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영혼, 프쉬케의 새로운 전설
한 마리 나비가 날아온다.
그 나비는 아름다운 몸짓으로 춤을 춘다.
그리고는 알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환성적인 빛깔의 날개는 없다.
(유충의 꿈, 아프로디테의 질투, 에로스와의 만남,
죽음으로의 유혹, 인간과 신의 결합, <쾌락>이라는 딸의 탄생....)
삶과 죽음의 강에 던져진 나의 영혼은 또다시
이 고독한 현실로부터 날아오른다.
기념비를 세울 수만 있다면
영혼불멸의 탑을 쌓고 싶다.
정지된 것 속에도 움직임은 있을 수 있어.
새로운 생명체에는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것이어야 해.
그 꿈의 꼭대기에서 나의 날개가 부서져 내려도 좋다.
죽음의 저편에는 어떤 땅이 있을까.
나의 얼굴을 쓰고 영원을로 노래하는
수 없는 나비들의 춤.
프쉬케의 영혼들.
Silence........
대전까지 가는 길은 뜨거운 햇살과 여름날의 열기로 인해 마치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았다.
오후나절에야 충남대의 작업실에 도착했는데, 필자의 숨막힐 듯한 더위감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 곳에서 필자는 어느 이집트 왕의 무덤에 인도된 듯한 섬칫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 키 만한 도자조형물에는 삼각형의 문양이 춤을 추고 있었고, 어떤 작품에는 데드마스크와 굳게 마주 잡은 두 손목이 부조되어 있어서 미이라의 관같은 형상도 보였다.
흩어져 있기는 했으나 16개에 이르는 도자조형물들을 여지껏 보지 못했던 환상적인 공간 속에 빠져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여러 전시회에 대한 필자로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필자는 직업적인 관찰심의 모퉁이, 그 한켠에서 조용히 밀려오는 어떤 움직임을 보았다.
그것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형상으로 다가왔다.
바로 데드마스크의 일그러진 모습위로 날아가고 있는 나비였다.
필자는 도예가 최병진의 심리적인 작업동기를 추리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셈이었다.
최병진은 무언가에 의해 속박되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과 실존에 대한 의문을 나비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후의 세계로까지 전이시켜 보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한 느낌이 어느 틈엔가 필자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직관의 동굴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글 앞에 쓴 짧은 글은 최병진의 작업을 보고 느낀 필자의 시적인 단상이다.
토마스 볼핀치는 그가 쓴 그리스ㆍ로마신화에서 「프쉬케와 에로스」의 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혼불멸의 예시로서 나비만큼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나비는 느릿느릿 배로 기어다니는 모충의 생활을 끝마친 뒤, 자기가 지금까지 누워있던 무덤 속에서 아름다운 날개를 파닥거리며 뛰쳐나오면 밝은 대낮에 훨훨 날아다니며 봄의 더없이 향기롭고 감미로운 생산물을 먹는다. 그러므로 프쉬케는 갖은 고난에 의해서 정화된 후에 진정하고 순수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영혼으로 표햔되어 있다."
그리이스어인 프쉬케라는 말은 <나비>와 <영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위의 글에서 최병진의 그간 전개해 온 "유전자 합성체"연작과 이번 전시회에서 발표될 "미이라"연작은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을음 파악해 낼 수 가 있게 된다. 즉, 최병진은 나비의 변형된 형태나 혹은 몸체와 발이 있는 유기적인 형상을 창조하는 일을 - 곧 무생물과 생명체의 구성인자를 합성함으로써 - 변증법적인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내는 일로 여겨온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과학자적인 실험태도를 예술적인 감각의 산물로 전환시켜 보려는 그의 의지를 덧없는 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또한 이집트인들이 꿈꾸었던 사후의 세계 - 동양권에서의 불교가 남겨준 윤회적인 사상에서도 그러하지만 -를 현실의 땅에서 영원성으로 실현하려 했던 것의 재현에 불과하다고 쉽게 넘겨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흙이라는 무기질과 불과 기술과 인간의 영혼으로 응결시켜 예술이라는 정신적인 산물로써 표현하는 것을 도예의 본질이라고 할 때 그의 이러한 노력이 결코 낯설고 외진 섬으로만 남아있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최병진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조형적인 짜임새로 이루어져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그의 이번 작업의 중심 축에는 알이 다리처럼 놓여져 있다.
2. 그 알은 그가 던지는 갊과 죽음에 대한 의문의 샘이기도 하다.
3. 그 이편에는 에로스와 프쉬케 사이에서 나온 새로운 생명체인 <쾌락>과 '유전자 합성체'가 삶의 벌판에 떠 있다.
4. 또 다른 저편에는 자신의 현실적인 고뇌가 박제화되어 수많은 나비의 영혼과 함께 초현실적인 사후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기념비
처럼 서 있다.
누구든지 그의 이번 거대한 도자조형물의 숲에서, 숱한 인고의 과정 - 8톤 이상의 흙을 사용한 형태 구축, 초벌소성, 유약입히기, 재별작업 등 - 에 대한 경탄의 독백만을 던지게 되지는 않으리라 본다.
최병진이 이처럼 기존 도예의 양상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통해 전개한 '삶과 죽음'에 대한 절대적인 의문들이 - '유전자 합성체'에서 밖으로 돌출하는 생명의 에너지로 느껴지든, 아니면 '미이라'시리즈에서 안으로 내재된 초현실적인 몸짓으로 여겨지든 간에 - 「데미안」에서 헤르만헤세가 탐구했던 다음과 같은 철학적인 메시지로 되돌아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1992년 8월
장 동 광 (갤러리 빙 큐레이터)
빗속의 미이라(w:60cm, d:25cm, h:170cm)
미이라의 꿈(w:60cm, d:25cm, h:170cm)
미이라의 속삭임(w:60cm, d:25cm, h:170cm)
전시 전경
유전자 합성체(w:30cm, d:18cm, h:50cm)
유기체의 기원(w:90cm, d:55cm, h:45cm)
미이라의 축제(w:60cm, d:25cm, h:170cm)
유전자 합성체(w:30cm, d:25cm, h:80cm)
유전자 합성체(w:80cm, d:35cm, h:40cm)
미이라의 속삭임(w:60cm, d:25cm, h:170c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