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카오스와 미로 : 자기소멸의 유혹

최 태 만 (미술평론가)



-미궁 혹은 자기로부터의 도피

조계형의 작품은 자기혼돈의 산물이다. 작업활동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를 이끌고 있는 힘은 '자기애'이다. 그의 자기애는 지독한 자기혐오의 다른 모습이다. 자기혐오와 자기애의 모순된 심리상태에서 다소 흥분되고 들떠있는 그를 나는 방관자로서 지켜본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방관자로서 그의 광기를 바라볼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먼저 나는 한가지 사실에 대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확인해 두고 싶다. 그것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개념들이 조계형이란 한 인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것을 그에게 직접적으로 대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분방하고 활달하며 거침없는 그의 성격과 그것이 일정하게 반영된 작품을 통해 나는 예술충동의 중요한 한 부분을 건드리고 싶다.

나는 그에게서 광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는 결코 미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심적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잠재해 있는 엄청난 에너지- 그 실체가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도 그것이 완전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말하자면 그는 언제 폭발할지도 모를 잠재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우리를 그의 작품속으로 끌어들이는 또 하나의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조계형이 추구하고 있는 주제는 '에고로부터의 탈피' 이다. 그는 자아로부터의 탈출(혹은 도피?)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나 그 출구는 없다. 이 감금은 공포이지만 한편으로는 유혹이기도 하다. 이 모순된 상태는 자신이 스스로 출구를 봉쇄해버린 미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화살을 통해 자기연민과 자살이란 양자택일의 극단으로 그를 내몰아가고 있다. 마치 프롬(Erich Fromm)이 자유의 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인간들에게 자유가 주어지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인간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고 말한 것처럼, 조계형은 그를 이루고 있는 적어도 생물학, 사회학, 혈통적으로 자아의 발견을 위해 방황하지만 자아속에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것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출구는 없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스의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조계형은 스스로 그 출구를 막아버리고 열쇠조차 던져버린 상태이다. 절망을 탐닉하는 그의 병든 영혼은 과연 치유될 수 있는가? 또한 그의 작품에 꿈틀거리고 있는 수천마리의 뱀을 보고 나는 그의 사악한 상상력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의 마술적 에너지가 실제로 우리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은 혼돈(Chaos)과 질서(Logos),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자극한다.

-혼돈의 심연으로부터

태초에 혼돈속에서 세계가 형성되었다. 혼돈의 무질서와 불연속성은 죽음과 같은 심연이며, 시작과 끝의 개념이 무의미한 상태였을 것이다. 혼돈의 자손인 인간은 안정과 평온을 찾아 그 혼돈의 소용돌이 속을 방황하였고 정주(定住)의 가치를 인식한 후 비로소 안정에 대해 자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획득한 안정이 인간을 해방시켰다고 할 수는 없다. 혼돈이 있기 때문에 안정이란 개념과 상태가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간은 부정할 수 없다. 안정을 명분으로 인간들은 문명과 문화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나, 이성과 진보의 이름아래 그것 또한 혼돈 지향적인 욕망의 결과라는 사실을 오랜 기간 은폐하였으나 주체할 수 없는 일탈에의 욕망을 신화와 설화를 통해 표출함으로써 은폐되고 억압받는 욕망을 해소하고자 했다. 결국 혼돈은 야만의 상태이며, 인간은 언어를 발견함으로써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언어가 사용됨으로써 인간들은 이제 혼돈에 대해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의 한 부분, 즉 언어로 서술할 수 있는 영역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편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혼돈은 비단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에도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이다. 그것을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ID)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것을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무의식의 저 깊은 심연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미망(迷妄)이며,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나락이다. 이 나락속에서 조계형의 의식은 하염없이 유영(遊泳)한다.

