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 빚어낸 '人間-愛'에 대한 道者的

Ⅰ 태초에 프로메테우스가 가져다 주었다는 불은 인류의 생활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했다. 그러므로 불과 인간의 관계만큼 역사가 깊은 것도 없을 것이다. 원시시대부터 불에 구워낸 도자기는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생활 용기로서 출발하였지만 근대 이후에는 여기에 조형성을 접목시킴으로써 미적 향수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도자기 예술은 본시'기다림의 예술'임에 틀림없다. 말하자면 도자기 예술은 완성의 단계를 두 번 거치는 것이다. 한번은 인간의 손에 의해서, 또 한번은 불을 통한 신의 의지에 의해서 재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탁은 무작정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초혼(招魂)하는 구도자처럼 불의 조화(造花)를 염원하는 것이다. 성형을 아무리 잘했어도 소성에서 실패한다면 훌륭한 도자기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소성재료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장작을 이용한 가마가 주를 이루었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가스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시유한 초벌 작품들이 제대로 구워지도록 고사를 지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게 없다. 환언하면 하나의 도자기가 나오는 것은 작가의 진심 어린 노력과 신의 은총이 합일했을 경우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작가 이명순의 작품세계를 돌이켜 보면 학부시절에는 물레성형을 통하여 전통적인 형태의 도자기 예술을 열었다. 그러나 대학원 시절에는 코일링이나 판성형을 통하여 마름모나 삼각 기둥형 혹은 꽃봉오리형으로 변모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도자기와 조각의 개념을 혼합한 도조(陶彫, Ceramic Sculpture)로 탈바꿈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 있어 도조의 개념은 사적(史的)인 측면에서 보아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조라는 종래의 개념은 도자기의 표면에 조각한 형태를 붙이는 것이었으나 그는 작품전체를 굴곡지게 하고 구연부를 닫아버림으로써 이 개념을 새로운 의미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것이 그의 경우 도자기 쪽이냐 아니면 조각 쪽이냐의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이번 작품군에는 양자가 공존하고 있다. 즉 그가 몸담고 있는 응용예술 세계에 순수예술을 접목시키고 있으며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아니 양자간의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자기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지니는 용기로서의 특성을 살리면서 조각의 측면에서는 인체를 소재로 하여 그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그의 이번 도조 작품들은 도기가 지닌 형태 감각 및 기법을 견지하면서도 조각에서 추구하는 조형성을 가미한 것이다.

도조의 변천사를 보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종래의 도자기가 가지고 있던 실용적 관점, 즉 유용성에서 조형적 요소를 가미하여 미감의 표현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는 조교시절에 직접 유약 실험을 부단히 행함으로써 발색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일가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의 학구적인 면이 돋보이는 일면이기도 하다. 이명순은 원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현재에는 군산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재직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는 전북의 도자기 예술계에서 중진에 속한다.

