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陶藝를 통한 사회적 발언- 재고되어야 할 여성의 현실에 대한 사색들

1. 오늘날 여성주의 미술이라고 번역되는 이른바 페미니즘 아트(Feminism Art) 의 대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기 이후부터 파생된 여권신장운동과 여성들의 사회참여확대 현상에 기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주의 미술의 특징은 남성위주의 사회관으로부터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측면, 소외되었던 여성문제에 대한 부각, 남성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문화로서의 입지확보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구에서의 페미니즘 미술의 논의의 출발점은 에바 헤세(Eva Hesse)로부터 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그녀는 독창성이나 미학적인 면, 미술사적인 면에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가로서의 입지를 확보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초기 페미니즘의 대두를 예고했던 에바 헤세의 죽음이후 1970년대 들어서 쥬디 시카고(Judy Chicago), 미리엄 샤피로(Miriam Schapiro)에 의해 전개된 본격적인 페미니즘 미술은 여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남성 위주의 사회적 제도의 모순성과 그 편견의 역사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부상하고 있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 바바라 크루거(Babara Kruger),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 대표작가로 대상을 수상하였던 제니 홀저(Jenny Holzer) 등은 예술개념을 뛰어넘거나 장르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남성본위의 사회가 가진 허위의식을 고발하고, 기존의 역사속에서 왜곡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 페미니즘 미술은 1980년대 이후 들어서면서부터 남성과 동등한 미술품을 생산해내는 미술가로서의 위상찾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의 구조를 청산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여성미술가들의 활동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개략적으로 살펴 본 이러한 페미니즘 미술에 관심을 갖고 도예가로서 창작활동을 전개하려는 김지혜를 이번 갤러리빙에서는 '94 옴니버스 젊은 작가 기획전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였다.

2. 김지혜는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현재 미국의 켄트 주립대 대학원에서 현대도예를 공부하고 있는 신진작가이다. 이번 전시회는 이 작가의 대학원 석사과정동안 제작한 것을 토대로 하여 새로이 제작된 몇 점의 도예작품을 포함한 것으로, 도예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데뷔전이 될 것이다.

전시기획자로서 필자는 김지혜의 '여성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그에 대한 도예작업으로서의 천착' 에 크게 주목하였다.

조형예술분야 중에서도 여성미술가가 많은 공예분야의 경우,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본격적인 창작활동이 미진하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여타의 공예분야 중에서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영역이 도자공예분야라고 생각된다.

김지혜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는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신화>,<우상파괴>,<여자의 몸>,<길들이기>,<침묵하는 다수>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고착화된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을 취하고 있다.

남성위주의 사회가 파생시켜 온 여성의 성적 도구화 혹은 이중적 윤리의식의 합리화등에 대해 강한 반기를 들고 있다.

특히, <마리아와 이브>, 1992의 작품에서는 마리아와 같이 정숙한 여자(순결, 현모양처로서의)와 이브와 같이 성적인 욕망을 가진 여자(정부, 창녀적인 의미로서의)를 대비시키고 있다. 잘 다듬어진 여자의 몸위에 올려진 다리미와, 유방과 허벅지 부위에 드러낸 풍만한 여자의 머리위에 놓인 커다란 입술을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여자의 몸>, 1993이나 <자동판매기=여자?>, 1993라는 작품에서는 통념적으로 굳어져 온 여성의 성적인 대상으로의 전락과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부와 명예를 얻는 수단으로 전이되어 버리는 여성의 사회적인 한계를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품은 대체로 조소적인 방법과 석고등을 이용한 이장주입기법으로 제작되어 그 스케일면에서도 남성적인 웅장함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공존하고 있다.

한 작가에게 있어서 개인전은 일정한 시기동안의 작가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을 반영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작가 연구의 귀중한 사료가 되기도 하며 또한 작가 스스로에게는 전환적인 지표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번 김지혜 첫 개인전을 결산하는 대표적인 작품은 <변화>, 1994라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조형성에서나 내용적인 의미에서나 상당히 주목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울타리쳐진 둥근 원형의 틀(제도적인 여성의 입지)의 안과 밖에 몇 개의 인체를 세워둠으로써(자아를 찾으려는 여성들의 노력) 제도적인 허울과 차별에 대항한 여성의 의식변화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흙의 조소적인 표현 가능성과 인체를 조형화하는 작가 특유의 감각을 십분 발휘한 이 작품을 보면서 현대 도예계에 있어서 조각성을 지닌 새로운 여성주의 미술가의 등장에 대해 그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필자도 역시 남성이지만 이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역할은 작가의 맘대로 "여성의 문제는 여성의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그러한 여성차별의 원인과 형태를 바로 아는데 있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현대미술의 분분한 여러 논의중의 하나인 여성주의 미술에 대한 김지혜의 모색이 도예분야의 새로운 형식과 조형적 지평을 확대하는데 있어서 어떤 기여를 하게 될 지 지금으로서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작가가 자각하고 있는 여성의 현실에 대해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1994년 7월 미술이론, 갤러리빙 큐레이터/장 동 광




우상파괴 Lconoclasm 44×15×169㎝ 1993

우상파괴뒷면

전시 전경

여자의 몸 Bodies of Women 26×26×52㎝ 1993

길들이기 Taming 60×100×13㎝ 1994

변화 Change 170×170×70㎝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