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통한 삶의 생성과정 표현"
『기둥(Column)』과 『가족(Family)』연작을 중심으로-
이윤경의 도조작품은 흙을 통한 삶의 생성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器)에서 출발한 그의 흙작업은 소성과정과 유약의 특수처리 기법으로 표현의 과장됨이 없는 순수 조형미 탐색이 이루어진다. 삶의 진솔한 조형적 표현, 이를 위해 많은 오늘날의 작가들은 새로운 매체와 기법을 연구한다. 10년 가까이 미국서 도조작업을 하고 귀국한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에게 결코 낯선 느낌을 주고 있지 않다. 이는 다양화된 현 시대의 조형적 모색 곳에서 한 작가로서 지역과 시대적 특성을 살려가며 자신만이 갖는 독특한 개성적 형상과 색채를 완성시켜 나가는 끈임 없는 노력의 결과로 보여진다.
이윤경의 조형적 특성을 인간의 탄생과 삶의 과정을 리드미컬한 연속적 볼륨으로 유기적인 인체형태를 변형시켜 구성해 나가는 추상적 서술이다. 20세기 이후 모더니즘적 미술에서 작가 자신의 내적인 탐구는 무한의 정신적 이데아 추구로 나타난다. 자연의 외적인 모방과 사물의 재현에서 벗어나 순수 조형요소를 찾는 추상적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윤경의 「기둥」과 「가족」 연작들에서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삶의 추상화로 자신의 이야기이다. 비록 그의 작품들이 형과 색의 독특한 구성과 오늘날 다원화된 유형의 한 부분으로 느껴져 시대적 독창성이 부족하게 생각되나 정성드려 만들어진 결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자신만의 솔직한 조형언어에 많은 공감을 갖게 한다.
그의 조형적 특성과 함께 주목되는 것은 작가의식과 작업태도이다.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 있는 듯이 역동적인 힘이 감추어져 있고 흙에 대한 애착과 정감이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순간적인 아이디어의 산물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과 힘든 제작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작가와의 대담 속에서 무엇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욕심 없는 작업태도이다. 그의 작업과정은 주로 백색토를 사용하여 유기적 형태를 구축해 나가며 완성된 모델링 위에 자신의 행위를 거친 선으로 흔적을 남기면서 특수 유약처리와 저온도의 소성으로 단순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유기적 형상의 연결과 표면의 흔적들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효과를 실험하는 가운데 완성되어 가는 견고한 흙의 덩어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덩어리 속에 자신의 사고와 생명감이 담겨져 있기를 원하고 소박한 외적인 모습이 바로 자기 자신일 뿐이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화가들이 평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눈속임 기법을 활용하였으나 결국 평면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면 그 자체의 진실을 탐구하듯이 흙의 작가들 역시 흙이라는 사물의 본질과 입체적인 형상의 순수성에 더욱더 몰입하게 된다. 이같은 이윤경의 작업의식은 자신을 떠나지 않고 주어진 공간과 사물의 자기화를 이루어 나가는 모더니스트와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이윤경의 도조에서 탈장르의 성격을 갖고 현대적 조형의 특성과 유기적 형태인 개성적 표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기둥(Column)」시리즈부터이다. 기둥은 수직적 공간개념을 무한으로까지 이끌어 나가며 직선적 성격의 입체형태이다. 2개 혹은 3개, 6개의 둥근 원통형을 수직적으로 쌓아올린 그이 「기둥」작품들은 닫혀진 형태로 고립적이다. 외적으로 부동성을 탈피하는 수직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는 기둥의 느낌을 줄 수 있으나 그의 원통형의 수직기둥은 브랑쿠시의 「무한주(Endless Column)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브랑쿠시 조각에서 '무한'은 추상적 반복 형태에서 나온다. 즉 「사물의 본질」을 철저히 추구하여 모든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추상화하였던 브랑쿠시의 완벽한 논리와 미적 개념의 결과와 달리 이윤경의 「기둥」은 정적이며 비논리적인 미의 세계로 비록 추상화된 단순한 모습들을 보여주나 부분적으로 인간이라는 분명한 형상을 읽게 하여 현실감을 높인다. 현실감을 높이는 그의 공간은 한정된 느낌으로 소박한 우리의 현실세계이다. 그가 만든 공간 역시 브랑쿠시의 「무한주」와 같이 무한한 공간의 추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현재까지의 작업으로는 자신을 찾는 한정된 공간의 완결성 추구로 보여진다.
