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추상과 서술적 표현의 조형 실험]

-황도영 세 번째 陶彫 개인전-



"나의 흙 작업은 그 자체의 감촉과 느낌을 통하여 무한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잇으므로 이 흙과 나의 만남이 더욱 소중하고 귀중한 시간으로 여겨집니다. "

- 작가 황도영



흙 작업은 그의 감성을 풍부하게 한다. 착하고 순한 품성을 선천적이기도 하지만, 흙 작업을 통한 후천적 형성도 생각해 본다. 이 모든 것이 물질적 풍요로움 보다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편 그의 작업 태도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성실한 장인정신을 읽는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작가의 속삭이는 듯한 움직임에서 우리들은 삶의 평온함을 느끼며, 조형적 아름다움의 깊이를 생각한다. 작품은 작가의 얼굴이며,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차분하게 정리된 그의 작품들은 견고한 표면과 깊이 있는 색상으로 자신의 조용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때로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둡게 느껴지면서 작가의 소심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나 자기를 확인하려는 모더니스트로의 주장은 잃지 않고 있다.

금번 세 번째 도조전을 갖는 황도영 흙 작업은 순수 기하학 추상 형태의 미적 탐구에서 벗어나 서술적 표현의 도입으로 주제가 있는 도조를 실험하고 있다. 직선적인 것보다 곡선적인 볼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던 순수 조형 모색이 이제는 곡선과 직선이 혼합되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추상적 순수 조형의 모색에서 표현적 성격으로 변모하는 과정인 동시에 새로운 조형 실험으로 보인다.

여기서 작가는 자연의 생성과정을 생각하면서 그 완충지대인 문(門)을 생각하고 있다. '문(門)' 시리즈로 제작된 근작들은 변화되고 있는 작가의 미의식을 분명하게 그린다. 이는 전에 추구하였던 추상적 형태의 모호함에서 벗어나면서 여러 형상을 통해 명확히 자기를 표현하려 하는 것이다.

문은 시간을 상징하며, 두 개의 대립된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또한 그는 흑과 백, 또는 선과 악처럼 대립된 것이나 이승과 저승, 현실과 현실 저편의 피안처럼 확인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 사이에 문의 존재를 구축하고자 하며, 여기서 삶의 목표를 생각하고 인간의 진실된 면을 그리고자 한다.

순수 추상 작업 이후 근작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와같은 주제이며, 작품속에서 작가 자신은 문을 지키는 파수꾼이나, 심판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자로 시간의 흐름을 강조한다. 그가 만든 문은 사실적이기 보다 초현실적인 표혀이다. 작고 비틀린 형상이다. 이는 오랜세월의 흐름을 문이라는 기호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내용은 돌이 흙으로 변화하고 흙이 도공에 의해 器가 만들어져 놓이는 상황을 서술적으로 연출되고 있다.

도입부가 되는 하단에는 작은 계단들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구축된 작은 문, 그리고 주변에 사각형으로 그리거나 뜷려진 창문들, 열려진 형태로 사각형으로 뜷려진 공간에 놓여진 작은 항아리와 병들, 이러한 서술성과 연출 공간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작가 스스로도 '문(門)' 시리즈에 많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면서 자신의 개성적 조형언어 창조에 자신감을 나타낸다.

어둠속에 감춰진 표면들, 곡선의 부드러운 볼륨감과 직선의 차가운 구조형태, 그늘진 풍경처럼 황도영의 근작은 우리 가슴 한 모퉁이에 자리 잡게 된다. 무겁고 슬픈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한편 작은 모래알처럼 빛나는 표면과 섬세한 세부 묘사는 그 반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오랜전부터 황도영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던 필자는 작품과 작자의 품성 연계론을 생각하게 된다. 묵묵히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의 못브을 보면 약삭빠른 현대가 아닌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시대를 떠나 작품은 과장됨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함을 그려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게 되며, 더 나아가 황도영의 작품에 역동적인 힘으로 발전을 기대해 본다.





1994. 10. 유재길 (홍익대 교수, 미술평론가)





문 Series-時代變化 1, 470×200×230(mm), 1994

문 Series-記憶으로부터 1, 300×160×480(mm), 1994

문 Series-記憶으로부터 2, 340×210×760(mm), 1994

문 Series-歲月 1, 330×270×750(mm), 1994

문 Series-時代變化 2, 260×80×370(mm), 1994

문 Series-과거와 현재, 430×300×780(mm), 1994

문 Series-우리들의 이야기, 600×180×570(mm), 1994