체와 평면의 복합된 도자형태를 만든다. 이는 차가운 감각과 뜨거운 감성의 혼합처럼 순수한 추상의 조형세계로 우리의 시각을 끌어들인다.
'88년 그이 조형적 변화는 「자연-생명력」(1988)에서 보듯 기형의 변형이 아닌 수직적 구성의 추상형태에서 찾아본다. 짙은 갈색표면과 네 개의 면과 가장자리에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를 살리는 사각기둥은 초기 기하학적 추상 형태 변형작업과 유사하다. 때로 기형에서 탈피하는 그의 자유로운 조형적 실험에서 오늘날 도예의 시대적 변화를 느끼게 한다.

Ⅲ.
'90년대 이후 「자연-생명력」의 연작은 또 다른 조형적 변화를 가져온다. 첫째는 「제기(祭器)」의 변형으로 독창적 형태의 창조이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제기」의 조형적 형태를 탐구하기 앞서 제의(祭儀)의 의미를 찾는다. 이는 역동적 생명체 가운데 하나인 인간(나)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의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원시적 제의는 자연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인간의 왜소함이 적나라하게 들어 나는 형식으로 오늘날의 종교의식과 같다고 본다.
이때 만들어지는 제기는 천(死者·魂)과 지(生者)사이의 중개물이 도며, 하늘의 신령과 땅위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데 사용되는 도구이다. 제기의 변형이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은 단순한 형태의 재생산이 아닌 천지인(天·地·人)의 연구와 마음 한가운데서 우러나오는 제사(祭祀)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생명력」의 주제를 선명하게 나타낸다.
「제기」의 조형적 특성은 가분수형의 제기 형태를 바탕으로 대칭적 선의 형태나 곡선의 면들이 결합된 완벽한 구조에서 나타난다. 가느다란 하단부의 면들이 원통에서 뻗어 나온 상단부의 곡선형은 화려하게 꽃핀 화분과 같이 풍요로운 느낌이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표면의 질감과 짙은 청색의 유약처리로 그 강렬함을 더해주고 있다. 수직적 불안함은 하늘을 향한 인간의 의지로 보이고 허약함이나 불안감은 완벽한 구조적 형태로 덮어버린다.
「제기」의 또 다른 모습은 타원형의 커다란 받침대가 있는 원형 도자기이다. 이러한 연작은 독립된 「제기」와 달리 두 개의 구조적 형식을 보여준다. 즉 수평적 구조와 수직적 구조로 나타난「제기」는 받침대의 역할을 생각하게 하는 밑 부분이 강조되어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청녹색의 유약이 매끄러운 표면을 뒤덮으면서 구조적 안정감은 깨지고 불안한 심리상태를 유발시킨다. 기하학적 형태의 순수한 조형미는 독립된 「제기」연작보다 미약한 느낌이다. 수평, 수직의 받침대 구조를 가진 이 같은 「제기」연작은 감상자에게 조형적 미에 대한 시각적 효과보다 심리적 효과를 더욱더 생각하게 한다.
90'년대 초반 「자연-생명력」의 연작 중 또 하나의 조형적 실험은 네가티브와 포지티브한 평면구성의 판작업이다. 여기서 작가는 물레성형을 응용하지 않는 판작업 기법으로 「자연-음양」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의 생명력을 추상적으로 형상화시킨 느낌이며, 절대를 향한 순수 조형성의 탐구이다. 이 같은 추상적 형태는 비록 난해하고 구체적인 자연의 이미지와 멀어지나 단순화시킨 불규칙한 면들의 겹침이 음양의 의미와 직결되는 구조적 측면을 갖는다.
오목과 볼록한 면들의 부조형식은 분명 자유스러운 볼륨감의 조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부조로 구성된 면들에서 느껴지는 자유스러움은 한층 더 경쾌한 움직임의 인상을 낳는다. 좌우의 수평적 안정감과 상하의 흐름은 평면을 바탕으로 한다. 물레성형에서 나온 부드러운 곡면과 달리 이들은 한층 더 회화적 성격을 갖고 있어 중량감에서 벗어난다. 정사각형 판을 수직의 직사각형 이나 상하좌우의 정사각형으로 재구성한 「자연-음양」의 판작업은 현대 도예의 또 다른 실험적 모색이다.

Ⅳ.
이상과 같은 그의 「자연-생명력」 연작 과정은 생명감의 시각적 표출로 사실적 형상의 이미지 재현과 기하학적 추상요소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순수 조형의 미적 접근이다. 연작들에 나타난 단순한 직선이나 곡선의 추상적 볼륨감은 작가의 사변적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다. 흙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자연과 자신을 융합시키려는 노력은 우연성이 아닌 의도된 완벽한 구조의 형태 속에 잘 나타난다.
'80년대 이후 꾸준한 현대도예의 새로운 기법과 조형적 특성을 실험하였던 신광석의 예술세계는 여러 가지 도자의 변형된 모습 속에서 초지일관 자연과 인간 탐구를 근원으로 한다. "인간에게 충실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물으면서 도예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돌아가 자연의 신비로운 생명감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그는 현대도예사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 정연한 이론의 정립으로 교육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편견 없는 도예의 현대적 흐름에 올바른 방향성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오랜 경험과 학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외래문화의 수용론과 우리 전통 문화의 조화론은 이제 보편적 이론으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공감을 준다.
그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신광석의 작업은 흙을 다루는 기본적인 지식이나 기술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지속하며 다양한 이미지나 추상적 형태의 실험과 시유, 소성 등 어느 한가지도 소흘히 하지 않는 도자예술 세계가 형성된다. 이는 기법과 조형성의 전통과 현대의 만남으로 흙을 통한 이 시대의 역동적 생명력을 조형화 하려는 개인의 의지로 주목된다. 그와의 대담 중 자신은 「자연-생명력」의 명확한 주제의식 표출과 동시에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갖고 또 다른 창조적 현대도예의 모색을 기대해 본다.

유 재 길 (미술평론가)


자연-생명력(w:48cm, d:46cm, h:78cm)

자연-생명력(w:48cm, d:48cm, h:52cm)

자연-생명력(w:50cm, d:46cm, h:78cm)

자연-생명력(w:50cm, d:46cm, h:78cm)

자연-생명력(w:48cm, d:48cm, h:53cm)

자연-생명력(w:78cm, d:50cm, h:37cm)

자연-생명력(w:48cm, d:48cm, h:54cm)

자연-음양(w:83cm, d:48cm, h:230cm)

자연-음양(w:72cm, d:18cm, h:72cm)

자연-생명력(w:48cm, d:48cm, h:4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