그 최후의 기착지는? 자아? 죽음? 혹은 새로운 탄생? 조계형이 파악하고 있는 혼돈은 창세기 이전의 상태나 우주계가 형성되기 이전의 먼지 덩어리와 같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혼돈은 갈등하고 있는 자화상이다. 그것을 우리는 <카오스의 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면이 거울로 막힌 이 방에 들어서면 우리는 무중력상태속에 빨려든 것과 같은 심리적 충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공간의 각 부위는 상대 벽면의 거울에 반사되면서 그 공간의 깊이는 한없이 깊어지고 이미지는 상호 중첩된다. 이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모호해지며, 실제와 환영의 거리 또한 와해되어 혼동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은 한 벽면에 설치된 텔레비젼 수상기이며 그 화면을 통해 극단적인 영상과 접촉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그의 혐오스러운 상상력이 내뿜는 괴이한 마력과 마침내 만나게 된다. 그의 끊임없는 자기학대와 자기애의 이율배반적인 성적 에너지에 의해 더욱 가중되며 심리적 혼돈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 혼돈의 정체는 심리적 평온을 회복하고자하는 욕구의 극단적인 표출이다. 그래서 이 혼돈의 결과가 폭발 혹은 파멸이 아니라 자기반성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에로티즘 : 성적 환타지아 혹은 자살충동

인간이 혼돈(생명이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성(性)을 가장 문명적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생식한다. 왜냐하면 생명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한 유기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소멸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패되기 쉬운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체는 부패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음식물을 섭취하고 그 부산물을 배설하여야 하며, 피를 순환시켜야 하고 운동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물학적, 해부학적인 행위들이 모두 쾌락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특히, 성과 관련된 욕망의 경우 성행위 자체와 더불어 섭취와 배설, 수면 등과는 다른 아주 각별하고 대단히 심리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요청한다. 단순히 생식만을 위한 것이 아닌 심리적 추구와 결부하여 에로티즘이라는 것이 형성되며, 에로티즘은 모든 인간활동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미묘하며 적극적인 영역에 속한다. 이를테면 그리이스 신화는 일찍이 도시 국가를 형성하였던 그리이스인들의 자유로운 성활동 즉, 성의 해방에 대한 욕망의 결과로서 사회적 금기를 초월한 신들의 분방한 성행위를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원시적인 주술(呪術)행위가 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문명화된 사회에서조차 성의 억압에 버금가는 성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은 존재와 소유의 중간지대이자 삶과 죽음의 교차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리이스인들은 남녀간의 성적결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랑(Eros)이 혼돈의 아들이거나 밤(Night)의 알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으며, 항상 결핍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욕망의 화신으로 묘사되곤 했다. 특히 프로이트(S. Freud)의 경우 에로스를 생명을 보존하고 추진하는 에너지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것이 성의 본능과 결부될 때 리비도(Libido)가 되고 자기보존의 본능과 결부될 때 에고(Ego)가 된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에로스는 생명의 극한에 위치한 것이며 그 반대의 극한은 죽음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 있다. 인간은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가 지속되기를 애타게 염원한다. 그 염원의 구체적인 실천이 성행위이며, 그 생물학적 시스템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심리적인 것이 에로티즘인 것이다. 따라서 에로티즘은 항상 동요하고 갈등하며 공포와 절망에 의해 포위당해 있는 욕망의 영역이다. 그것은 결핍속의 충만이며, 침울하고 어두운 절망의 그림자이다. 조르쥬 바타이유(George Bataille)는 에로티즘을 육체적, 심정적, 신성적인 것으로 나누고 그 중 죽음과 가장 밀접한 것으로 육체적 에로티즘을 들고 있다. 결국 육체적 에로티즘은 소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욕망과 관계되지만 그 주변에는 항상 죽음 즉, 소멸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성행위는 행복이지만 파괴이고, 이것은 또한 살해 충동과 자살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성이 파괴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극단적인 심리적 흥분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동족보존이란 사회생물학적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인간들은 이것과 관련하여 많은 금기, 근친상간, 간통, 동성연애, 공공연한 성적행동 혹은 그것을 연상시키는 모든 행동의 금기를 만들었고, 금기를 어기는 인간에 대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단하였다. 그러나 공공연하고 공개적으로 에로티즘의 의미를 들추어내고자 하는 이단(異端)의 결단이 사드(F. Sade)란 반역자에 의해 자행되었고 그의 도발은 인간의 야만적인 이중성으로 향해 던지는 '부드러운 폭력' 이었다. 사드는 '죽음과 친숙해지려면 죽음을 방탕과 결부시키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는 말을 통해 성욕과 살해욕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가를 밝혀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해방의 역할을 수행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의 도착과 음란은 근본적으로 부도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파괴적인 인간의 본능을 숨김없이 폭로함으로써 인간의 위선적 이중성을 고발했다.

