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흙을 통한 삶의 생성과정 표현"

-[기둥(Column)]과 [가족(Family)] 연작을 중심으로

이윤경의 도조에서 탈장르의 성격을 갖고 현대적 조형의 특성과 유기적 형태인 개성적 표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 [기둥(Column)]시리즈 부터이다. 기둥은 수직적 공간개념을 무한으로까지 이끌어 나가며 직선적 성격의 입체형태이다. 2개 혹은 3개, 6개의 둥근 원통형을 수직적으로 쌓아올린 그의 [기둥] 작품들은 닫혀진 형태로 고립적이다.

외적으로는 부동성을 탈피하는 수직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는 기둥의 느낌을 줄 수 있으나 그의 원통형의 수직기둥은 브랑쿠시의 [무한주(Endless Column)] 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브랑쿠시조각에서 '무한'은 추상적 반복형태에서 나온다. 즉, [사물의 본질] 을 철저히 추구하여 모든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추상화하였던 브랑쿠시의 완벽한 논리와 미적개념의 결과와 달리 이윤경의 [기둥]은 정적이며 비논리적인 미의 세계로 비록 추상화된 단순한 모습들을 보여주나 부분적으로 인간이라는 분명한 형상을 읽게 하여 현실감을 높인다. 현실감을 높이는 그의 공간은 한정된 느낌으로 소박한 우리의 현실세계이다. 그가 만든 공간 역시 브랑쿠시의 [무한주]와 같이 무한한 공간의 추구로 해석될 수 있으나 현재까지의 작업으로는 자신을 찾는 한정된 공간의 완결성 추구로 보여진다.

이윤경의 [기둥] 연작에서 현실적 공간의 탐구와 대비되어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기둥주위를 타고 올라가는 유기체적인 형상들과 같은 연결고리들이다. 마치 생명체와 같은 끈 모양의 엉켜진 형상들은 단계별 기둥을 연결시켜 나가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흰색 유약을 이용한 [백색 기둥]에서 보여주는 연결고리 형상은 갸냘픈 생명체의 연결고리로 미세하고 허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검정색 샌드스타 유약 (짙은 회색톤의 표면에 검은색 점들이 가득차게 보여주는 유약)의 [흑색 기둥]은 돌출된 저부조의 형상이 기둥에서 튀어나와 환조처럼 보이며 삶의 투쟁을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듯한 느낌이다.

흙과 백의 이중적 구조와 대비적 성격의 작품에서 우리는 상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둥]은 수평에 대립된 수직의 구조로 인간이 중심된 형상이며, 그 주위에 펼쳐지는 자연의 어둔 면과 밝은 면, 선과 악, 현실과 비현실, 천상과 지상의 대비적인 양상을 상상하게 한다. 이같은 상상력은 [기둥]의 연작 이후 만들어진 [가족(Family)]연작에서 더욱 풍부하게 하여주며,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미적 요소로 우리들의 마음을 이끈다.

유 재 길 / 미술평론가, 홍익대 교수

(1992년 서문글 중에서)



-'이윤경' 흙작업의 불길함과 아름다움

그녀를 처음 만난게 한 5년 전쯤, 뉴욕 대학의 도조 작업실에서 였을까? 그녀는 첫눈에 아주 세련된 미인이었다. 쾌활하고 뒤가 없는 시원시원한 여자-그것이 내가 지닌 그녀의 인상에 관한 기억이다.

그 당시 그녀는 꿈틀 꿈틀대고 울퉁불퉁한 왠지 괴기한 느낌을 풍기는 흙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윤경이라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가 작품을 통해 꿈꾸는 불길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된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그녀는 자신이 흙으로 빚은 작품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다. 때로 그 불길함은 그녀의 작품을 뜻밖에도 몹시 아름다운 형식미로 끌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지닐 때조차도, 그녀의 작품을 흐르는 일관된 상상력은 몹시 남성적인 상상력이다.

