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반복

< 김 숙 경 >

잊혀지는 것과 잊혀지지 않는 것의 차이는 간단하다. 그것은 무관심과 관심의 차이이다.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습득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이제는 거대해진 사회가 모두를 무감각의 인간으로 길들인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른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을 구경하기에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것이다. 그건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와 뉴스의 주인공이 바로 '나'이기를 꿈꾼다. 그건 성공을 증명하는 일이니까 그렇다. 똑같은 목표를 앞세우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달리기에서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일등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얼마만큼의 모순인지 우리는 벌써부터 알고 있다.

서로 다른 모습의 날지 않는 새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흩어질 수 없는 것, 비좁은 공간을 비비적거리면서 불편함을 참아야만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훨훨 날 수 있는 새는 창공을 향해 날개를 펴지 않는다. 새는 지상 위에 미련이 더많다. 그래서 하늘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가끔씩 보이는 불빛은 유일한 이상이자 안식처이다. 불빛이 너무 강해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목표 의식을 뚜렷하게 만드는 불빛은 아무리 강해도 이들에게 장애물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로 불빛이 희미해질 때 방향감각을 잃고 좌절할 테니까 그렇다. 목표에 가려져 자신의 날개를 끝까지 펴 볼 수 없는 새들이 바로 내 모습으로 앉아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바라볼 겨를이 없이 달리기에 열중하는 새를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는 말이다.

성취감은 흥분제와 같다. 그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만족은 아주 많은 담보를 요구한다. 이것저것 다가져가고도 그만한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도박을 하듯이 긴장 속에서 하루 하루를 투자한다. 언제나 오십 퍼센트의 성공률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잇다. 일상은 그렇게 채워진다.
빨래판과 접시가 놓여 있는 광경은 그런 감정을 부추긴다. 우선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빨래판은 세월의 허무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제 생소한 물건으로 바라보게 된 빨래판은 세월의 허무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제 생소한 물건으로 바라보게 된 빨래판에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담겨져 있다. 빨래판이라는 대상이 갑작스럽게 옛 물건이 되버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주변을 시위하고 나선다. 접시는 처음과 끝이 똑같은 원으로 늘 반복되는 생활을 읽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으로써 삶의 파편으로 와 닿는다. 이렇게 두 사물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우리의 일상을 설명한다. 변화와 반복이다.

일상 속에서 회상은 변주곡이다. 이 변주곡은 경쾌한 리듬과 빠른 속도의 왈츠 곡이 아니다. 반대로 우울한 단조의 저음일거라는 예감이 든다. 먹빛이 강하게 돋보이는 항아리가 묘한 향수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흥했던 한 시대는 땅 속에 갇혔다. 풍요로웠던 지난 시간은 희미한 흔적과 기억을 남길 뿐이다. 멀어진 과거는 아쉬움과 함께 더 멀리 느껴진다. 바쁜 만큼 그 강도는 더하다.

'망각의 장- 반역'은 싸움터를 말한다. 아우성대는 소리, 몰려다니는 소리, 선동의 소리 등 모두 다 이 안에 있다. 이것은 서로 뒤얽혀 침묵으로 변환된다. 이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혼란을 예고하는 전주처럼, 침묵은 불안을 함께 몰고 온다. 반역자는 이미 처형된 후이다. 소리 없는 모의가 시작된다. 그래서 다시 혼란의 경계 경보가 울린다. 개인은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중요한 건 집단과 규율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라는 몸체를 볼 수 있다. 작아진 '나'와 비대해진 '사회'의 반비례이다. 이 방정식의 해답은 정확하지 않다.

치밀한 구상과 짜임새, 계획된 움직임, 지정된 자리.... 최성재의 작업에는 헐렁헐렁한 구석이 없다. 우연의 법칙은 적용될 수 없다. 각각의 자리는 퍼즐게임을 금방 마친 듯하다. 더도 덜도 아닌 똑 들어맞게 구상된 대상들은 한치의 불필요한 요소도 없다. 극한 상황의 분위기가 전개된 대상들은 한치의 불필요한 요소도 없다. 극한 상황의 분위기가 전개된다. 그건 공상 영화나 추리 소설에 등장되는 위기 상황이 아니다. 거대한 집단과 제도의 굴레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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