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에 대한 반기

미술평론가 / 김 숙 경

'인간적'이란 어떤 것일까? 아주 흔히 쓰는 말, 그렇지만 아주 멀리 느껴지는 말이 바로 '인간적'이란 짤막한 단어이다. 비인간적이라는 반대의 감정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미 인간적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얽혀진 관계와 압박, 왜곡된 진실, 부정적인 시각 등은 우리 사회의 한 부분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사회적 노동은 본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전체적인 것이지만, 또 풍부한 삶을 목적으로 하지만, 모든 것이 거대한 힘으로 변화되어 인간의 생명, 인간의 가치, 인간의 창조력을 소외기키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제 노동과 인간의 관계에서 창조성이란 생각할 기억조차 잃어버렸다. 노동에서 비롯된 생산은 곧 바로 금전과 연결되고, 이것은 다시 소비를 향한 등식을 성립시킨다. 그래서 금전은 인간 외부에 서서 인간을 지배하고 사람과 사람을 분열시키는 마력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인간적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려 놓는 이유는 거대한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아주 작아진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몸짓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결코 미지의 애매모호함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를 올바로 인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자기의식으로 반성함과 동시에, 자기를 타인의 축에 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다양한 사회 계층 속에서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전통에 의존해 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 자기를 올바로 알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수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알고 있다고 해서 자기가 무엇인가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단지 인간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최소의 움직임일 뿐이다.

그런 움직임, 인간에게 최소 가치라도 증발되지 않도록 지키고 싶은 마음이 오의석의 테라코타이다. 작품「침묵」에 나타난 고개 숙인 사람들의 무리는 엄숙한 장례식에 초대받은 손님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그저 신문에서 무심코 흘려버리는 교통사고 소식처럼 느껴지는 친밀하지 않은 관계의 누구이다. 절박한 슬픔이나 극에 달한 감정은 없다. 이들에게 부여받은 일은 이런저런 행사에 들러리를 서주는 일 외에 특별히 부과된 것이 없다. 그래서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고개 숙임이 여기에 있다. 끝까지 정해진대로 수동적인 움직임을 잘 이행해야만 하는 의무가 이들을 무겁게 짓누른다. 각별한 표정은 불필요한 장애물이다. 오히려 지원진 표정, 남들과 엇비슷해 보이는 표정이 이들에게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발휘한다. 들러리라는 임무에 걸맞는 제스처와 표정이 이들을 통해서 유출된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 관하여 무감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간직한 우울의 정도는 어떻게 위로하여야 할지 모를 정도의 침체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이 우울이 타인의 어떤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자신의 초라해진 모습, 힘없는 모습, 끌려가는 모습 등을 보며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다. 감정은 격한 동요도 없고, 폭발적이지 않다. 뜸을 들이듯 미적지근하게 조금씩 진행된다. 무거운 저기압의 공기가 느릿하게 움직여 장마비를 재빨리 쏟아 놓지 못하는 끈끈함이 이 안에 배어 있다. 침묵 속에 있는 사람들은 시원한 장마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원하게 씻어주고, 음울해진 기분을 치유해 줄 무엇을 기다리는 사람, 고개를 들어 청명한 하늘을 보고 싶은 사람,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들임을 오의석은 잘 알고 있다.

현대는 냉정한 영리주의 물결에 시달리면서, 그것을 뚫고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성격의 유형을 요구한다. 그리고 흔히 엘리트라고 하는 인간기계를 만들어 내기에 급하다. 엘리트란 상품화, 획일화, 기계화에 어느 정도의 면역성을 주는 예방주사의 역할은 될지 몰라도, 인간성 상실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복합적인 사회 구조와 배후에 숨어 있는 특수한 목적에 의한 극히 제한된 현상이라고 반박할지라도,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합리화 시킨다해도, 사람들은 기계화될 수 밖에 없음을 스스로를 통해 깨닫는다. 오의석의 테라코타는 그런 인간상 창조를 요구하는 현대에 대한 반발이다.

남자, 여인, 유혹, 목숨, 평화 등은 오의석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어 넣는 기독교 정신에서 오는 것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창세기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착각을 일을 킬 정도로 그의 주제는 일괄적이다 뱀에게 유혹당하는 여인, 갈등 속의 남자, 살인 행위와 칼, 평화를 갈망하는 기도하는 손, 멍에를 걸머진 운명과 같은 목숨 등은 창세기의 서사시로 이해된다.

성서를 토대로 전개되는 인간성 회복이라는 오의석의 주장은 흙이라는 자연물을 상대로 빚어진 인간 형상의 원초적인 모습을 조명하면서 시작된다. 어떤 것도 가미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은 모양새는 태고를 그리워하는 향수와 연결된다. 아주 먼 옛날 흔적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야릇함이 흙 속에 건재해 있기에 그렇다. 테라코타의 붉은 빛깔은 가난했던 우리들의 땅,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우리들의 역사, 이제는 추억과 향수로 다듬어진 아득한 과거가 불 속에서 막 익혀져 나온 빛깔이다. 완성된 과거는 매끈하든 균열이 갔든, 정확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어떻게 교정할 수 없는 우리의 흔적이다. 지울 수도, 감출 수도 없는 삶의 흔적이다.

가공되지 않는 조형구조는 세련된 현대성과 거리를 둔다. 말초신경을 건드릴 만한 감각은 필요하지 않다. 감각적인 것은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된다. 첨단의 어떤 발명도 여기에서는 화제가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주체의식이다. 「흙·사람·불-잠」은 마치 금방 발굴한 무덤의 일부 같다. 세월이라는 연장으로 알맞게 닳은 듯한 표면과 똑바로 누워 있는 사람 형상은 특별한 인상을 선사한다. 누워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섬뜩함이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구절을 상기시키는 형상은 인간 운명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짚어 보게 한다. 진리를 향한 막연한 몸짓이라도 해야만 마음이 놓일 것만 같은 우리의 측은한 영상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오의석의 테라코타가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회의적인 감상에 젖어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모든 운명을 막연한 불안 속에 집어넣고, 풀 수 없는 모호함을 무기로 삼고 있는 현대성에 대한 반기이다.



흙ㆍ사람ㆍ불-人子(w:40cm, d:25cm, h:50cm)
흙ㆍ사람ㆍ불-목숨(w:35cm, d:28cm, h:55cm)
흙ㆍ사람ㆍ불-사슬(w:38cm, d:25cm, h:55cm)
흙ㆍ사람ㆍ불-잠(w:50cm, d:35cm, h:140cm)
흙ㆍ사람ㆍ불(w:100cm, d:25cm, h:70cm)
흙ㆍ사람ㆍ불-잠(w:155cm, d:40cm, h:15cm)
흙ㆍ사람ㆍ불-1992(w:35cm, d:30cm, h:80cm)
흙ㆍ사람ㆍ불-女人(w:30cm, d:30cm, h:70cm)
흙ㆍ사람ㆍ불(w:150cm, d:15cm, h:15cm)
흙ㆍ사람ㆍ불-유혹(w:35xm, d:28cm, h:6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