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미술평론가 / 김 숙 경

보일 듯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 있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것, 아주 하찮아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굉장한 것, 다시 말해서 쉽게 나서지 않으면서 은근한 멋을 풍길 줄 아는 것, 그건 원래 우리 조상들이 간직했던 미감이고, 또 우리들에게 물려 분 생활 정서이다. 요즘은 모든게 서구 중심으로 움직여 가장 일차원적인 먹는 일부터 시작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 까지 서구적으로 뒤바뀌고 있는 터라 물려받은 것은 벌써부터 까마득한 일로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아무리 전통이 어떻고 유산이 어떻다고 떠들어도 사람들은 서구 지향적인 삶을 좇아서 정신없이 달아나 버린다. 그것도 남에게 뒤질세라 아주 빠른 동작으로 말이다.
십년, 이십년 전만 해도 '장독' 이란 집집마다 당연한 살림이었는데 이제는 있는 집이 구경거리가 되는 그런 세상이다. 그래서 구경거리가 된 '장독' 이, '옹기' 가 한 도예가의 눈에 큰 관심으로 떠오르고 여기에서 나름의 삶의 지표를 발견한다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당연한 일은 식상해서 외면하기 십상이고 설사 외면하지 않는다 해도 평이한 결과로 끝나기 쉽다. 이렇듯 미적지근하게 막을 내리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 찾는 것이 획기적이고 기발한 생각이다. 결국 현대란 접두어를 붙이고 있는 건 기형적인 어떤 모양, 이색적인 첨단 기술,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추상과 관념의 세계, 복잡하고 이중 삼중 적인 심리현상 등을 미리 연상하게 된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 비슷한 감정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무조건 비틀어진 형체, 기하학적 조형감각, 정확한 균형과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 등에 이제 질력난 사람들이 있다. 아늑한 공간, 좁지만 마음 편한 공간, 가난해도 풍성한 여유, 옹기 항아리 같은 그런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강효는 도시를 떠나 작은 마을에서 옹기와 함께 사는 사람이다. 흙처럼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 우리 조상이 물려준 생각을 좇아서 뜻을 이루려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밖의 사정이 아무리 윤택하고 편리해도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강효에게 당연한 일이다. 겉모양에 현혹되고 편안과 안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되지 못할 부분이지만 바로 그런 고집이 신선한 옹기를 우리에게 발달할 수 있는 기운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옹기토로 배가 불룩한 항아리를 만든다.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문양을 그린다. 생각나는 대로, 숙련된 솜씨대로 익숙하게 움직이는 손은 도공의 장인 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흔히 장인이라 하면 하위 직급이란 편견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오늘날 많은 도예가들이 장인의 '장이' 기질을 갖지 못하고 괜히 순수지향으로 학구적이고 지적인 관념으로 향하고 있는 건 그런 편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도예가는 장인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왜냐면 장인정신이야 말로 다른 예술 장르가 흉내낼 수 없는 도예의 독특한 영역이니까, 성역이니까, 이강효는 장인기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에 나름의 생각과 자신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그래야 건강한 도자가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런 이론은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이지만 마음과 손까지 옮겨가기란 힘겨운 일이다.
동양의 공예사상을 들추어보면 공예인은 반드시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자연적으로 중용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중용이란 편들지 않고 기대지 않으며 과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희로애락이 발동하지 않았으며 설사 발동하였어도 다 중화된 상태라고 했다. 이 중용은 천하의 근본이요, 천하의 道에 다다를 수 있는 원동력이라 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공예사상의 일부이다. 옹기 항아리를 오랫동안보고 있으면 되받아 넣을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이다. 오늘날 천방지축으로 진열되는 공예품의 치졸함을 새삼 돌보게 하는 그런 교훈이다. 우리 것을 하대하고 남의 것을 베끼다 보니 이렇듯 들쭉날쭉한 공예품이 출현하게 되었는지 아쉬울 때가 있다.
공예인은 기교가 아닌 마음으로 만물을 대하라고 했다. 자연이 선사한 재료를 그릇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섭리에 맡기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강효의 분청은 최소한 욕심 없이 시작한다. 미리부터 이렇게 만들겠다 라는 계산은 없다. 대략 그 동안의 경험대로 흙과 함께 동화되어 완성된 것이 그의 분청이다. 모양내기 이해서 이렇게 시도해 본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강효의 마음과 손은 도공의 자세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해야 진정 원하고 있는 건강한 분청이 가마에서 익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일정한 틀을 정해 놓고 모두 틀 안에 갖혀 있다. 누구든 귀족이 되기를 원한다. 귀족이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본과 지식을 먼저 생각한다. 세상의 움직임이 모두 귀족화를 시도하듯 도예 역시 마찬가지다. 귀족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현상들 앞에 이강효의 분청은 분명히 반동이다. 감각적인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반동이 아니라 자연을 숭배하자는 일조의 시위이다. 매끈하고 정갈하게 꾸며지지 않은 모양에서 거칠 거칠하게 그려진 손 무늬에서 우리는 자유와 자연을 만난다. 똑 떨어지는 뒷맛보다 걸죽하게 남겨지는 뒷맛에서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감촉보다 두틀 두틀 긁혀지는 감촉에서 꾸밈없는 장독대의 경치를 구경한다.
보일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 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 아주 하찮은 것이지만 사실 아주 값진 것, 그것을 이강효는 알고 있다. 작은 마을 귀퉁이에서 옹기토와 함께 소리 없이 道를 닦듯 항아리를 만드는 이유는 바로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과 손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竹葉文壺 옹기토.산청사토, 1250℃ 환원소성 650×540(㎜)

수레문壺 옹기토.산청사토, 1270℃ 환원소성 510×360(㎜)

포도문大皿 산청토.청자토, 1230℃ 환원소성 650×100(㎜)

雲文壺 옹기토.산청사토, 1230℃ 환원소성 770×770(㎜)

연꽃文壺 옹기토.산청사토, 1280℃ 환원소성 670×350(㎜)

山形文壺 옹기토.산청사토, 1270℃ 환원소성 560×330(㎜)

귀얄大皿 옹기토.산청사토, 1280℃ 환원소성 650×95(㎜)

竹葉文壺 옹기토.산청사토, 1280℃ 환원소성 630×630(㎜)

수레문장군 산청토.청자토, 1230℃ 환원소성 300×350(㎜)

灰釉壺 옹기토.산청사토, 1280℃ 환원소성 440×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