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과 옷 입은 구경꾼

보통 사람들은 이제 미적지근한 것에는 어떤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 좀 더 강한 자극, 강한 충격이 있어야 고개를 돌려 갸우뚱해 보일 여력이 생긴다. 그러나 예술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마음껏 주물러 놓고 자신의 경지를 이해해 달라고 강요하는 요즘 예술이 반갑지만은 않다. 게다가 정말 그것이 예술적인 것인지 의구심마저 생긴다. 언제부터 예술이란 접두어가 그렇게 모호한 심리 상태를 대변해 왔는지 자못 의심스럽다. 그러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그런 여러 가지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가 둔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무식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지기 쉽다. 그래서 다시는 그 부끄러운 장소에 들르고 싶지 않아진다. 결국 고고하다고 자부하는 예술이 보통 사람들을 내쫓고 있는 셈이다.

실상 무엇이 고귀한 것인지. 보통 사람들은 정말로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 주변을 돌아보자. 집단이 움직이며 살던 시대는 끝났다.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고, 모든 사회구조, 경제구조, 가치구조가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우리의 시대는 '나' 중심의 시대를 맞이한다. 객관적이었던 것은 이제 모두 주관적차원으로 옮겨졌다. 이것은 서로 합쳐질 수 없는 불균형, 부조화, 불일치와 상통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더 복잠하고. 더 미묘하다.

공예는 원래 쓰임새 있는 물건을 만드는 일에서 출발하였지만, 요즘 예술의 기류를 타고 개인의 생각을 반죽해 놓은 것으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껏 생활공예라고 칭하여도 예전처럼 자신의 공을 다 쏟아 넣어 만들어진 것은 만나기 힘들다. 대략, 대충, 그 정도 등의 수식어가 동반되는, 정말 어느 선까지라고 암암리에 정해진 것이라도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어설픈 공예품이 많다. 공예품이란 원래부터 그 수준을 넘어 서지 못했다고 오해를 살 정도다.

사실 우리는 현대사회에 걸맞게 변형된 것, 기발난 착상,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눈앞에 있어도 발견할 수 없다. 그건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를 생각나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눈이 있으면서, 머리가 있으면서, 가슴이 쿵쿵 뛰고 있으면서 실상 잘 보고, 잘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소신껏 자신이 세계를 이야기하고 펼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왜냐면 유행에 걸맞지 않을까, 남들은 이렇게 하든데 어떻게 보일까, 그런 것들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숙의 공예품은 그런 여러 주변상황을 돌이켜 보게 한다. 그는 유행병에 걸려지 않은 공예품, 대충 얼기설기 꾸며지지 않은 공예품, 손때를 묻힐 수 있는 공예품을 만든다. 억지로 꾸며서 예술적이고 싶지 않고, '나'의 시대를 맞이하여 내 생각을 이웃에게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벌거벗은 임금님보다 옷 입은 구경꾼을 택한다. 획일적인 발명품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지도 않다. 단순히 공예이고 싶다. 진열장이 필요없는 공예이고 싶다. 관상용이 아니라 늘 손쉽게 닿을 수 있는 쓰임새 있는 공예이고 싶다. 그래서 모호한 생각을 담은 것보다 누구나 쉽게 마음을 줄 수 있는 공예품을 만든다.

조금숙의 공예품은 덩치가 크다. 시계, 탁자, 현관 장식용 타일, 정원용 조명등, 실내등, 이것은 그의 주제이자 소재이다. 흔히 생활도자기라면 찻잔, 물컵, 접시, 발 등의 그릇 만들기에 한정되기 일쑤인데, 그가 보는 관점은 그렇지 않다. 무엇을 만들까. 이질문에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부터 꼼꼼이 살핀다. 내가 있는 곳이 거실이기에 탁자를 설계하고, 조명등을 설계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시작한 설계는 우리들에게 친숙할 수 밖에 없다. 모두는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사건을 만들며 살고 있는 같은 공간의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는 도예가라기 보다 차라리 멋있는 실내장식가 아니면 인테리어 전문가이다. 흔히 도예가들이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 손을 대고, 색다른 조형감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그렇다. 간결한 선과 정돈된 구도, 그리고 실용성 등을 꼼꼼히 따지고 계획성 있게 나가는 것은 그에게 도예가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한다.

선택한 소재나 주제가 이해하기 쉬운 것이라고 해서 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것일수록 더 섬세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것을 아무리 휘갈겨도, 좀 못해 보여도 모호함 속에 싸여 있으니 평가할 기준도 내용과 함께 혼란스러운 것이지만, 구상적인 것은 누가 보아도 판단할 수 있는 분면한 윤곽이 있으니 정확한 칫수가 있는 셈이다. 조금숙의 공예품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그런 기준에 맞추어 모자람이 없다는 것에 있다. 흉내낼 수 없는 세밀함, 정밀함, 또 누구나 따라 잡을 수 없는 말끔한 뒷마무리가 눈에 띈다. 대충 어림잡아 자리를 메꾸거나 얼기설기 얽어 메는 일은 없다.

흙이란 성질은 마음대로 휘거나 갈라져 쉽게 다룰 수 없는 매체이다. 더구나 가만 속 불꽃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도 있다. 흙이란 재료는 정확한 칫수와 거리가 있다. 이것은 다루기 힘든 재료인 것만큼 제약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조금숙은 그런 제약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정확한 선과 정확한 형태를 유지한다. 물론 그런 결과는 그의 인내와 성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수고와 끈기가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김 숙 경 / 미술평론가





구름에 걸친 산 / 400×140×950mm, 400×120×800mm

시계Ⅰ / 500×200×1570mm

LAMP / 270×270×1430mm

표정 / 630×770mm, 180×180mm, 140×140mm, 120×120mm

CONSOL TABLE / 430×920mm, 640×200×840mm

탄생 / 1000×1000mm

HOME BAR / 500×100×1100mm, 1300×740×700mm

시계Ⅱ / 500×1300mm

종이접기 / 770×770mm

묵상의 시간 / 450×1400mm, 640×200×7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