우리는 얼마나 힘들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경쟁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가? 태어난 뒤에도 눈을 뜨자마자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매순간 비켜나가, 자신의 목숨을 끝까지 누린다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윤경의 흙작업들은 이런 아슬아슬한 생명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때로 엉켜있는 핏덩어리 같은 그 형체들은, 마치 외계인(Alien)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불길한 형체들을 상상하게 한다.

인큐베이터와 인공 수정아기, 임신 중절로 하루에도 수없이 사라져 가는 값 싼 생명들-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런 생명들의 사라짐과 태어남의 변주곡을 듣는다. 꿈으로 치자면 그녀의 작품은 아름다운 꿈이 아닌 악몽이다.

떨어지려 발버둥쳐도 서로의 머리나 다리가 꼼짝할 수 없이 엉겨 붙어 있는 움직이는 실핏줄들- 그녀는 그런 형상들에 '가족' 혹은 '기둥'이라는 제목을 붙여 왔다. 개인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 인류 가족으로 해석해도 좋으리라.

서로의 몸뚱아리를 물어 뜯어 본댔자, 결국은 자신의 몸 어딘가에 맞닿아 있을 우리들 인류 가족을 상상해 봄은 어떨까?

'기둥'의 이미지에서는 가계를 이어가는 뿌리, 혹은 핏줄을 연상해 본다. 인류 가족을 이어가는 핏줄, 그것도 가장 굵은 뼈대를 이루는 우리들의 기둥은 안전한가? 물론 그것이 그녀의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무너지고 부서짐을 예언하는 위험수위보다는 악착같고 질긴 생명력을 느낀다.

그녀의 '기둥'연작들은 어느 아침 갑자기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 해도 어느 구석엔가 꿈틀꿈틀 살아 남아, 씨를 뿌리고 줄기를 피워서 가족이라는 열매로 주렁주렁 매달린 그런 식물을 생각게 한다.

한겹 두겹 보기좋게 쌓아 올려진 기둥에서 몇대를 걸친 가족사나 인류사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10여년을 미국에 체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둥들에는 어쩔 수 없는 동양인의 흔적이 짙게 묻어 있다. 엉켜있는 핏줄들이 마치 질화로를 연상케 하는 형체로 집약되기도 하고, 옛 한옥의 석가래 기둥이나 절의 석탑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곳에서 보여지는 그녀 특유의 형식미의 아름다움은 그녀 자신 속에 공존하는 조각가와 장인 기질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아님 그것을 싸움과 갈등의 역사로 점철된 옛 장소들이 까마득한 후세의 눈에는 아름다운 명승 고적이나 관광명소로 남게되는 그런 아이러니에 비유할 수는 없을까?

그녀의 작품을 얼핏 처음 볼 때 부딪쳐지는 불길함과 완성도로서의 형식의 아름다움은 마치 뜨거운 물과 찬물처럼 스스럼없이 스며들고 있다. 마름모꼴의 공간에 엉겨 붙어 있는, 혹은 사다리나 십자가 모형의 또 다른 형상의 기둥을 휘드러지게 휘감으며 뻗어 올라가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현은, 그녀 자신의 낙관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윤경은 내일 이 지구에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이 순간을 즐겁고 건강하게 누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에게 있어 흙으로 만들어 구워서 유약을 칠하고 다시 구워내는 과정들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자가발전 장치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에게 '흙'보다 우선하는 것은 '삶'일 터이다. 그로 인해 그녀의 흙 작업은 더욱 꿈틀대는 삶으로 가득차 있다.

황 주 리 / 화가







Come into the World #17, 1992, Glazed Mixed Clay 1015℃ 183×97×13㎝

Come into the World #19, 1993, Glazed Mixed Clay 1060℃ 64×162×10.5㎝
Come into the World #21, 1993, Glazed Mixed Clay 1060℃ 27×86×27㎝

Come into the World #23, 1993, Glazed Mixed Clay 1015℃ 80㎝ Height

Come into the World #25, 1993, Glazed Mixed Clay 1015℃ 27×43×15.5㎝

Come into the World #27, 1994, Glazed Mixed Clay 1060℃ 110×65×16㎝

Come into the World #29, 1993, Glazed Mixed Clay 1015℃ 130×6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