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그리고 조형의 일각화(一刻花)

◎一刻의 체(體)
태초에 전각(篆刻)이 있었다. 현암은 전각가이다. 그는 자신을 '전각쟁이'라 일컫는다. 한가지 일을 끊임없이 하게 되면 사람들은 도가 통한다고 말들 한다.
일각(一刻)의 파헤침에서 쉬바는 단순히 파괴가 아닌 창조의 활물(活物)인 것이다. 자신이 비어 있을수록 원형질은 조형의 공간성을 부여한다.
예부터 전각은 시·서·화(時·書·畵)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암의 풍모에서 언제부턴가 수행자와 같은 냄새가 난다. 일직이 노장사상에 심취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내면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올해 3월 달에 열렸던 전시회에서 ''라는 작품에 깃 든 조형성은 참으로 일각(一刻)의 묘용(妙用)을 느끼게 한다.
현암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균형의 적절한 배열에 있을 것이다. 직선의 내달리는 방향성의 일미(一味)와 원시적이며 고전적인 이야기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창조적 작업의 심연에 동참케 한다.
파헤침, 그것은 인간의 근원에 묻혀진 마그마이자 알파이다. 오래 전 인간의 조상이 새긴 갑골문자나 상형문자에는 원형질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창조적 비드야(Bideya·지혜)를 엿보게 한다. 인간의 역사와 방향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인다. 현암의 심곡(心谷)에서 나온 차디찬 돌 위에 하얀 옥잠화 같은 아름다운 조형의 꽃이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피는 것이다.

현암은 꿈을 꾼다.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과 거기서 비롯되는 인간근원의 향기를 그리고 창조를 통해서 흡발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현암은 고통을 '살맛'이라고 표현한다. 노력의 고통 없이 피어난 창조는 게으른 부르조아이다. 쟁이는 고통에서 비롯된 충만한 꿈을 꾼다. 가난한 삶에서 발아한 작업의 행위는 돌의 사면에 각을 하기 시작한다.
작가자신의 창조성에서 비롯된 '刻'자체의 유일적 신앙성으로 합일하는 것이다. 단순히 그림의 부분을 차지하는 산물이 아니라 현암의 전일성(全一性)이고자 하는 것이다.
무수한 크로키 작업과 훈련된 여백의 감각은 현암의 오랜 작업에서 비롯된 경험의 누적일 것이다. 돌의 사면에 각을 새기는 작업에서 보듯이 그는 기존의 행위에 집착하지도 않고 매이지도 않는다. 이번 전시회에서 나타난 다변적 창조성의 유발은 실로 현암의 것이다. 여지껏 옥돌에만 새겼던 전각을 도판(흙판)에 새겨 유약과 함께 불가마에 구운 작품으로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일견(一見)의 이 아닐 수 없다. 방촌 속에 무수한 창조와 쉬바(파괴의 神)가 거듭 되는 구조의 질서는 각(刻)의 체(體)요, 브라만의 호흡인 것이다.

◎一角의 상(相)
현암의 전각은 새김질을 통해서 말하는 고통의 숨결이요, 존재의 행위에서 비롯된 활물(活物)이다.
더더욱 외국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가 그의 독특한 조형성의 현대적 상징성일 것이다. 장인에게는 그들만의 땀으로 빚어진 세계가 있다.
몇 트럭 분의 도장을 파본 사람만이 그를 말할 자격이 있다. 현암선생이 일반에 알려지게 된 것은 85년이래 네 차례 있었다. 건축가 김수근씨가 생존했을 때 '공간화랑'에서 가진 초대전을 시작으로 미술세계'경인미술관'에서 묵화전을 가졌고 독일문화원과 상계동 미도파 백화점에서 전각 초대전을 열었다.
현암의 작품은 묻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근원에서 비롯된 육기(六氣)의 흐름을 이해하고 오감의 합일된 구조적 감응만이 긍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물(物)이 일각의 정(精)을 받아 창조의 다신(多神)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 창조성이 이번 전시회에서 표현된 도판(흙판)에 각을 하는 점진적 성과를 보인다. 불과 유약이 빛깔이 어우러져 또 다른 상(相)의 조형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화염에서 일궈진 유약과 일각(一刻)의 묘용(妙用)은 화신(火神)과 어우러져 창조의 불춤을 이루어 카오스(혼돈)의 변형된 조형적 질서를 이루는 것이다. 이전 전시회보다 이번 전시회가 주용성을 띄는 것은 (刻)이 각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약과 불이 하나가 된 완전한 맡김에서 비롯된 창조의 활물(活物)이 탄생된다는 것이다.
화신(火神)은 파괴이자 생명의 창조이다. 불은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변형시켜 버리는 물의 힘은 현암의 각인된 땀방울과 합쳐 창조의 크리슈나를 잉태하는 것이다.
현암의 분신이 불춤을 추고 있다. 근원도 알 수 없는 몸부림으로 상형의 몸에 옷을 입히는 성스런 의식이 유리세계 같은 현암의

가마 속에서 유약의 왕관을 조율하는 것이다.

◎一刻의 용(用)
현암의 수련은 거꾸로 보기와 함께 조형미를 갖추는 연습의 수단으로 그는 또한 묵화를 선택했다.
흑백의 세계와 추상화된 선으로 표현되는 묵화의 선적(禪的) 절제성은 조형을 공부하는데 제격이다. 그래서 그는 수십만장의 수묵크로키를 계속하고 있다. 방대한 작업량은 그가 이 시대의 '완전한 쟁이'임을 실감케 한다.



돌에 꽃이 피네
상형의 화신(花神)들
여기 그리움으로 가득 찬
돌꽃의 꿈이 깨고
불과 바람과 땀방울이
어저께 새벽이슬처럼
하나가 되어
불꿈을 꾼다네
불춤을 춘다네

유약의 환희
불의 정열에 못 이겨
비색(秘色)의 왕관을 쓴 뒤
아 몸 떨려
터져 나오는 일각(一刻)의 꽃

범 일 (승려, 시인, KTN미술평론부장)





招舞 30×30cm

魯縞 20×21.5cm

招搖旗 30×20cm

眉目秀麗 23.5×23.5cm

鳳鳴 20×21.5cm

一見如舊 23.5×23.5cm

玉壺賣春 23.5×23.5cm

暴天物 23.5×23.5cm

蒿盧 23.5×23.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