Ⅱ 근대이후 서구의 산업혁명이 몰고 온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필연적으로 인간정신의 몰락을 몰고 왔다. 그 결과 작금에 이르러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도예가 이명순은 이러한 시대적 소명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 도자기 예술을 통한 인간애의 구현을 어떻게 완성할 것이냐를 고심한 끝에 2년여에 걸쳐 준비한 이 첫 번째 개인전의 테마는 '인간-애'라고 선뜻 정했다. 그에게서 이러한 이념은 가장 순수한 인간적인 것에로의 환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주제를 소화시키는 방편으로서 그는 작품의 전체 구조에 있어 단일 형태를 지양하고 두 개나 세 개의 도자기를 접합시키고 있다. 이것은 남녀 한 쌍이 마주보고 있거나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그리고 가족 등을 상징하고 있다. 말하자면 첫 번째 작품군은 조화롭고 대화가 상통하며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화목한 집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며, 두 번째 작품군은 서로 반목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대립적인 집단을 지칭하고 있고, 세 번째 작품군은 양자간의 갈등과 반목을 극복한 화목한 집단이나 가정을 의도하고 있다. 이렇듯이 그의 작품들에 나타난 인간애는 현대인들에게서 보여지는 조화와 반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종국에 가서는 사랑으로 귀결시키고 있어서 이는 인간 사랑을 사물에 대한 본질 파악의 시발점이자 종결점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잔잔한 파상(波狀)처럼 인간형상을 단순화시키고 변형하여 굴곡지게 만들었다. 그 굴곡진 볼륨은 도자기적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으며 인체적 특징도 강하게 비치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구연부는 도자기적 특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원래의 상태로 닫지 않은 것과 조각의 경우처럼 닫아버린 것으로 양분할 수 있으나 닫다 버린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럼으로써 작품 자체의 공간이 전통적인 조각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연부는 수평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경사가 져 있어서 변화감이 한층 강하며 따라서 '미완성의 완성'이라는 암시적인 의미도 풍겨주고 있다. 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용기로서의 기능성에다가 조각이 지니고 있는 작품 자체의 공간성을 공히 지니고 있음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특히 성형에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작품들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말하자면 코일링한 도자기는 기저부가 작품 전체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의 기저부는 형태별로 주형을 만들고 일일이 손으로 눌러 완성한 이후에 어느 정도 건조시켜 차후 몸통부를 코일링으로 쌓아감에 따라 허물어지거나 갈라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그리고 태토를 쌓아가면서 판판한 면을 가진 막대기로 두드려 일정한 두께와 힘이 있도록 다듬었다. 건조가 끝난 이후에 표면을 칼로 문질러 가는 돌등의 이물질을 제거함으로써 자연히 가는 흠이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작품 표면의 부드럽고 미끄러운 맛을 없애고 대신에 약간의 거칠거칠한 마티에르 효과를 첨가하고 있다.

시유에 있어서는 두껍게 하지 않고 얇고 묽게 하였으며 유약도 두세번 덧칠하고 다시 칼로 드문드문 긁어냄으로써 이 효과의 극대적인 표현과 아울러 특이한 발색, 말하자면 다채색의 표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경우 스프레이로 뿌려 표면과 상호 고른 층을 유지하고 있으며 붓칠로 얻어질 수 있는 터치는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단일색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겹친 색조가 있는 것들도 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점들이 이루어내는 얼룩진 색조가 있는 것도 보이는데, 이것은 유약이 소성시 수축과 팽창의 적절한 조화로 인해 보여지는 자연스러운 문양인 것이다. 요컨대 수축과 팽창이라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처리한 이 시유방식은 종전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작품들에서 가벼운 느낌이 나느 밝은 색은 피하였다. 간혹 밝은 색조의 경우에도 움푹 들어간 부분은 어두운 색조의 유약을 첨가함으로써 교묘하게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있음도 보여진다. 작품의 전체 형태가 큰 관계로 청색이나 미색 아니면 갈색계통이 무난하다고 생각하였다.

소성의 경우를 보면 1250℃로 구웠다. 따라서 종래의 다른 작품들보다도 실패율이 높은 난관을 극복한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그 방식을 보면 산화불로 일관하다가 끝에 이르러 환원불을 적절하게 가미함으로써 작품의 상하가 고루 발색되도록 하는 독창적인 기법이 엿보인다.

결론적으로 그의 이번 도예개인전의 특성을 요약한다면 도자기 예술에 조각적 특성을 가미한 도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 개념은 종래의 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인간-애'라는 주제를 도자기의 형태에서 인체의 변형을 통하여 구현함으로써 현대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일념으로 본질적 차원의 정신적 의미에서 조형예술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1993년 10월 5일
崔 炳 吉(美學, 美術評論)





人間-愛 9311 / 60×26×65cm

人間-愛 9316 / 56×24×60cm

人間-愛 9312 / 72×26×70cm

人間-愛 9328 / 63×26×78cm

人間-愛 9317 / 59×25×74cm

人間-愛 9318 / 60×26.5×71cm

人間-愛 9313 / 65×26×67cm

人間-愛 9319 / 67×26×76cm

人間-愛 9320 / 43×29×75cm

人間-愛 9321 / 47×28×8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