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그릇

-미술평론가 김숙경

두툼한 두께와 육중한 무게가 있다. 어떤 일에도 쓰러지지 않을 단단한 벽과 어떤 거센 바람도 이겨낼 바람막이가 있다. 아늑한 쉼터를 마련하고 누구든지 맞이해 줄 오목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다. 무엇이든 감싸줄 공간이 있다. 거칠은 돌 조각, 섬세하게 다듬어진 곱상한 몸뚱아리, 두툼한 떡판을 세워 놓은 듯한 구조 등은 어떤 문제도 용해시킨다. 누구도 꺽을 수 없는 의지가 두툼한 두께 감의 힘 안에 베어 있다. 그것은 그릇이라는 개념을 띠어 넘지 않으면서 구사된다. 원복자는 옛 것을 보유하면서 시대에 걸맞은 변화의 결과를 얻고자 한다. 그에게 무작정 파격적인 것은 반가운 것이 못된다.
흔히 등장되는 조형감각과 전위 감각에 밀려나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던 도자는 자주 외면 당한 것이 요즘의 현상이다. 그릇을 만들면 웬지 현대인답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도자조각이란 형식은 나름대로 반가운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형식이 자신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인 표현과 제시가 있는 예는 드물다. 어설프게 시대 감각에 걸맞게 맞추어 가는 것일 뿐 더 이상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를 자주 대하게 된다. 물론 뛰어난 조형감각이 우선 인 시대이니까, 첫 눈에 내 것이 가장 먼저 들어 와야 하니까 겉모양에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하는 일이 지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칭찬을 하는 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객관화된 태도와 일관성 있는 자세를 만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꾸준히 자기 모습을 다듬어 겸손하게 내놓는 뿌듯한 작업 중의 하나가 원복자 의 도예이다. 혁신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릇의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은 한계 속에서 하고자 하는 표현을 실컷 발산한다. 원복자 에게 변형은 무한대로 가능한 일이다.
'소리' 는 반향되는 감각 자체이다.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들을 수 있는 소리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반향되는 모든 소리를 말한다. 커다란 소리의 광음으로 들릴 수도 있고, 잔잔한 물결을 지나치는 미진한 소리일 수도 있다. 어쨌든 작든 크든 우리의 세계를 건드리고 지나가는 진동을 말한다. 여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두드러지게 하는 개인 차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거의 같은 크기로 같은 모양새로 같은 흔적을 남겨 놓고 지나간다. 개별성을 두기에는 모든 것이 뭉쳐져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한정된 면 위에서 끝까지 자기 고집을 세운다. 구석 끝까지 자기모양을 가지고 간다. 흐트러지는 예는 없다. 동요의 흔적도 없다. 그것은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돌리면서 지나친 동작 같지만, 열심히 들여다볼수록 어떤 파동이 지나친 후 정돈된 모습이라는 기분이 든다. 처음부터 그렇게 조용한 문양을 새기며 지나간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정렬된 모습과 절제된 감각 때문이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시멘트나 돌 덩어리를 한 손에 잘라낸 듯한 재질감은 무엇보다도 힘을 대변한다. 강인한 무엇, 강력한 자연의 법칙, 변질되지 않는 절대적인 것, 초인간적인 힘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 두터운 벽과 두툴두툴한 면을 만든다. '도시공간'은 그런 감각을 토대로 지어진다 도시는 복잡하고 현란하다. 얄팍한 울타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두터운 벽을 원한다. 벽 속에는 늘 아늑한 세계가 있다.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온 귀향인 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할 채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는 그런 세계이다. 주둥이가 커지면 아늑함은 곧 사라지기 쉽다. 그래서 바깥과 통하는 출구는 적당해야 한다. 둥그렇게 다듬어진 굽은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모양새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만지고 싶은 충동은 곧 이색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풍성한 형태를 띄고 있는 매끈한 면은 어떤 결함도 미끈하게 빠져나간다. 모든 게 융화되는 둥근 굽은 아주 좋은 기분을 선사한다. 모든 게 용서되는 세계가 바로 이 둥그렇고 펑퍼짐한 굽이 아닌가 생각된다.
원복자 의 색깔은 진솔한 흙 색이다. 도예에서만 독특하게 채취할 수 있는 색깔이다. 물론 도예란 이것도 저것도 비슷하게 보일 때가 많지만 거칠 거칠한 표피와 재유색의 어울림이 흙의 멋을 더해 주기에 꼭 한번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기에 그렇다. 여기에서 흙이란 단순히 작업의 재료로써 끝나지 않는다. 흙은 하나의 유기물로써 하나의 생명체로써 자기 역할을 한다. 도예란 고온의 불 속에서 구워내는 절차가 있어 인위적인 결과로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다른 예술 장르와 구분되는 점이다. 물론 우연과 무의식의 법칙을 내세우는 예술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도예와 다른 차원의 것이다. 흙은 숨을 쉰다. 부풀 어오르기도 하고 수축되기도 한다. 어떤 조형물보다 흙으로 완성된 것에서 독특한 맛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건 아마 흙의 숨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흙 기분을 최대로 간직하고 흙의 모양을 최대로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자세는 흙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겠다는 바탕 위에서 비롯된다. 나서지 않으면서 은근히 자기 색을 내는 것이 원복자 의 흙 색깔이다. 한껏 멋을 내도 투박한 흙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색깔 때문이다.
원복자 는 성실한 태도로 자기 일을 해내고 정성스럽게 마무리한다. 마음속에 마당을 만들어 온 정성을 다하여 가꾼다. 나무도 있고 하늘도 있는 그런 마당이다. 시끄럽지 않은 마당이다. 안락하고 포근한 마당에서 겸연쩍은 치장과 별스런 예의는 불필요하다. 잘난 맛도 뛰어난 맛도 없이 담담하게 자기를 다듬는 일에 열중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래서 원복자 의 도예는 우리에게 괜찮은 뒷맛을 남겨준다.

도시공간(w:38cm, d:37cm, h:44)

울림(w:40cm, d:30cm, h:48cm)

울림(w:39cm, d:39cm, h:54cm)

도시공간(w:42cm, d:31cm, h:47.5cm)

울림(w:60cm, d:34cm, h;40cm)

울림(w:22cm, d:22cm, h:60cm)

도시공간(w:52cm, d:25cm, h:48cm)

도시공간(w:40cm, d:31cm, h:39cm)

도시공간(w:47cm, d:30cm, h:20cm)

소리(w:52cm, d:30cm, h:41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