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있는 공간의 확산

- 최남진의 '삶을 위한 기도' 작품세계 -

조각가에게 있어서 흙은 모든 재료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이며 원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든다는 것은 무기질의 재료 속에 생명을 육화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부드럽고 가소성(可塑性)이 뛰어난 흙은 그러나 제작의 프로세스 속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를 발전시켜놓기도 한다. 특히 흙으로 성형한 형태를 불로 구워낼 때 흙의 거부는 완강하여 흙을 오랫동안 다루어 본 작가조차 흙의 성질에 굴복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면 흙은 비로소 본래의 성질과 완전히 다른 견고하고 아름다운 물질로 부활한다.

생명의 순환과 내면의식의 세계를 브론즈란 금속성의 재료가 담지하고 있는 차갑고 날카롭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된 형태 속에 담아내었던 최남진이 최근 이른바 도조(Ceramic Sculpture)에 심취하고 있는 이유도 흙이 지닌 이러한 매력적인 물성에 주목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가 재직 중인 학교의 특성 때문에 흙을 다룰 기회가 많았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도조작업에 이끌릴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의 작업세계는 현대조각의 계보란 것을 상정해 불 때 다소 독특하다.
과거 그가 추구했던 작업세계를 주목해 볼 때 그는 다른 조각가들과 마찬가지로 형태와 공간에서 작업 논리적 실마리를 찾고 있으며 그 결과는 본질주의를 추구하는 추상조각의 그것과 방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형 적으로 뒤틀린 곡선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날카로운 선, 집요한 연마 후에 나타나는 표면의 광택 때문에 그의 브론즈 작품들은 긴장된 운동감에서 야기되는 불안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위로 상승하고자 하는 내적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형태 자체로는 완결성을 지향한다.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지경, 즉 재료에 가해진 노동의 흔적이 구조와 형태에서든 표면처리에서든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면 이 불안정한 균형과 비례가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상태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따라서 다른 출구가 없어 보인다. 매우 역설적이겠지만 이 완정성이 그로 하여금 흙에 주목하게 만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브론즈작품들과는 달리 그의 흙 작업은 재료 위에 그의 의식과 집요한 노동의 흔적을 가하지 않는다. 즉, 브론즈 작품이 금속성을 드러내기 위해 형태를 석고로 성형한 후 그것을 주물로 주조(鑄造)하며, 그 형태에 또 다시 엄청난 기술적 수고를 더하고 있다면 흙 작업은 흙이란 재료에 보다 순응하는 특징을 강하게 보여주고 잇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의 흙 작업이 브론즈작업의 연장으로서 날카로운 선과 비타협적이라 하리 만치 긴장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면 최근의 형태는 더 부드러워지고 곡선은 완만해지며 형태 또한 통일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약의 사용은 그의 작업을 장식적인 차원으로까지 이끌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외형을 아름다운 색채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형태와 공간이다.

그는 이러한 형태와 공간의 창출을 위해 네 개의 서로 상승하는 구조를 지닌 형태를 결합시키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왜 네 개의 구조를 서로 결합시키고 있는지를 밝히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그것이 우주와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방위(方位)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대 철학에서 원초적인 4원소로 고려했던 흙·물·불·공기가 도조작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 혹은 무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이 네 개의 구조가 한 덩어리에서 발아(發芽)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 덩어리로 수렴(收斂)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작품의 중심부에 형성되는 일종의 핵(核)과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바 이것이 최남진의 작품에 항상 나타나고 있는 운동감, 공간감의 출발점이자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중심부는 작품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그의 의식이 가장 극명하게 반영된 것이다. 마치 인체의 어떤 부위를 연상케 만드는 유기적인 곡선들로 이루어진 작품과는 달리 사각형의 분명한 형태 속에서 한 출구를 통해 태어나고 있는 난형(卵形)의 구조를 보여주는 작품 역시 공간의 확산이란 측면과 함께 생명의 탄생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새로운 재료와 기법에 의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 나선 작은 모험에의 출발이 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 도조작품에서 과거의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긴장된 응축이란 측면일 사라지고 잇다는 검은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조화와 융합이란 긍정적인 부분에서도 불구하고 그의 도조작품은 다소 이완되어 있다. 브론즈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명쾌함은 사라졌지만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 해왔던 형태와 공간의식은 주목된다. 특히 예리한 선과 각에 의한 형태의 압축대신에 흙의 부드러운 가소성을 이용하여 유연한 유기적 형태를 창출함으로써 작품의 친화력이 훨씬 고양되고 있다.

최남진의 최근 작품은 단순히 재료의 변화란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표현형식에 있어서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긍정적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적 전망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최 태 만 (미술평론가)





삶을 위한 기도 / 62×15×65cm /1992

삶을 위한 기도 / 47×23×54cm / 1992

삶을 위한 기도 / 63×14×55cm / 1992

삶을 위한 기도 / 55×18×55cm / 1992

삶을 위한 기도-은총 / 39×39×62cm / 1993

삶을 위한 기도-사랑 / 48×48×60cm / 1992

삶을 위한 기도-충만 / 63×24×65cm / 1993

삶을 위한 기도 / 57×15×55cm /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