-자살에의 유혹

그러면 조계형의 작업을 촉발시키는 성적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에게로 향한 모반(謀叛)의 유혹임과 동시에 나르시즘이고 혹은 자기거세본능의 한 형태이다. 그는 둥근 구멍 사이로 자아와 세계를 바라본다. 그 구멍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뱀들은 여러 가지 신화적, 심리학적, 인류학적 상징들에 대해 암시한다. 뱀은 기독교적 차원에서 유혹과 파멸의 상징이다. 그러나 뱀은 경우에 따라 신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인류학적으로 뱀은 남성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수천마리의 뱀은 그러므로 억압된 성적 욕망이 한꺼번에 분출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로 그의 성적 욕망은 사과의 형상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사과는 달콤한 것, 사랑스러운 것이며 또한 뱀처럼 유혹의 표상이기도 하다. 사과를 먹는다는 행위는 그것을 파괴한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며, 소유를 전제로 하는 에로티즘에 대해 연상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속에서 사과는 그를 괴롭히는 또하나의 자아가 외현(外現)된 것이며, 그 본질은 성적 에너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로속에 감추어져 있다. 사과는 네온 빛을 받아 요염하고 관능적이면서 우울하고 창백한 빛을 발산한다. 뱀과 사과가 제공하는 신화적 분위기와 그의 발작적인 염세충동은 그의 작품을 때로는 음산하고 불안한 영역으로 때로는 관능적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즉 그의 작품은 불안과 두려움과 연민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이 혼돈의 세계로 들어서기를 유혹한다. 그는 자아를 폐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드러냄으로써 그의 병적 징후 - 자기소멸의 충동 -를 치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궁극적으로 그는 억압받고 있는 성적 에너지의 발산을 통해 타나토스(죽음)와 만나는 비교적(秘敎的)의식을 집전하는 사제이며 그 엑스타시의 절정은 성적 희열이 아니라 죽음에의 초대이다. 그는 자기 소멸을 꿈꾼다. 그것은 카오스이며 한편으로는 아프락사스이다. 그는 작업이란 행위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고 비운다. 그럼으로써 현실에서 실천할 수 없는 -충족시킬 수 없는- 소멸에의 욕망을 작품을 통해 대리체험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그의 의식의 대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조계형의 이러한 자기 모순과 심리적 방황에 대해 나는 동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적이라기보다 이성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 글은 현재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필연코 나를 놀라게 만들 그의 내적 에너지에 바치는 지적 작업의 산물임을 밝혀 두고 싶다.






영혼의 춤 Dance of the Soul 225×96×7㎝, 1994

불안한 사과의 꿈-Ⅱ Detail, Dream of Uneasy Apple-Ⅱ 180×48×48㎝, 1994

불안한 사과의 꿈 Dream of Uneasy Apple 180×48×48㎝, 1994

영혼의 춤 Dance of the Soul 225×96×7㎝, 1994

카오스 Ⅰ,ChaosⅠ

카오스 Ⅰ,ChaosⅠ 800×240㎝, 1994

불안한 사과의 꿈-Ⅱ(부분) Detail, Dream of Uneasy Apple-Ⅱ 180×48×48㎝,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