이윤경의 「기둥」연작에서 현실적 공간의 탐구와 대비되어 신비로움을 느끼게하는 것은 기둥주위를 타고 올라가는 유기체적인 형상들과 같은 연결고리들이다. 마치 생명레와 같은 끈 모양의 엉켜진 형상들은 단계별 기둥을 연결시켜 나가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흰색 유약을 이용한 「백색기둥」에서 보여주는 연결고리 형상은 갸냘픈 생명체의 연결고로 미세하고 허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검정색 샌드스타 유약 (짙은 회색톤의 표면에 검은색 점들이 가득 차게 보여주는 유약)의「흑색 기둥」은 돌출된 저부조의 형상이 기둥에서 튀어나와 환조처럼 보이며 삶의 투쟁을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듯한 느낌이다.
흑과 백의 이중적 구조와 대비적 성격의 작품에서 우리는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둥」은 수평에 대립된 수직의 구조로 인간이 중심된 형상이며, 그 주위에 펼쳐지는 자연의 어둔 면과 밝은 면, 선과 악, 현실과 비현실, 천상과 지상의 대비적인 양상을 상상하게 한다. 이같은 상상력은 「기둥」의 연작 이후 만들어진 「가족(Family)」연작에서 더욱 풍부하게 하여 주며,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미적 요소로 우리들의 마음을 이끈다.
「가족」은 원통형의 작은 기둥을 중심으로 상단부에 집약적인 군상의 형상들로 마무리를 짖는 견고한 구성체의 면모를 보여준다. 주로 흑색 유약을 사용한 짙은 회색조 분위기의 작품으로 두 개의 형태가 결합한다. 원통형의 단단한 기본형태는 「기둥」과 같이 '닫혀진 상태'의 조각이며 상단부에 결합된 군상들의 추상적 형상은 '열려진 형태'로 감상적인 표현력이 강조된 열려진 형태의 조각으로 한정된 공간을 확장시켜 나간다.
하단부에서부터 겹쳐지는 연결고리의 굴곡진 형상들은 상단부에서 집약되어 삶의 총체적 표현을 이룬다. 하나 하나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으나 인간형상의 집단적 얽힘은 역동성을 가지며 꿈틀거리고 있다. 서로가 얽힌 혼합된 모습으로 절망에 빠진 절규하는 비극적 상황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개개의 표정을 잃어버린 동일한 연속의 형상들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그 속에서 찾는다.
결론적으로 이윤경이 찾고자 하는 것은 흙을 통한 시각적 삶의 생성과정이며, 자신의 정신적 집약이다.
고대 이집트나 로마의 기념주는 신적이며 정치적인 산물로 보인다. 전쟁의 승리를 기록하기도 한 기념기둥과 신을 찬양하는 오벨리스크 등은 그 시대의 산물이며, 시대적 특성과 정신성을 나타내는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기념물은 개인에서 나온다. 가장 개체적이며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조형물, 이들은 전통의 수용과 단절, 또는 새로운 법칙과 조형의 탐구에서 이루어 진다.
그의 「기둥」과 「가족」연작 모티브를 고대의 기념주들에서 찾아 볼 수는 없으나 시간과 지역을 초월한 개인의 기념물로 인간이 중심이 된 상상적 기념주로 비교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늘날 다원화된 도예나 조각의 혼합된 표현양식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하나 개개인이 추구하는 내적인 사고의 집약과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작업의 존재로 이 시대를 이해하게 된다.
이윤경이 추구하는 도조의 표현수단은 간편한 모델링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조각과 다른 과정을 거친다. 그것이 때로는 복잡하고 힘든 과정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그가 선택한 삶의 생성과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분리되지 않고 생생하게 나타날 때, 결코 그 표현수단은 불필요한 과정은 아닐 것이다. 사실 유약의 선택이나 소성의 결과와 처음부터 드러내는 표면의 흔적들, 이 모든 것들 속에는 작가의 손가락 움직임 하나까지 새겨져 있음을 본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소화시켜 나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도자예술은 볼륨감 있는 형태의 선과 색, 터치 하나 하나가 마치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느낌이나 그 과정 속에는 작가의 의식이 본능적으로 나타난다. 이윤경의 최근작들인「기둥」과 「가족」시리즈 이후 역시 작가의 성실한 작업의식에서 보여 주었던 내면적 세계와 창조적 행위의 흔적들이 더욱더 살아남으면서 점차 자신의 의도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시대적 특성을 강조할 수 있는 역동적 생명감의 "흙을 통한 생성과정 표현"이라는 지속성을 기대해 본다.
유 재 길 (미술평론가, 홍익대 교수)
Family(w:43cm, h:77cm)
Family(w:45cm, h:77cm)
Column(w:102cm, d:5cm, h:34cm)
Family(w:59cm, h:45cm)
Family(w:60cm, h:50cm)
ColumnⅠ,Ⅱ,Ⅲ(w:42cm, h:7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